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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2016년 그 해 겨울은 참 따뜻했다.

ⓒ 오마이뉴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의 한 장면이다. 공안경찰이었던 차경감은 송우석 변호사를 폭행하는 도중 애국가가 흘러나오자 폭력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한다. 역대 흥행기록 2위를 기록한 <국제시장>에서도 그와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여동생의 결혼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베트남에 가야한다는 덕수와 이를 말리는 영자의 실랑이가 벌어지는 도중 국기하강식이 거행되자 두 사람은 눈치를 보다가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를 바라본다.

1970년대를 상징하는 이 두 장면 속에는 '국가'에 대한 당대인들의 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뼈속까지 국가주의자였던 차경감, 평범한 소시민이었던 덕수는 모두 국가의 요구와 의도에 충실한 인물이었다. 차경감은 투철한 국가관과 안보관을 갖춘 정권 지킴이였고, 덕수는 국가가 주입한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맞게 살아가는 소시민이었다. 이들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당시대를 관통했던 시대인식과 마주하게 된다.

국가주의와 애국주의.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을 정의하는 핵심 키워드다. 차경감이 국가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라면 덕수는 애국주의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국가를 가장 우월적인 조직체로 인정하고 국가권력에 사회생활의 전 영역에 걸친 광범위한 통제력을 부여하는 사상'을 의미하는 국가주의와 '자신의 국가를 사랑하고 몸바쳐 헌신하려는 사상'(이상 위키백과에서 인용)인 애국주의. 이 둘의 공통분모는 '애국심'이다.

차경감은 고문 중에도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자동적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하고 법정에서 핏대를 세우며 빨갱이를 색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런 그가 시민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과 광기를 휘두르는 기저에는 다름 아닌 '애국심'이 놓여있다.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서독 탄광으로 달려간 덕수가 면접관 앞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이산가족찾기 프로그램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여동생을 찾게되자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의문이 생긴다. 차경감의 '애국심'과 덕수의 '애국심'은 과연 같은 것일까.

사회적 현상은 '누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소급되고 적용된다. 애국심 역시 마찬가지다. 차경감이 강조한 애국심은 국가주의자로서의 애국심이었다. 그는 국가 권력을 최상의 가치로 규정하고 이를 맹목적으로 지키려는 국가주의자의 전형적 인물이다. 차경감에게 국가는 곧 체제와 정권의 다른 이름이며, 그런 까닭으로 그는 체제와 정권의 유지를 위해서라면 시민에 대한 폭력조차 정당하다고 믿는다.

반면 덕수의 애국심은 국가 권력에 의해 주입된 사상과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결과 국가의 잘못으로 분단이 되고 가족들과 생이별을 하는 비극을 경험했음에도 그의 마음 속엔 여전히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가득하다. 국가가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주지 않아도, 책임과 의무를 방기해도 덕수의 애국심은 변하지 않는다. 국가 권력이 강제하고 강요한 애국, 국가안보, 반공, 질서, 국가경쟁력 같은 이념들이 덕수의 삶을 지배해온 탓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사람의 애국심은 이처럼 글자만 같을 뿐 내용은 판이하게 다르다. 


ⓒ 오마이뉴스


현실로 돌아와 보자. 새누리당의 김석기 의원(경북 경주)이 3일 The-k 경주호텔 거문고홀에서 열린 경주상공회의소 주최 신년인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우리도 목소리를 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할 말은 하고 행동으로도 보여줘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태극기를 들고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규모 촛불 시위에 맞서 박사모 등 보수단체들이 열고 있는 '대통령 탄핵 기각 집회'에 경주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한 것이다.

김 의원은 용산참사 당시의 책임자였다. 국가 폭력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그가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다시 의문이 생긴다. 김 의원이 거론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내게는 그것들이 자유, 평등, 공정, 정의, 상식, 인권, 도덕, 자율, 다양성, 복지 같은 것들을 의미한다. 나는 국가가 이것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두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가치다.

생각이 모두 같을 수는 없겠으나 2016년 겨울 대한민국을 뜨겁게 휘감았던 촛불에 담긴 의제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지난 수십년간 우리 사회를 짖누르던 구체제의 유산들을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시스템을 건설하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그 속에 녹아있다고 확신한다. 불평등, 불공정, 불의, 특권, 불법, 반칙의 세상을 벗어나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사회에 주어진 것이다. 김 의원이 언급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에는 이와 같은 시대적 당위가 포함되어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나는 김 의원에게서 차경감을 떠올린다. 야만적 국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바로 그 차경감 말이다. 어쩌면 김 의원이 언급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가치'라는 것은 결국 차경감이 절대선이라 믿어왔던 '애국심'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혹시 그는 간담회에 참석한 시민들을 '덕수'와 같은 부류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국가 권력이 강요한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살아온 그런 사람들 말이다.


그러나 1000만 촛불은 이 땅의 시민들이 더 이상 체제와 권력에 순응하는 존재가 아님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시민들은 더 이상 국가 권력의 부속품도 체제에 순응하는 엑스트라도 아니다. 시민들이 '대한민국 헌번 제1조'의 의미를 각성한 이상 '덕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의 주체, 권력의 주체로서의 시민만이 있을 뿐이다. 어쩌면 훗날 역사는 이 시대를 이렇게 기록할지도 모른다. 2016년 그 해 겨울은 참 따뜻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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