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뛰는 김기춘 위에 나는 우병우

지난 7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조특위 2차 청문회에서는 '죄송합니다', '모릅니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는 변명과 책임 회피성 발언이 쏟아져 나왔다. 마치 녹음기처럼 기계적인 멘트를 남발한 당사자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었다. 그는 청문회 내내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기로 작정한 듯 보였다. 특위위원들의 질의에 그는 연신 '모르쇠'로 일관했다. 사람들은 그에게 '미꾸라지'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그런 김 전 실장보다 더 세고 강하며, 훨씬 뻔뻔한 인물이 등장했다. 여태껏 경험해보지 못한 극강의 캐릭터에 특위위원들마저 두손 두발 다 들 지경이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진상규명 국조특위 5차 청문회가 열렸던 22일, 국민들은 특위위원들이 쳐놓은 덫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실로 엄청난 미꾸라지를 봤다. 김기춘 전 실장은 미꾸라지 축에도 끼지 못했다. 진짜 미꾸라지는 따로 있었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그 주인공이다.


돌아켜보니 김 전 실장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그에게서는 적어도 TV를 시청하고 있을 국민에 대한 (그것이 계산된 행동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미안함과 송구함은 느껴졌다. 그래서 일흔 여섯 노구가 연신 '죄송합니다'라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서는 일말의 연민과 측은지심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시종일관 뻣뻣했고 아주 거만했다. 언론을 통해 익히 알려진 그 모습 그대로였다.

특히 잊혀지지 않는 것은 우 전 수석의 눈빛과 말투다. 거세게 의혹을 추궁하는 특위위원들을 날카롭게 쏘아보거나 짜증이 난듯 퉁명스럽게 답변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됐다. 그로 인해 우 전 수석은 특위위원들과 김성태 위원장으로부터 자세와 답변 태도에 대해 여러 차례 지적을 받기도 했다. 청문회에 임하는 자세가 대단히 불량했던 것이다.

눈빛과 말투, 표정 등에는 사람의 감정은 물론이고 내면과 자아에 대한 흔적과 자취도 함께 묻어난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듯한 오만한 눈빛과 태도, 툭툭 내뱉는 불성실하고 무성의한 답변 태도는 우 전 수석의 과거와 현재가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국민들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우병우' 주연의 모노드라마를 시청한 셈이다.



ⓒ 오마이뉴스


우 전 수석은 자신이 연루되어 있는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그 중 주목해야 할 것이 몇가지 있다. 먼저 그는 검찰이 민정수석실을 압수수색할 당시 찾아낸 검찰조사 대응문건을 모른다고 했다. 민정수석실에서 나온 청와대 문건, 그것도 검찰조사에 대한 대처 요령이 적시되어 있는 문건이라면 이를 작성한 주체가 민정수석실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사정기관을 총괄하는 곳이 바로 민정수석실인 탓이다.

그러나 그는 이 문건의 실체에 대해 부인했다.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거나 정말 몰랐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특위위원들이 지적한 것처럼 두 가지 경우 모두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만약 전자라면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되고, 후자라면 형법 제122조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그 어느 쪽이든 법률 위반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날 우 전 수석은 시종일관 최순실과 차은택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회에 참석했던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의 증언은 달랐다. 노 전 부장은 "차은택의 법조 조력자는 김기동이고, 우병우가 소개시켜줬다고 들었다"는 내용을 폭로했다. 김기동 대검 부패범죄특별단장은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되는 인물로, 노 전 부장의 증언은 차은택을 모른다던 우 전 수석의 주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노 전 부장의 증언 역시 부인했다. 의도치 않게 양자 대질구도가 형성됐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것이다. 우 전 수석은 현재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해경 본청을 압수수색하던 수사팀에게 외압을 행사한 의혹도 받고 있다. 직권남용 혐의로 특검수사를 받게 될 우 전 수석의 대응 방향을 어렵지 않게 예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 전 수석이 자신의 장모와 최순실의 골프 회동을 목격한 골프장 직원들의 녹취록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의미심장하다. 이 녹취록은  최순실을 모른다고 주장했던 우 전 수석의 증언을 뒤집을 결정적인 증거였다. 김경진 국민의당 의원이 공개한 녹취록에는 최순실이 우 전 수석을 청와대에 추천했다는 내용과 최순실과 우 전 수석 장모의 친분관계를 입증하는 증언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이마저도 "음성변조가 돼 있다"며 "저는 저런 얘기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최순실과 우 전 수석의 장모, 최순실과 우 전 수석 사이의 관계를 입증하는 명백한 증거인 녹취록까지도 완강히 부인한 것이다. 뛰는 '김기춘' 위에 나는 '우병우'다. 지난 2차 청문회에서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제시한 동영상에 진땀 깨나 흘렸던 김 전 실장의 모습과 비교하면 그 뻔뻔함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청문회를 지켜본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기세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우 전 수석의 오만불손함과 안하무인을 비난하는 의견들로 가득하다. 불과 며칠 전 '김기춘'에 학을 떼던 국민들이 이제는 '우병우'의 뻔뻔함에 치를 떨고 있다. 이 두 사람은 박근혜 정부를 실질적으로 떠받치던 정권의 핵심이자 기둥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밖에는 안 된다. 정권 자체가 '무능', '무책임', '뻔뻔함'의 도가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 전 수석이 청문회 내내 뻔뻔한 태도로 답변을 이어가자 "검사 생활 때 피의자 많이 만나 봤을 것"이라며 "내가 검사라면 피의자로 나온 우 전 수석이 이렇게 답변하면 한 방 쥐어 박았을 것 같다"고 쓴소리를 내뱉었다. 아미 청문회를 보고 있던 국민들도 같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래나저래나 국민을 편히 놔두지 않는 참 피곤한 정권이다.




세상이 보이는 정치·시사 블로그 ▶▶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