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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부의 사드 해법, 결국 '이이제이(以夷制夷)'인가

17일 오후 경북 성주군청 강당에서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사드 배치 반대 투쟁위원회(투쟁위) 사이의 주민 간담회가 열렸다. 한 장관은 이날 간담회를 통해 사드 배치의 당위와 부지 선정의 과정을 설명하고 주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간담회는 한 장관과 투쟁위 사이의 확연한 입장 차이를 확인한 채 2시간 여만에 끝이 나고 말았다. 오히려 이날 간담회에서는 새누리당 이완영(칠곡·성주·고령) 의원과 일부 투쟁 위원이 성주군 내 사드 배치 장소 이전을 거론해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간담회가 진행되는 도중 밖으로 나와 이 사실을 전한 이수인 투쟁위 기획운영분과 기획팀장에 따르면, 투쟁위 위원 중 한 명이 성주내 제3 후보지를 언급했고, 이날 간담회에 참석했던 새누리당 이완영(칠곡 성주 고령) 의원이 거들면서 사드 배치 장소 이전 문제가 부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사드 배치 전면 철회' '원점 재검토'를 일관되게 주장해 온 투쟁위의 공식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 팀장의 발언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민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군민들 중 일부는 간담회를 마치고 나오는 한 장관을 향해 물병을 던지며 겪한 감정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성주 내 사드 배치 장소 이전 문제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황교안 국무총리에게 표출된 지역민심을 확인된 박 대통령이 지난 4일 사드 배치 장소를 성산포대에서 성주 내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이후로 정부와 국방부,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이 문제가 심심치 않게 불거져 나왔다.

한 장관 역시 이날 간담회에서 지역 의견으로 말씀을 주시면 검토하겠다"고 말하며 장소 이전 가능성을 넌지시 흘렸다.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지역 민심이 갈수록 강경해지자, 정부가 장소 이전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지역 민심을 분열시키는 전략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이른바 '이이제이(
以夷制夷)'.


오랑캐를 오랑캐로 물리친다는 '이이제이'는 분열과 갈등을 부추겨 적을 견제하고 제압하는 독수다. 적을 회유하는 한편 끊임없이 이간질시키고 의심하게 만들어 힘을 규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이 전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집권세력이 적을 분열시키기 위해 사용하던 통치술이었다.

중국 한족은 '이이제의'를 이민족 정책의 기본으로 삼았을 만큼 즐겨 썼고, 영국은 문화와 언어, 종교 갈등을 적극 활용하며 인도를 장기간 식민지배했다. 일제 역시 문화정책을 통해 친일부역자를 양성하고 회유하며 우리 민족을 분열시켰다.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의 핵심 역시 종파간 갈등을 적극 활용하는 '이이제이'에 있었다.

정부가 사드 배치 장소 이전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사드 배치 전면 철회 입장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 투쟁위와 지역주민들의 의지가 확인된 이상, 정부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들이 사드 배치를 철회하지 않는 한) '민민(
) 갈등'을 일으켜 투쟁위의 힘을 분산시키고 무력화시키는 것 외에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투쟁위에 소속된 위원이 사드 배치 장소 이전 문제를 거론한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투쟁위는 성주의 민심을 '님비(Not In MY Backyard)'로 몰아가는 보수언론과 일부의 시선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펼쳐왔던 터였다. '사드 배치 전면 철회' '원점 재검토'라는 표현이 그들의 강한 의지와 신념을 대변한다. 그런데 이들의 끈끈함에 미묘한 틈이 생겼다. 사드 배치 장소 이전과 관련해 투쟁위 내부의 균열이 생긴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사드 배치를 결사 반대하고 있는 성주 군민들과 투쟁위원들의 대부분이 농민들이다. 생업에 종사해야 할 그들이 벌써 한달이 넘게 거리에 나가 있다. 생계에 대한 부담도 여전할 것이고,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 사드 배치 문제는 복잡난해하기만 하다. 할 수 있는 것이 지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시간이 갈수록 힘이 빠지고 지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바로 이 틈을 누군가가 교묘하게 파고 든다면......


ⓒ 오마이뉴스


그동안 국민화합과 통합을 내세워 출범한 박근혜 정부가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사건이 이런 흐름으로 전개되어 왔다국정원 사건이 그랬고세월호 참사가 그랬다밀양이강정이 그랬다그리고 이번엔 성주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안이 '사드'가 아닌 '외교'라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의 마음 속에는 애시당초 대안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던 모양이다. 대신 그들이 사드 배치를 관철시키기 위해 들고나온 것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분열책이었다. 


수많은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이동풍을 고집하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들의 몫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성주가, 그리고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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