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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제동도 알고 있는 사드 해법, 대통령만 모른다

사드 배치를 비판하는 방송인 김제동 씨의 영상이 온라인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지난 5일 경북 성주군청 앞 광장에서는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 자리에 김제동 씨가 참석해 사드 배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것이다. 보수세력에 의해 대표적인 종북좌파 연예인으로 찍혀있는 그는 이번에도 사드 배치 반대하는 소신있는 발언으로 현장에 있던 성주 주민들은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의 큰 호응을 불러냈다.

이날 김제동 씨는 헌법 조항을 하나하나 열거해가며 사드 배치의 위법성을 설명해 나갔다. 아울러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있는 국민들의 의사표현이 헌법이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임을 강조하기도 했다. 연예인으로서 정치적 사안에, 그것도 정부정책에 반하는 소신을 밝힌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가 모를 리가 없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날 연설의 말미에 그에 대한 두려움을 살짝 내비치기도 했다.

"그 다음에 이렇게 이야기해놓고 나는 겁 안 나는 줄 압니까. 내 억수로 겁납니다. 내 어디서 세금으로 털지, 여자로 털지 억수로 겁납니다. 그래도 죽을 때 이런 이야기 안 하면 쪽팔릴까봐 그럽니다. 아니 주인이 4 5000명이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주인이 선임한 공무원이 듣지 않을 수가 있냐 이겁니다. 희안한 일 아닙니까"



ⓒ 오마이뉴스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12 4 '정부인사에 대한 정보보고'라는 문건이 공개되어 논란이 일었다. 해당 문건에는 '민정수석실 행정관과 단독 면담, 특정 연예인 명단과 함께 이들에 대한 비리수사 하명받고 기존 연예인 비리 사건 수사와 별도로 단독 내사 진행'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문건에 등장하는 특정 연예인은 사회적 쟁점이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사안에 공개적으로 소신발언을 해왔던 '소셜테이너'들을 지칭한다.

당시 공개된 또 다른 문건에는 김제동 씨의 이름이 직접 거론되기도 했다. 문건에는 '2009 10월 중순경 방송인 김제동의 방송프로그램 하차와 관련해 매스컴과 인터넷 등 각종 언론을 통해 좌파연예인 관련 기사가 집중 보도됨에 따라 더 이상 특정 연예인에 대한 비리수사가 계속될 경우, 자칫 좌파연예인에 대한 표적수사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문건들은 이명박 정부가 좌파연예인들의 동향을 항시 사찰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해당 문건들은 김제동 씨가 느끼는 감정이  막연한 두려움이 아닌 실제하는 것임을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정권에 찍혀 사찰을 당하고 방송에서 퇴출을 당하고 삶의 기반마저 흔들리는 저열한 행태는 여전한 것이다. 그럼에도 김제동 씨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다. 두려움이 그의 양심과 신념을 꺾지 못한 것일 터다. 그는 현실의 두려움과 훗날의 '쪽팔림' 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과 가치를 택했다. 이 작은 사내의 용기와 신념이 태산보다 크다.

이날 김제동 씨는 주옥같은 명언들과 촌철살인의 어록들을 쏟아냈다. 그 중 유독 눈길을 끈 것은 박 대통령이 요구했던 북한의 위협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을 밝히는 부분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1 "사드 외에 북한 미사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부디 제시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요구에 김제동 씨는 명쾌하게 대안을 제시했다. 답은 '외교'에 있다고.

"중국에 가서는 이렇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지금 북한이 핵 쏘고, 미사일 쏘고 자꾸 지랄하려고 하니, 현실적으로 외교적으로 지금 북한한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들은 중국 니들 아니냐. 니들이 계속 북한한테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고, 북한 편을 들면 우리 사드 배치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니들 우리 생각 잘 해봐라. 니들 하는 거 보고 배치할지 말지를 결정하겠다"

"미국 가서는 그렇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중국이 지금 북한한테, 북핵 미사일과 핵을 감축시킬 정도로 외교적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하니 그 상황을 지켜보면서 점점 사드 배치를 할지 말지 결정하자. 그래야 우리도 국민들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 아니냐. 배치할지 말지 패를 우리가 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하고 중국에게 그러면 너희들 어떻게 할래, 그러면 우리는 국민들한테 상의할 수 있고, 만약에 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우리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할 수 있게 되는 외교적 공간이 충분히 확보가 되어 있었다 이 말입니다"


ⓒ 오마이뉴스



김제동 씨는 사드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핵심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외교'. 기실 전시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과의 관계,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국익을 최대한 고려한 등거리 외교를 펼치는 것이야 말로 사드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방법이, 대안이 없는 것이 아니란 뜻이다. 언제나 그렇듯 문제는 국가정책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철학과 인식에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보호하는 건 사드가 아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들과의 전력적 공조를 통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키고, 내부적으로는 파탄난 남북관계를 복원시킬 정치·외교적 노력을 통해 상호 신뢰를 진작시키는 것이 순리다. 이 두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한반도 평화 정착의 길이 열리게 되고, 비로소 국민의 안전이 지켜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사드 배치는 그 반대의 길을 가겠다는 전격적인 선언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고, 북한의 호전성을 자극해 한반도를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로 만드는 일이다.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도입한 사드가 오히려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비수가 되고 독이 되는 이율배반이 일어나고 만다. 박근혜 정부의 전략 부재와 무능을 만천하에 드러낸 외교적 참사가 바로 사드 배치인 셈이다.

박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할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 답이 김제동 씨의 연설 속에 있다. '외교'. 대안은 사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교'에 있다. 전문대 나온 김제동 씨도 알고 있는 사실을, 평생 참외 농사만 지어 온 농민들도 아는 사실을, 국가의 장래를 걱정하는 수많은 민초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이 나라의 대통령과 정부가 모른다. 대한민국이 갈수록 'SAD'해져만 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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