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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이 비난받는 이유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라는 속담이 있다. 권력의 무시무시함을 잘 드러내주고 있는 비유다. 그런데 이제 이 비유는 시대에 맞게 다시 고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권력은 '승용차를 기차 역사의 플랫폼까지 타고 들어갈 수 있게 한다'라고 말이다. 얼마나 권세와 위세가 대단하면 일반인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특혜를 누리는 걸까. 이 정도면 국민의 지탄을 받았던 모 장관의 '황제 주차' 정도는 애교로 봐 줄만한 수준이다.



ⓒ 한겨레


지난 20일 저녁 서울발 부산행 KTX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목격됐다. 승객들이 열차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 위로 난데없이 승용차 두 대가 등장한 것이다. 첩보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황교안 총리였다. 차에서 내린 그는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2호차의 특실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 와중에 일반인 탑승객들은 그가 열차에 오를 때까지 경호원의 제지를 받아야 했다.

도대체 그에게 어떤 다급한 공무가 있었던 것일까. 촌각을 다투는 국가비상사태가 일어나기라도 했던 것일까. 그러나 확인해 보니 그날 그의 일정에는 급히 움직여야 할 특별한 사정은 없었다. 당일 그의 공식 일정은 비어 있었고 다음날 오전 국방과학연구소 방문과 세종시 정부종합청사에서의 일정이 있었을 뿐이었다. 결국 황 총리가 그날 저녁 긴박하게 '플랫폼 직행'을 해야 할 이유가 하등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 총리는 시민들의 불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천연덕스럽게 플랫폼까지 관용차를 타고 들어갔다. 도대체 그는 무슨 생각이었던 것일까. 시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비난쯤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대한민국 총리라면 이 정도의 특권은 당연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어떤 경우라도 황 총리의 행동이 오만방자한 망동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  SBS 뉴스 화면 갈무리


보편적 상식을 허무는 황 총리의 망동은 삐뚤어진 특권의식의 발로라는 점에서 그동안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라면 상무', '빵 회장', '조폭 우유', '땅콩 부사장' 사건 등과 맥을 같이 한다. 그들은 모두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를 더 우월하다고 규정하고,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공통점이 있었다. 특권을 성역화하고 이에 대한 도전을 용납치 못하는 천박한 계급적 사고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 역시 저들의 천박한 인식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는 이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동원해 일반 시민들이 상상하기 힘든 특권과 특혜를 마음껏 누렸다. 시민들이 한시적으로 부여한 권력을, (시민들의 통행을 제한하면서까지) 사적인 용도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의 일탈은 저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천박한 특권의식에 더해 황 총리에게는 고위공직자로서의 기본적인 소양조차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라면 상무', '빵 회장', '조폭 우유', '땅콩 부사장', '황제 주차', 그리고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에 이르기까지 특권층의 '슈퍼 갑질'이 계속해서 되풀이 되고 있는 중이다. 이 기막힌 현상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고한 신분제 사회인지를 환기시켜 준다. 재물, 권력, 지위, 출신에 따라 계급이 나뉘어지고, 강남과 강북, 정규직과 비정규직, 도시와 농촌, 서울대와 지방대, 임대주택과 분양주택에 따라 삶의 등급이 매겨지는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것이다.

우리 사회가 신분제 사회라는 것은 한번 정해진 등급이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부와 권력은 대대로 세습되고, 가난과 빚도 지긋지긋하게 되물림된다. 한번 금수저는 영원한 금수저이고 한번 흙수저는 영원한 흙수저다먹고 살 방법이 없어 삶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고작 라면과 땅콩, 주차 문제 때문에 '슈퍼 갑질'을 행사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기차역 플랫폼까지 승용차를 끌고 가는 정신나간 사람도 있다. 모두 공고한 신분제가 만들어낸 씁쓸한 풍경들이다.



ⓒ  SBS 뉴스 화면 갈무리


특권의식의 노예가 된 이 나라 특권층의 '슈퍼갑질' 앞에서 무너져 가고 있는 것은 다수 공동체의 보편적 상식과 가치다. 황 총리의 '플랫폼 직행'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그는 법무부장관 출신의 총리로 우리 사회의 법과 원칙이 바로 설 수 있도록 솔선수범해야 할 고위 공직자이며평등하고 공평한 사회의 구현에 앞장서야 할 사회 리더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부터가 성역화된 특권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시민들을 향해서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던 그가 법과 원칙 위에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그런 면에서 그의 '플랫폼 직행'은 여느 특권층의 '슈퍼갑질' 보다 행태가 훨씬 더 고약하다. 우리 사회의 계급적 차별과 불평등의 적나라한 민낯과 치부를 다른 누구도 아닌 이 나라의 총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비난과 분노가 봇물처럼 터져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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