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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3·1절 비웃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왜곡

며칠 전 올해부터 초등학교 6학년이 공부하게 될 사회과 교과서에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과 사진이 사라진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었습니다.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이 빠지고 "강제로 전쟁터에 끌려간 젊은 여성들은 일본군에게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는 내용으로 대신한 것이죠. 교육부는 논란이 커지자 "초등학생들이 해당 표현을 학습하는 것은 적정하지 않다"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교육부의 주장은 자신들이 작년 9월부터 배포하고 있는 초등학생용 '일본군 위안부 바로알기' 학습교재의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초등학생을 위해 지난 2014년 10월부터 10개월 동안 현직 교원과 전문가 등의 검토와 자문을 겨쳐 만든 학습 교재를 교육부 스스로가 부정하고 있는 셈입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이 교과서에는 "광복절과 대한민국의 수립"이라고 기술된 제목이 있습니다. 이는 헌법이 명시하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뉴라이트의 역사인식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를 기술한 분량 역시 크게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고 왜곡한 내용도 있습니다. 검토본의 "유신 헌법이 국민의 자유를 제한했다"는 내용을 "경제성장을 위해 유신을 선포했다"로 바꿔 버렸고, '독재'를 '장기 집권'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한 것이죠. 이 모든 것이 박근혜 정부의 역사 왜곡을 비판하면서 야당과 시민사회가 우려했던 그 모습 그대로입니다. 


초등학교 사회과 교과서에서 '위안부'와 '성노예'라는 표현과 관련 사진이 사라지고, 박정희 유신독재에 대한 미화와 왜곡이 일어났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합니다. 이를 통해 현재 비밀리에 집필 중인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유추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한국일보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황우여 전 교육부장관은 각계각층에서 반대했던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였던 3인방이었습니다. 그들은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국정교과서가 친일·독재를 미화할 것이라 예단하는 것은 얼토당토한 이야기라고 주장했습니다나아가 국정교과서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를 거쳐 엄선된 집필진에 의해 씌여질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이 거짓임은 이내 드러났습니다.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라고 생각한다어떤 경우든 역사를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되고정권의 입맛에 맞게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박 대통령의 작년 10월 27일 국회 시정연설에 대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대변인의 논평 중 일부입니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문구의 원작자는 다름 아닌 박 대통령입니다김영록 대변인이 박 대통령의 국정화 강행의 자가당착을 비판하기 위해 2005년 한나라당 대표시절의 신년연설 내용 중 일부를 그대로 차용한 것입니다

면전에서 이루어진 기자의 질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가 10년 전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저 말은 분명히 박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말입니다역사문제에 정권이 개입해서는 안된다며 강력하게 주장했던 그가 권력을 잡자마자 역사를 자기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있는 것이죠. 끔찍한 자기부정이자 기만이며, 지독한 위선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김무성 대표 역시 박 대통령에 못지 않습니다. 그는 야당과 시민사회가 주장했던 국정교과서의 친일·독재 미화 우려를 일축하며 그런 일은 단언코 없을 것이라 장담했습니다그랬던 그가 부친인 김용주의 친일 행적을 관련해서는 완전히 정반대의 행보를 보여주었습니다.

지난해 10월 26일 김무성 의원실은 국회 출입기자들에게 '고 김용주 선생의 친일 행적 논란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배포했습니다김용주의 애국적 활동 사례가 첨부된 이 자료에는 그의 반민족적 친일 행위는 그 어디에도 기술되어 있지 않았습니다김용주가 본격적으로 친일파로 전향했던 1937년 이후의 행적은 제외한 채 그의 애국적 활동 사례만 나열한 것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김용주는 1920년대 전반까지는 민족의식을 가진 인사로 활동하다 일제의 수탈이 극심해지던 193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친일행위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습니다김용주는 친일파로 전향한 이후 근로보국을 위한 국민개로운동 독려내선일체와 황국신민화를 위한 신사 건립내선동조동근론 전파군용기 헌납운동 주도 등의 친일 행각을 이어갔습니다.




ⓒ 뉴스타파 화면 갈무리



김용주는 1943 10월 열린 전선공직자대회에서는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충실한 황국신민이 되는 것"이라며 징병에 적극적으로 나서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모셔질 영광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는 말까지 했던 인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1944 79일 일본 아사히신문에 낸 기명광고에서는 "결전은 하늘이다보내자 비행기를!"이라는 광고를 싣는 등 친일에 앞장 섰던 대표적인 민족반역자 중의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김무성 의원실은 이같은 악날한 친일 반민족 행위에 대한 기술은 쏙 빼놓은 채김용주가 친일파로 전향하기 전의 애국활동 사례만을 자료집에 담은 것입니다겉으로는 '' ''를 모두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에 대해서 사실을 숨기고 철저하게 미화하고 있었습니국정교과서를 향한 각계각층의 우려가 바로 김무성 의원실이 배포한 김용주에 대한 자료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것입니다.




ⓒ 오마이뉴스



황우여 전 교육부장관 역시 국정교과서에 관련해 표리부동의 극치를 보여주었습니다그는 국정교과서의 추진 여부를 묻는 야당의 추궁에 즉답을 회피하며 논란을 비켜가고는 했습니다그러나 꼬리가 밟힌 '비밀 TF'팀으로 인해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그동안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의 말과는 달리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기 위해 은밀하고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황우여 전 장관은 '비밀 TF'팀 논란이 거세지자 기자회견을 통해 국정교과서의 "집필 착수와 함께 대표 집필자들을 공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머지 집필진에 대해선 (공개 결정을국사편찬위원회에 맡겨 달라"며 에둘러 둘러댔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겠다'고 말했던 당사자였습니다. 


지난해 11월 23일 국사편찬위원회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 집필진을 구성 결과를 발표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습니다. 그러나 달랑 두쪽짜리에 불과했던 보도자료 그 어디에도 집필진의 이름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황우여 전 장관이 말했던 투명함의 실체입니다.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 국민을 향해 자기부정과 기만, 위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로 왜곡이나 미화가 있다면 절대로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박 대통령"국정교과서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것은 얼토당토않는 얘기"라고 했던 김무성 대표, "국정교과서는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하겠다"던 황우여 전 장관. 이들은 모두 끔찍한 자기부정을 통해 역사를 제 멋대로 뜯어고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어쩌면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박근혜 정부에 의해 역사가 심하게 뒤틀리고 있습니다. 가치 중립의 역사문제에 권력이 개입해서 바로 잡겠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 저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제97주년 3·1절입니다. 훗날 역사는 저들을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요? 3·1절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역사 왜곡에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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