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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What A Poor President Park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천명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이제는 정말 일각의 표현대로 '역사와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를 입증하듯 나라가 정확히 둘로 갈라 졌다. 그 어디에도 박 대통령이 대선후보시절 강조하던 국민통합은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분열과 불신,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지독한 갈등과 대립 뿐이다. 물론 정국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은 다름 아닌 박 대통령 자신이다. 그는 국민과 약속했던 통합과 화합의 정치 대신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고집함으로써 나라와 국민을 혼란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불과 10년 전에 "역사에 관한 일은 국민과 역사학자의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경우든 정권이 재단해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했던 그가 정치권과 시민단체, 학계와 교육계, 일반시민들과 대학생, 그리고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국정교과서를 강행한 것을 이해하려면 역시 아버지인 박정희에 대한 역사의 박한(?) 평가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설마 일국의 대통령이 째째하게 개인사의 문제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겠는가 하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박 대통령이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와 정치 입문 이후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부친에 대한 부당한 평가를 바로잡겠다는 그의 의지는 분명해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신원 회복'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의 기저에 놓여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박 대통령은 결정적 오판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신원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과 인식이 애초부터 잘못 설정되어 있는 탓이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과오를 바로잡으려면 할수록 그 과오들은 오히려 더욱 더 부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는 간과했다.

박 대통령 자신에게는 더없이 좋은 아버지였을지 모르겠으나, 박정희의 친일행적과 남로당 활동 이력, 5•16 쿠데타 이후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행했던 수많은 용공조작 사건들, 영구집권을 위해 단행한 반민주적인 유신헌법과 인권 유린 등은 여전히 첨예한 논쟁 중이다. 뿐만 아니라 박정희 군사독재의 피해자와 유족들이 여전히 생존해 있다. 그들이야말로 박정희 시대의 '과'를 보여주는 산증인들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아버지 시대의 '과'를 바로잡겠다며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를 추진했다. 긁어 부스럼이 따로 없다. 역사문제를 들춰내면 낼수록 박정희를 둘러싼 논란이 더욱 거세진다는 것을 그는 모르는 것 같다. 박 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가라앉아 있는 앙금을 들쑤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의 신원을 회복시키려 한다면 이같은 방식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박 대통령은 전후 독일이 어떻게 주변국들과 세계인들의 신뢰를 얻어갔는지 직시할 필요가 있었다. 독일은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과 노력으로 주변국들의 신뢰를 회복해 나갔다. 그 결과 전후 독일은 마침내 세계 정치 경제의 중심으로 다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전후 독일이 아니라 일본의 전철을 밟고 있다. 일본은 현재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 대신 자신들의 침략과 만행을 정당화하고 미화시키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는 중이다. 안보법제를 통해 과거 군국주의 시절을 재연하려는, 보수우경화된 일본의 모습은 박 대통령과 집권 여당이 보여주고 있는 행태와 정확히 일치한다.

극우보수화된 일본의 아베 내각이 주변국들의 반발과 비난, 세계인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고 있는 것처럼, 박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향해서도 각계각층의 반발과 비난이 폭주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얽혀 있는 과거사를 풀어가는 방법이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에게 아버지의 과오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성찰, 치유와 회복을 위한 진정성있는 노력과 행동이 있었다면 박정희에게 드리워져 있는 역사의 상흔 역시 논란과 갈등이 아닌 공존과 화합의 장으로 나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아버지까지 깊고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이 얼마나 'Poor'한 대통령의 인식인가.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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