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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배우자 밝혀라? 후보 배우자의 자격에 대하여

6·4 지방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조용한 선거가 치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인 서울시장 선거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까지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여론조사 기관에 따라 다소의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10%~15% 가량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선거가 불과 일주일 남은 상황에서 정몽준 후보에게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격차다. 통상적으로 여론조사에는 숨은 야권표가 존재해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그래서였을까?




6·4 지방선거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희한한 정치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유권자의 귀에 익숙한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뉴타운개발' 등의 정책을 둘러싼 공방이 아니라 후보자의 부인을 두고 설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선거때는 배우자를 보고 표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당장 국민 앞에 나서 배우자가 어떤 분인지 밝히는 것이 유권자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새누리당의 전 원내대표이자 6·4 지방선거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경환 의원이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해 한 발언이다. 오지랖도 이만한 오지랖이 또 없다. 배우자를 보고 표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며 유권자의 투표행위를 능욕하는 대목에선 한 대 쥐어 박고 싶은 심정이다. 이 자는 유권자를 위한 진정한 도리가 무엇인지 가늠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배우자를 보고 투표하는 정신나간 유권자가 어디 있다는 말인가. 유권자의 소중한 권리행사를 저 따위 저급함에 엮어서 기만하는 졸렬함이야말로 유권자에 대한 도리를 망각해도 이만저만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자가 바로 얼마 전까지 원내1당의 원내대표였다는 사실은 이제는 인정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대한민국 정치의 후진성이다.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의 배우자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비단 최경환 공동선대위원장 뿐만이 아니다. 이 문제를 직접적으로 제기한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와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김성태 서울시당 위원장, 그리고 정몽준 후보의 부인까지 이 대열에 가세했다. 저들의 공통된 관심사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인은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와 '그녀가 지금 무얼하고 있는가'에 온통 쏠려있는 듯 하다. 여기에 '잠적설', '출국설', '성형중독설' 등은 이 논란에 가미되는 좋은 첨가제다. 필자는 선거 후보자의 배우자 근황이 이토록 조명받는 선거를 일찌기 보지를 못했다.  참으로 민망한 선거전이다. 비루하고 또 비루하다.



1.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배우자가 잠적했다. 

2.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배우자가 출국했다. 

3.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의 배우자가 성형중독으로 밝혀졌다.



위에 열거한 1~3번의 사유와 후보자의 자격과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정몽준 후보측이 들으면 애석해 하겠지만 이 둘 사이의 관계성은 전혀 없다. 선거를 앞두고 후보의 배우자가 돌연 잠적을 했든, 다른 나라로 출국을 했든, 성형중독으로 밝혀졌든 이것들이 후보 당사자의 자질과 능력보다 우선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설사 이 졸렬한 의혹제기가 모두 사실로 밝혀진다 하더라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도대체 저것들과 후보자의 자격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우리는 앞으로의 선거에서 후보자 부인들의 신상은 물론이고 이들의 배우자로서의 자격을 검증하는 토론회마저 지켜봐야 하는 지도 모른다. 





선거 판세에 대한 비관이 초래하는 조급과 강박은 이성을 흐리게 하고 일탈을 부추긴다. 또한 목적을 위해 정당치 못한 수단을 사용토록 끊임없이 압박하며 유혹한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약방의 감초 '네거티브' 전략은 바로 이런 환경에서 흑마술처럼 활용되어 왔다. 그리고 모두가 아는대로 새누리당은 이 분야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가 집단이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당시 박원순 후보는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의 집중적인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이 와중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 딸의 서울대 부정 전과 의혹마저 제기됐다. 그러나 아들의 병역비리는 이미 검찰과 경찰수사에 의해 무혐의 처리된 사안이었고, 딸의 서울대 미대에서 법대로의 전과 의혹 역시 근거없는 낭설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흑색선전과 근거없는 비방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아직까지 그 어떠한 사과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다. 참으로 편리한 사고방식이자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풍조가 정치권이 아닌 일반 시민사회에서까지 횡횡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이보다 더 끔찍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거에 출마하는 모든 후보 배우자의 자격에 대해서 논하는 것을 금기시해야만 하는가. 그것은 물론 아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 최근에 모 정당에서 보여준 전광석화와 같은 행보는, 유권자들을 위해 후보 배우자의 자격에 대한 뚜렷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어제(27일) 모 정당의 유승우 의원(경기 이천시)은 6·4 지방선거 지역구 공천과정에서 그의 부인이 2억원의 공천헌금을 수수했다는 의혹으로 인해 '탈당 권유' 징계처분을 받았다. 이는 사실상의 출당조치다. 당 윤리위에 따르면 이번 출당조치는 깨끗한 정치문화와 당 쇄신 노력을 위해서라고 한다. 당황스럽게도 이 낡고 오래된 정당은 우리에게 후보 배우자의 자격을 물을 수 있는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배후자의 얼굴이 보고 싶어 목을 매고 있는 정몽준 의원측이 귀감으로 삼을만 하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후보 배우자를 보고 투표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이런 후안무치한 자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은 더더욱.




*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