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미국의 최저임금 인상 열풍, 한국과 비교해 보니



지난 7월 8일 저녁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제12차 전원회의가 열렸다. 그런데 2016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이 중차대한 시간에 노동계 위원들의 모습은 한 사람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영계가 제시한 인상안에 반발하며 9명 전원이 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 간의 극명한 입장차이가 만들어낸 장면이었다. 


애초 노동계는 2016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79.2% 오른 시급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경영계는 이에 맞서 동결을 제시하며 팽팽한 기싸움에 들어갔다. 이후 둘 사이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며 몇 차례에 걸친 수정안이 오고 갔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협상과 결렬을 수차례 반복한 끝에 2016년 최저임금은 결국 공익위원의 중재를 거쳐 올해보다 8.1%(450원) 오른 6030원으로 결정됐다. 


시급 6030원. 만약 당신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라면 일급(8시간 근로기준) 4만8240원, 월급(209시간 기준) 126만270원, 연봉 1512만3240원의 돈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야만 한다. 생각만으로로 끔찍한, 처절하기 짝이 없는 수치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나라에는 146만7천원(시급기준 7019원, 통계청 올 3월 기준)의 월급으로 생활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600만명(통계청 올 3월 기준)이 넘을 뿐만이 아니라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으로 생활하는 노동자도 무려 227만명(2014년 기준)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통계는 전체 노동자 1900여만명 중 약 1/8에 해당하는 12.1%의 노동자가 월 126만270원도 안되는 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전체노동자의 약 1/3에 해당하는 비정규직 역시 146만7천원 만으로 한 달을 버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비정규직이거나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라면, 혹 그마저도 받지 못하는 12.1%에 속해있는 노동자라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숱하게 해왔던 '낙수효과 이론'대로라면 최저임금이 적어도 1만원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적정수준으로 임금을 인상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은 7%대로 올랐다. 올 해도 빠른 속도로 올릴 수 밖에 없다" - 최경환 경제부총리(2015년 3월 4일)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이 7%대에 달한다고 자랑한다. 평균적으로 7%가 올랐다는 최저임금이 내년에는 무려 8.1%로 인상되었으니 정부로서도 할만큼은 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힘주어 말하는 평균 7%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참여정부 시절의 10.64%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지고 만다.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김대중 정부 시절의 9.02%, 김영삼 정부 시절의 8.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어용방송인 종편과 정권의 나팔수인 보수언론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8.1% 인상이 지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라며 대놓고 홍보질을 하고 있지만 이명박 정부를 제외하면 박근혜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률은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착시현상에 불과한 수치로 우리나라의 경제적 불평등과 반노동적 정부 정책을 희석시키고 있으니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지도 모르겠다. 





전세계적으로 2015년은 임금 인상과 최저임금 인상이 주된 화두로 등장한 한 해다. 미국, 일본, 영국, 독일, 중국 등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중심국가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임금인상에 열을 올리고 있다. 틈만 날 때마다 기업이 잘되야 서민경제도 살아난다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던 박근혜 정부와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자에게 손해라는 주장을 펴왔던 재계의 입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들이다.  


"1년 내내 일해 1만5000달러(1741만5000원, 오늘 기준)를 벌어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할 수 있다면 당신이 한 번 해봐라" - 버락 오마바, 올 1월 신년기자회견


지난 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 중에 최저임금을 10.1 달러까지 올리는 '텐텐 법'의 의회 통과를 촉구했다.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을 행정명령을 통해 즉각 시행하려 했다.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극에 달한 현실에서 더 이상 빈곤층을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비록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공화당의 반대로 상원에서 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의 바람대로 현재 미국에서는 각 자치주별로 최저임금 인상이 거세게 일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22일(현지시각) 패스트푸드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기고 결정했다. 인상안에 따라 뉴욕주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2018년~2021년까지 점진적으로 현행 8.75달러 수준의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받을 수 있게 된다. 시애틀과 LA 등의 대도시들도 최저임금을 15달러로 인상하는 안을 통과시켰고, 이같은 흐름은 빠르게 미 전역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미국의 최저임금 인상 열풍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반드시 실업률이 늘어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 정부와 재계를 향한 강력한 카운터 펀치다.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방증인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경제불황 속에서도 어떻게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모험을 강행할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은 최저임금 인상과 가계지출의 데이터를 23년간 꾸준히 연구했다. 그 결과 최저임금이 1달러 늘어나면 노동자 가구당 분기별 소비지출이 최대 800달러까지 늘어나는 것을 확인했다. 적정 수준으로 임금이 오르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던 누군가의 말대로 임금이 오르니 소비지출이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가계 소득 증대가 소비 지출 증가와 경기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는 무수히 많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카이 필리언(Kai Filion)은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세 차례에 걸친 최저임금 인상으로 230만 세대의 가계 소득이 증가해 미국에서 104억 달러의 소비지출이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비 지출을 늘어나면 이로 인해 이윤을 창출한 기업이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재계와 자산가들 역시 최저임금 인상에 찬성하고 있다. 미국의 저명한 투자컨설팅 회사인 스펙트럼 그룹이 100만 달러가 넘는 자산을 가진 500명의 백만장자들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려 94%에 달하는 사람들이 최저임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체 응답자의 62%는 최저임금을 무려 40% 이상 올리는 데 찬성했다는 사실이다. 최저임금 인상이라면 몸서리를 치는 우리나라의 재계에서였다면 나올 수 없는 여론조사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을 바라보는 미국 정부와 재계의 시각은 우리나라와는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 서민이 아닌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운용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몇년 동안 재벌 자산가들은 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호황을 누려 왔다. 그러나 수백조원에 달하는 자본 이득은 고용과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고 고스란히 사내보유금으로 묶여 있는 상태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틈만 날때마다 기업이 잘되야 서민경제도 덩달아 살아난다는 낙수효과를 강조하며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해 왔다. 그러나 그렇게 몇 년이 지났지만 노동자들의 삶이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오히려 노동환경은 점점 더 열악해져 가고 있고 삶의 질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상태다. 노동계의 비참한 현실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각종 통계들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얼마나 위악적이고 위선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일 뿐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얼마 전 임금피크제를 민간기업에게 확대하겠다는 방침까지 밝힌 바 있다. 미국 등 세계 경제를 주름잡는 국가들이 서민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최저임금과 임금인상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는데 반해 이 나라는 정부가 주도해서 노동자들의 저임금 비정규직화를 확대하겠다 천명하고 있다. 


정부가 신주단지 모시듯 떠받들고 있는 '낙수효과이론'은 신자유주의의 매파였던 IMF마저 부정하고 있는 잘못된 진단이자 최악의 처방이다. 미국 등 세계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국가들이 신자유주의의 폐단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그들과 완전히 정반대로 가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세계의 중심으로 편입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부는 언덕의 정치실험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