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원내대표에게는 새누리당과는 분명하게 차별되는 개혁적 보수의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에게 투영되어 있던 개혁적 보수의 색채는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연설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지난 4월 8일 국회 본회의 연설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연설은 야당으로부터 이례적으로 "우리나라 보수가 나아가야 할 명연설이었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혁신적이었다. 


그날 유 원내대표는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는 철학과 소신을 마음껏 드러내보였다. 특히 "부의 위협으로부터 국가안보를 지키는 것이 보수의 책무이듯이, 심각한 양극화로 인한 내부의 붕괴 위험으로부터 공동체를 지키는 것도 보수의 책무"라며 "어제의 새누리당이 경제성장과 자유시장경제에 치우친 정당이었다면 내일의 새누리당은 성장과 복지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히는 부분은 연설의 백미였다. 


국회 본회의 연설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유 원내대가 이번에는 사람들의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되는 '사퇴의 변'을 남기며 퇴장했다. 유 원내대표는 "평소 같았으면 진작 던졌을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라고 강조하며 자신의 사퇴를 요구한 박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 원내대표의 등장과 퇴장은 네러티브가 살아있는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다. 사람들은 이야기와 담론이 살아있는 드라마에 열광한다. 사건의 시작과 전개, 반전과 결말이 이처럼 뚜렷한 정치드라마가 또 어디에 있을까. 대단원의 막을 내린 '유승민 파동'의 여진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그래서다. 그런데 숱한 화제를 남긴 이 과정에는 의문이 하나 남는다.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이후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박 대통령의 홍위병인 '친박'은 유 원내대표를 몰아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에도 없던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 반발하는 당내의 목소리가 뒤엉켜 한바탕 자중지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전투구 양상으로 치닫던 새누리당의 극심한 내홍이 의원총회가 열린 지난 8일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새누리당은 의원총회에서 북한식 인민재판을 연상시키는 놀라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불과 몇일 전 의회민주주의와 정당민주주의를 자신들이 지켜야 할 최고의 가치라며 성명서까지 발표했던 의원들도, 이 상황을 "이해가 안 간다, 너무한다"고 비판하던 정책위의장도 박수로 사퇴를 추인했다.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하던 사람들 모두가 이 기묘한 장면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새누리당의 의원총회를 북한에 비유하며 강력하게 비판했던 이혜훈 전 최고의원의 발언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지난 8일 CBS <박재홍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난달 25일 의원총회에서는 의원들의 재신임 기류가 컸는데, 상황이 이렇게 급반전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친박계 의원님들이 언론이나 사석에서 말씀하는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성완종 사건 등 여러가지 약점들, 이런 것들도 관련이 돼 있다고 하신다"며 검찰의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전 최고의원은 또 "친박 의원님들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언론에 말씀하시는 걸 보면, 친박표 그리고 김무성 직계표, 그 다음에 성완종 사건 등등 검찰에 약점이 잡힌 인사들 표, 이렇게 합하면 100여 명이라고 한다"며 "표가 많이 저쪽으로 넘어가고 있다고들 하시니까 그분들 말씀이 사실인 측면이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실 상의 '친박 게이트'이자 박 대통령의 '불법대선자금 게이트'였던 성완종 사건은 모두가 아는 대로 조용하게 끝이 났다. 검찰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정치권에 금품을 제공한 내역을 기록한 비밀장부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고, 그 결과 새누리당 내에서 홍문종 의원과 이인제 최고의원을 제외하면 성완종 사건에 연루된 정치인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권력의 시녀로 전락한 검찰의 속성으로 미루어 이를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다. 검찰이 여야 정치인들과 유명 연예인들의 부정 비리 내역을 꼼꼼하게 파악하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해 왔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 전 최고의원의 주장대로 검찰이 성완종 사건과 다른 정치비리 사건들에 연루된 정치인들을 유 원내대표의 사퇴 정국에 이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전 최고의원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이는 대단히 충격적이다. 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분립마저 무너뜨린 독재적 발상이 추악한 우리 정치의 민낯으로 인해 가능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를 절대가치로 여겨야 할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사고와 인식으로 무장하고 있다면 이보다 더 비극적인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 전 최고의원의 발언에는 놓쳐서는 안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존재한다. 뒤바뀐 당내 권력지형이 그것이다. 당 대표선거와 원내대표 선거에서 모두 패한 '친박'들이 유 원대대표 축출에 사활을 걸었던 이유는 내년 총선의 공천권 때문이었다. 설 자리가 없었던 '친박'들이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없고 유 원내대표를 찍어내면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한 것이 이번 '유승민 파동'의 핵심이다. 그 결과 새누리당 최고의원들 대부분을 '친박'으로 줄세우는 혁혁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데 이 대열에 김무성 대표까지 가세했다. 대단히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유 원내대표 다음의 타겟이 본인이라는 사실을 김무성 대표가 모를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무성 대표는 왜 유 원내대표의 축출을 묵인했을까.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전 최고의원의 폭로에서 드러나듯 꼬리를 내릴먄한 치명적인 약점을 검찰이 잡고 있거나, 아니면 대표직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친박'과 타협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훗날을 기약하기 위해 다시 한번 굴욕을 감내했거나 셋 중 하나일 것이다. 당 대표는 총선의 공천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더군다나 당내 민주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새누리당이라면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친박'들이 부활한 이상 김무성 대표의 당내 입지는 급격히 미약해졌고, 이제는 내년 총선까지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을 지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만약 그가 첫번째나 두번째가 아닌 세번째 이유로 유승민 찍어내기에 가담했다면 돌이킬 수 없는 실기를 범한 셈이다. '친박'들이 내년 총선까지 염두해 두고 유 원내대표를 찍어낸 이상 김무성 대표 흔들기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 원내대표를 찍어낸 이면에는 이와 같은 복잡한 정치공학적 계산들이 놓여있다. 박 대통령의 건재, '친박'의 부활과 김무성 대표의 굴욕, 그리고 유승민의 재발견으로 요약될 이번 '유승민 파동'은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려는 최고통수권자의 오만과 독선, 새누리당의 패권주의와 계파 줄세우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치 후진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이 왜 계속해서 연출되고 있는지 유권자들의 냉정한 현실인식과 성찰이 필요한 때다. 그것만이 이 볼쌍스러운 광경들을 우리 정치에서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퇴진해야 할 대상은 유승민이 아니라 후진 정치를 배후에서 조장하는 낡은 정치인들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꿈꾸는 1인 미디어, 바람부는언덕을 후원해 주세요 (클릭)



  1. Favicon of https://chamstory.tistory.com BlogIcon 참교육 2015.07.13 10:33 신고

    후계자는 자신의 비리와 부정을 덮어 줄 공생관계를 만들어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두환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를 들통이 나고 말겠지요.

  2. Favicon of https://saenooree.tistory.com BlogIcon 耽讀 2015.07.13 13:33 신고

    새누리당 의원들만 아니라 박근혜도 검찰에 약점이 잡혔습니다.
    지금은 살아있는 권력이지만, 언젠가 자신들이 불리할 때 칠 온갖 자료를 모았습니다.
    검찰이 손해 볼리가 없습니다.

  3. Favicon of https://doitnow61.tistory.com BlogIcon 늙은도령 2015.07.13 17:44 신고

    문제는 더욱 커질 것 같습니다.
    노골적인 독재를 펼칠 모양입니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4. 2015.07.14 00:01

    비밀댓글입니다

  5. Favicon of https://xuronghao.tistory.com BlogIcon 空空(공공) 2015.07.14 08:10 신고

    박정희 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또한 신임 정무수석을 현기환 전 의원을 임명함으로써
    내년 선거에 공천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6. Favicon of https://eproo.tistory.com BlogIcon 불루이글 2015.07.15 20:06 신고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이 한몫 크게 했을것 같습니다.

  7. BlogIcon 일리닛 2015.09.05 13:12

    이건 그냥 북한 김씨 왕조의 숙청과 다를 게 없네요. 지 눈에 고깝다고 내쳐버리니... 정말 역사가 기이하게 뒤틀리고 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