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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의당 당 대표선거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대한민국을 극심한 두려움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메르스 사태는 성완종 게이트와 미군의 탄저균 반입 논란, 황교안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등과 같은 크고 작은 이슈들을 소멸시키는 블랙홀과도 같았다.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의 주범으로 낙인찍히며 정국을 얼어붙게 만든 당사자인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역시 한동안 대한민국 언론의 1면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몇 주간 언론의 주된 관심사가 메르스 사태와 유승민 사태라는 굵직굵직한 이슈들에 쏠려 있는 사이 3기 지도부를 선출하는 정의당의 공식 선거운동은 별다른 주목을 끌지 못했다.





정의당은 어제(5일) 서울에서 마지막 당 대표 후보 합동유세를 끝으로 모든 공식 선거운동을 끝마치고 오늘부터 5일동안 당 대표선거를 통해 3기 지도부를 선출한다. 그러나 이 역시 세간의 주목을 끌지는 못하고 있다. 현재 초미의 관심사는 원내 의석 5석에 불과한 미니 정당의 당 대표선거가 아니라 오늘 열리는 국회법 개정안 재의안 표결에 새누리당이 참석할 것이냐 불참할 것이냐에 쏠려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양당 체제가 굳어진 대한민국 정치풍토에서 군소정당들이 갖는 비애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언론과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지만 정의당의 당 대표선거 과정은 몇 가지 면에서 주목할 만 하다. 


우선 치열한 경선과정에도 불구하고 대표 경선 과정 중에 흔히 볼 수 있는 상대 후보 비방과 흑색선전,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이전투구 양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노회찬·노항래·심상정·조성주 당 대표 후보들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너 나 할 것 없이 상대 후보가 아닌 스스로의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보들은 각각 '수석 요리사'(노회찬), '시민의 눈높이, 시민과 함께'(노항래), '준비된 당대표'(심상정), '2세대 진보정치'(조성주)라는 톡톡 튀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워 자신이 당 대표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주력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당 대표 선출과정에서 보여주었던 극심한 불협화음과 갈등, 죽고살기 식의 물어뜯기가 정의당의 경선과정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을 거쳐 통합진보당과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동안 자주 연출되었던 자주파(NL)과 평등파(PD), 국민참여계 간의 정파 갈등이 사라진 첫 선거라는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2012년 통합진보당의 분당과정에서 극심하게 노출된 정파 구도가 정의당이 창당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희석되었고, 창당 주체들인 옛 민주노동당의 '인천연합계'와 '진보신당 탈당파', '국민참여당'이 분당과 창당의 아픔을 통해 뼈저린 각성과 성찰을 이루어 낸 덕분이다. 진보정치와 진보정당의 위기와 몰락의 실질적 원인이었던 정파 갈등을 혁신과 개혁을 통해 극복하려는 노력들은 충분히 박수받을 만 하다. 


노회찬·심상정이라는 두 거물급 정치인에 맞서 참여계의 지지를 받고 있는 노항래 후보와 '2세대 진보정치'로 큰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는 조성주 후보의 선전도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다. 정의당을 대표하는 정치인이 노회찬 전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라는 데에 이견을 제시할 사람은 없다. 이 두 사람은 정의당의 얼굴이나 마찬가지일 만큼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이다. 그러나 무명에 가까운 노항래 후보와 조성주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파란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새로운 진보적 청년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청년유니온의 정책기획팀장이었던 조성주 후보의 약진은 눈이 부실 지경이다. 노회찬·심상정으로 대표되는 1세대 진보정치가 노항래·조성주로 대표되는 2세대 진보정치로 이어질 수 있을지도 정의당 당대표 선거의 관건 중 하나다. 





그러나 어쩌면 정의당 당대표 선거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들이 선택한 선거방식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의당은 이번 당대표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결선투표제는 한번에 한표씩을 투표해 다수의 득표를 얻는 사람이 대표가 되는 '단순1위제' 방식에 익숙한 유권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다. 만약 투표가 종료되는 오는 12일의 선출보고대회에서 과반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가장 표를 많이 받은 1위와 2위의 후보에 대해 다시 결선투표를 벌여 최종 당대표를 확정하게 된다. 이처럼 결선투표제는 일면 비효율적이고 피곤해 보이는 선거방식이다. 비용의 문제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결선투표제가 지니는 의미는 상당하다. 


'단순1위제'는 표면적으로 '다수결의 원칙'에 충실한 개념이다. 민주주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수결의 원칙'이 민의를 대변하는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여겨지고 있는 현실은 '단순1위제'의 아성을 유지시켜주는 일등공신이다. '단순1위제'가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대표성이 떨어진다는 점에 있다. 과반을 얻지 못한 후보라도 1등만 하면 모든 전리품을 독식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가 합리적으로 구현되는 과정 속에서 극대화된다. 그러나 '단순1위제'는 그 과정이 구현되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 단 한번의 투표가 모든 것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비민주적이며 엽기적인 발상인가. '단순1위제'로 피해를 입은 선량한(?) 후보들이 당 대표에 반기를 드는 모습을 자주 연출하는 이유도 결국 대표성의 취약함이 빚어낸 장면들이다. 


결선투표제는 1987년 6월 항쟁 이후로 지금까지 무려 25년여 동안이나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우리 정치의 오래된 과제다. '단순1위제'가 지니는 비민주성과 취약한 대표성, 무분별한 후보 단일화 논의의 폐해와 제반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대통령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에서 시행되고 있는 선거방식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반세기가 넘도록 1인 보스의 제왕적 리더십을 고수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반대와 새정치민주연합의 소극적인 대응으로 여전히 '단순1위제'가 선거의 미덕인양 맹위를 떨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비민주적 수구정당인 새누리당과 무책무취한 보수정당의 길을 걷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에게 민주적 선거제도의 대명사격인 결선투표제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도 모른다. 





원내 의석 5석에 불과한 미니정당인 정의당이 당 대표선거 과정을 통해 기존의 선거문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일이다. 거대 양당체제가 공고하게 자리잡혀 있는 우리나라의 정치현실 속에서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특히 정의당이 선택한 방식인 결선투표제는 우리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들을 없애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한 선거개혁 과제 중의 하나다. 원내 1당과 제 1야당이 하지 못한 일들을 정의당이 해나가고 있다는 것은 지지의 유무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한 일이다. 


양당체제의 한계와 폐해가 극에 달한 지금 이 작고 가난한 정당이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가 결코 가볍지 않다 하겠다. 만약 당신이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양당정치에 크게 실망하고 있다면 이 메시지는 더더욱 분명해 진다. 대한민국 정치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 내기 위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정의당의 앞날에 건투를 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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