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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학교급식 중단 반대하면 종북세력?

경남도가 아주 뜨겁습니다. 학교급식 중단을 둘러싸고 경남도와 학부모들 사이에 물러설 수 없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경남도의 학교급식 중단을 반대하는 1인 시위에 나서고 있고, 아예 등교 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남도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뜨거운 열사의 땅입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시간이 갈수록 경남도의 학교급식 중단을 비난하는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난 14~15일 경남 CBS와 리얼미터가 공동으로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7%가 이번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연령별로는 20대의 60.3%, 30대의 74.5%, 40대의 76.2%가 학교급식 중단이 잘못된 결정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보수층인 60대 이상에서 조차 잘못됐다는 응답(47.3%)이 잘했다는 응답(41.8%) 보다 높게 나타났습니다. (19세 이상 경남도민 1천명 대상 유무선 전화면접조사. 응답률 17.1%.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P)


이번 조사는 홍준표 지사의 미국 출장 중 골프 논란이 반영되지 않은 결과입니다. 따라서 지역 민심은 이보다 훨씬 더 나쁠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합니다. 여론조사 결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이번 학교급식 중단으로 실질적 피해자들인 30~40대의 분노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입니다. 그들은 단단히 화가 난 듯 공공연하게 "다시는 새누리당을 찍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경남은 경북과 함께 깃발만 꽃으면 당선이 된다는, 새누리당의 정치적 본향이며 아성인 곳입니다. 이 곳은 지난 몇 차례의 선거에서 수많은 논쟁적 이슈에도 불구하고 늘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여주었던 지역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학교급식 중단을 둘러싸고 분위기가 영 심상치가 않습니다. 민심이 확연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때 아닌 경남민심의 동요로 새누리당과 경남도의 입장이 곤궁해졌습니다.

그렇다고 경남도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경남도민들의 반발과 비난 여론이 거세지며 수세에 몰린 경남도가 급기야 타개책을 들고 나왔습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종북'이 이번에도  역시 국면전환을 위한 돌격대로 나섰습니다. 경남도는 어제(30) 작심한듯 박종훈 경남교육감을 향해 날선 공세를 이어갔습니다. 특히 경남도는 학교급식 중단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종북좌파'라고 규정하며 전가의 보도인 색깔론을 꺼내 들었습니다.





경남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종북 세력을 포함한 반사회적 정치집단이 도를 상대로 정치 투쟁을 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학교급식 예산지원 중단 반대 운동을 이끄는) 친환경 무상급식지키기 경남운동본부는 반국가적 종북활동으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간부 출신 등이 대표를 맡고 있는 종북좌파 정치집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경남도의 성명으로 학교급식 중단을 반대하는 경남도의 학부모들은 졸지에 자의반 타의반으로 반사회적인 '종북세력'이 되었습니다. 이 나라에서 종북주의자가 되는 방법은 이처럼 아주 간단합니다. 정부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기만 하면 됩니다. 홍준표 지사가 즐겨 사용하는 수사를 빌리자면, 학교급식의 중단을 반대하는 여론이 절대적인 경남은 현재 종북주의가 극에 달한 '종북주의자들의 해방구' 입니다. 홍준표 지사가 부임한 지 3년여 만에 보수애국 우파의 본산인 경남도가 이렇게나 변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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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좌파를 어떻게 볼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판단은 온전히 개별주체의 몫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 상식과 정의감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필자의 시각에서는 이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이 땅의 상식있는 종북좌파의 저항과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집권세력과 권력자들의 수많은 정책실패와 부정비리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명박 정부의 측근친인척 비리와 '사자방비리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청와대의 민간인 사찰같은 사건들의 실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또한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금보다 더한 무자격자들이 공직에 진출했을 것이고청와대의 비선실세들이 여전히 국정을 농단했을 것이며, 건국이래 최악의 참사였던 세월호 침몰사건은 완전히 잊혀져 버렸을 지도 모릅니다.





학교급식이 사라지고 이를 대체할 '서민자녀 교육지원 조례안'이 통과되던 지난 19일 경남도의회 앞에는 거대한 '차벽'이 등장했습니다. '차벽'은 학교급식 폐지 반대를 외치던 경남도민들의 성난 분노를 막기 위해 경남도의회가 물리적으로 설치한 권위와 독단의 상징입니다. '준표산성'이라 명명된 '차벽'을 사이에 두고 극명하게 양분되어진 이 낯익은 풍경은 우리사회가 처해있는 비루한 현실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습니다.


매카시즘이 낡은 구시대의 망령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매카시즘의 본산 미국에서 조차 이미 수 십년 전에 사라진 낡은 정치공세가 이 땅에서는 이처럼 아직도 유효합니다. 이 비극이야말로 우리 정치가 앞으로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우리 정치의 문제는 '종북주의'에 있지 않습니다오히려 보편적 상식과 합리적 이성사회정의에 반하는 역주행을 고집하고 있는 '몰상식' '비이성', '불의'가 문제라면 문제겠죠.


우리는 세상의 수많은 부조리와 직면한 채 살아갑니다그리고 부조리에 대항하려는 욕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나 존재해 왔던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었습니다집권세력에 의해 '종북주의자'로 규정당한 사람들이 실제 북한의 체제를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세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그들이 이 사회의 상식과 양심정의를 위해 분투해온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경남도에서는 지금 '상식' '몰상식', '이성' '비이성', '정의' '불의' 간의 대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 숨막히는 대결에서 과연 누가 웃게 될까요.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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