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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언덕의 天-地-人

괜찮아, 다 잘 될거야, 힘내...

하늘을 올려다 본다. 일주일만인가. 하늘의 빛깔이 쪽빛이다, 마치 가을의 그 것 같은. 문뜩 저 하늘처럼 내 마음도 높고 푸르고 청아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하루에도 몇번씩 삶이 주는 시험에 빠져 허우적대는 이 가벼움을 탓해야 할까. 마음이 물에 푹 젖은 것 마냥 무거운 하루다. 





생명력을 잃어버린 겨울 출근길의 풍경은 조금은 을씨년스럽다. 싱싱함을 잃어버린 숲과 나무와 들판은 지난 여름의 자취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몇 년을 아침 저녁으로 보아온 풍경들. 생각이 많은 탓일까. 오늘은 낯설고 또 낯설다. 제자리에 있지 않은 것만 같은. 그러나 기실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저 풍경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먼 길을 오랫동안 돌아온 것만 같은 출근길. 일터에 도착해서 텅 빈 주차장에 발을 딛고 우두커니 선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떡갈나무 옆 작은 길 위에는 언제 지나갔는지 들고양이의 발자국이 찍혀 있다. 어디에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그 발자국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선명하던 발자국은 점점 시야에서 멀어지더니 이내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 추운 겨울, 나는 이 녀석의 겨울나기가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시간을 확인해 본다. 업무시간까지는 10분이 남았다. 들고양이의 흔적을 쫓아 걸음을 옮겨 본다. 숲으로 나 있는 작은 길, 들고양이의 발자국 위에 내 발자국이 덧씌워진다. 유년시절. 밤 새 내린 눈길 위에 찍혀 있는 발자국들을 보며 상상의 나래에 빠져들곤 했다. 어른일까, 아니면 아이?, 남자일까, 여자일까!, 무슨 옷을 입고 있었을까?, 장갑은 끼고 있었을까?, 어쩌면 사람의 발자국을 가지고 있는 예쁜 눈의 사슴일지도 몰라, 어제 밤 할머니가 얘기해 준 사슴 말이야. 그 시절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있는 길 위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꽃처럼 피어나고 있었다.


 



추억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한때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삶이 주는 고단함, 그 짓누를 수 없는 무게에 마음이 지쳐갈 때, 빛나는 옛 시절의 추억들이 쳐진 어깨를 어루만지며 지친 영혼들을 위로해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아, 다 잘 될거야. 힘내, 네 옆에는 내가 있어. 추억은 한적한 시골의 간이역 같은 것. 언제든 어디서든 지친 영혼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들고양이의 발자국을 바라보며 나는 스스로를 토닥이고 있었다. 괜찮아, 힘내, 넌 잘하고 있는 거야, 다 잘 될거야......


숲 속으로 난 작은 길은 어느 지점에 이르자 끊어져 있었다. 그 곳에서 들고양이의 발자국도 사라져 버렸다. 괜찮겠지? 나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나즈막히 물었다. 순간 바람의 손길에 나뭇가지가 살짝 흔들렸다. 괜찮을 거야,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자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졌다.


다시 홀로 섰다. 겨울 바람이 차다. 화가 난 사람의 앙칼진 목소리처럼 날이 제대로 서 있다. 텅빈 주차장에서 겨울 바람을 맞는다. 순간 머리칼이 쭈삣 서며 정신이 번쩍 난다. 시원하다. 가슴 속 깊이 찬 공기를 마음껏 들이킨다. 꽉 막혀있던 답답함이 조금은 사라지는 느낌. 청량감은 탄산음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앙칼진 바람, 매서운 겨울 바람이 내 마음으로 들어와 그 지경을 넓혀주고 있다. 자,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내가 있는 곳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하루의 문이 그렇게 열리고 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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