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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민을 '호갱' 취급하는 박근혜 정부

뉴스타파는 지난해 5월 22일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특종뉴스를 공개했다.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를 통해 역외탈세를 해온 재벌들과 부자들의 불법탈세 행위가 세상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날 뉴스타파가 발표한 1차명단에는 이수영 OCI 회장과 부인 김경자 OCI 미술관 관장,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과 부인 이영학씨, 조욱래 DSDL 회장과 장남 조현강씨 등 굵직굵직한 이름들이 들어 있었다. 


재벌과 부자들의 역외탈세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최승호 PD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쿡 아일랜드 등에 페이퍼 컴퍼니를 둔 한국인만 수백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수백만 건의 데이터 중 극히 일부분일 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역외탈세를 하고 있는 지는 알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는 뉴스타파가 밝혀낸 역외탈세자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지난해 영국의 조세정의네트워크(Tax Justice Network)는 역외탈세에 관한 의미심장한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970년부터 2010년까지 40년 동안 우리나라의 역외탈세 규모는 7790억달러(한화 약 870조)로 중국(1조1890억달러), 러시아(7980억달러)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우리나라 재벌과 부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치부를 보여주는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어마어마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욕심과 탐욕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끝이 없다. 


재벌과 부자들의 빗나간 탐욕은 국가는 물론이고 국민에게도 큰 불행을 야기시킨다. 따라서 건강한 정부라면 한쪽으로 쏠려있는 부가 골고루 분배될 수 있도록 이를 조정하고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어찌된 영문인지 오로지 재벌과 부자들만 신주단지 모시듯 편애하고 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기 마련인데, 한 손가락만 아프고 나머지 아홉개의 손가락이 고통에 신음하든, 상처가 나든, 잘려 나가든 아무런 관심이 없다면 어찌 제대로 된 부모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정부는 정규직 해고 요건을 완화하는 한편 임금 수준을 현재보다 낮추는 방안을 공식화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이 방안을 다음달 발표되는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명시하기로 했다. '정규직 과보호론'을 꺼내들며 노동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 25일 천안시 KB천안연수원에서 있었던 정책세미나에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 인력을 뽑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규직은 계속 늘어나는데도 월급도 계속 오르니 기업이 감당할 수가 없다. 사회 대타협을 통해 조금씩 양보를 해서 (노사가) '윈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정규직의 임금체계와 고용보호 등을 손볼 필요가 있다는 뜻을 피력했다. 


정치인들은 간계에 능하다. 그가 비정규직이 양산된 원인을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탓으로 여론몰이하고 있는 것은 전형적인 '간계'에 해당한다. 왜 그럴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 임금과 처우 등으로 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이중노동시장 문제를 끌어들여 본질을 희석시키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식은 이 정부의 노동시장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깊은지, 그리고 노동시장개혁의 영점이 얼마나 잘 못 잡혀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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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이중노동시장 문제는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노동계의 해묵은 숙제다. 문제는 노동자를 1차 노동자(정규직)와 2차 노동자(비정규직)로 구분했던 주체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있다. 노동자의 계급화를 부추긴 것은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유연화를 절대가치로 내세웠던 재계와 그리고 자본이었다. 재계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고, 고용의 유연화를 앞세워 비정규직을 대거 채용하면서 도약의 발판으로 십분 활용했다. 그 결과 재계는 외환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 빠르게 안정을 되찾아가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 이후로 지속된 대기업 우선 정책으로 엄청난 양적 팽창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추미애 의원실에 따르면 20대 대기업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사내유보금은 588조 9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막대한 이익은 노동자,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의 뼈를 깍는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동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기업이 살아나야 기업의 잉여자본이 고용과 투자로 이어지고, 결국 이로 인해 국민들의 삶도 풍족해질 수 있다는 이른바 '낙수효과' 이론으로 노동자들의 희생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재계가 축적한 잉여자본은 역외로 빠져 나가고, 사내로 흘러들었을 뿐 밑으로 뿌려지지는 않았다. 





7.30 재보선을 얼마 앞두고 정부는 기업들의 사내유보금에 과세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정부의 발표에 재계는 거세게 반발했고, 여론은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지난 9월 기획재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세법 개정안을 살펴본 국회 예산정책처는 기막힌 사실을 발견해 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기업들의 사내유보금 과세방안인 '기업소득 환류세제'를 검토한 결과, 이 제도가 도입돼도 50대 대기업은 과세 대상에서 전부 제외되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코미디도 이런 코미디가 없다. 재보선을 앞두고 정부와 재계가 가증스런 대국민 기만극을 연출한 셈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이에 대해 자신들의 셈법과 국회 예산정책처의 셈법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정부의 재계 챙기기를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재계의 이익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한 방편의 일환으로 정규직 때리기에 나선 것은 (그것도 이중노동시장의 오래된 갈등을 부추기는 간계를 써가면서) 황당할 뿐만 아니라, 비열하고 치졸하기 그지 없는 일이다. 


서두에 언급했던 재벌과 부자들의 역외탈세 870조, 대기업들이 사내에 차곡차곡 쌓아둔 사내유보금 588조 9500억원이 정상적으로 선순환되었다면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내수부족과 경기침체, 청년 취업 및 실업문제,  보육비와 급식비를 둘러싼 복지 논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중노동시장 문제, 인구고령화와 저출산 등의 사회 제반 문제들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구조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이며 혁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정부는 정작 뿌리뽑아야 할 우리사회의 구조적 적폐들은 감싸앉은 채 노동자 서민들의 고혈만 빼먹으려 하고 있다. 각종 기업감면 혜택과 부자감세를 통해 재벌과 부자들의 곳간을 채워 주기에 바쁜 정부가 담뱃세와 자동차세, 주민세 등 서민증세를 통해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려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다. 


박근혜 정부는 아홉개의 손가락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들을 '호갱'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행태들이다. 부모로 치자면 참 나쁜 부모요, 정부로 치자면 참 몹쓸 정부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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