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남경필 지사의 해명이 무책임한 이유

온 국민을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면에는 한국선급의 부실한 안전점검과 항만업계의 고질적인 비리도 크게 작용했다. 한국선급은 해양수산부의 위탁을 받아 대형 선박의 안전점검을 독점하고 있는 민간회사다. 그런데 한국선급은 지난 2월 세월호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하며 총 200여개 항목에서 모두 '양호' 판정을 내렸다. 이는 사고 이후 선박에 대한 각종 문제들이 무더기로 쏟아졌던 것을 감안하면 결국 한국선급이 부실검사를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선급의 부실한 안전점검이 세월호 참사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곱씹어야 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한국선급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사실도 드러났다. 한국선급의 오공균 전 회장이 2011년 쪼개기 후원금과 관련해서 실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한국선급은 2007년 선박안전법 개정문제가 국회에서 쟁점으로 부각하자 한국선급 업무와 직접 관련이 있는 국회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직원들 명의로 쪼개기 후원금을 보냈다. 한국선급이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법개정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입법로비를 벌인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직원들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토록 지시한 오공균 전 회장에게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벌금 200만원의 유죄를 선고했지만, 후원금을 받은 정치인들은 합법적으로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판단해 처벌하지 않았다. 불법적 후원금이 합법적 정치자금으로 돌변해 버리는 이 이해불가의 상황들은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 중의 하나다. 





어제(10일) 언론은 경기도와 IT(정보기술) 기술개발 지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벤처기업 대표 김모씨가 지난 6·4 지방선거 직전에 남경필 경기도지사에게 5000만원의 불법후원금을 건넨 사실을 일제히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은 경기도선거관리위원회가 남경필 지사의 회계보고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누구든지 법인 또는 단체와 관련한 자금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게 되어 있고, 타인 명의나 가명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관위에 따르면 김모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법인자금 5000만원을 500만원씩 나누어서 자신의 가족과 지인 등 10명의 명의로 남경필 지사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에서는 두살짜리 어린이 명의로 후원금 500만원이 입금되는 황당한 경우도 있었다. 


관련 사실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일단 경기도측은 "해당 업체 쪽에서 좋은 제안을 해 와 검토 후에 양해각석를 체결한 것"이라며 "후원 사실을 몰랐다. 전혀 별개의 일"이라고 선을 그었고, 해당기업은 "답변하지 않겠다"며 굳게 입을 닫고 있다. 그러나 파문은 쉽게 가라앉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남경필 지사에게 불법으로 정치후원금이 흘러들어간 것 자체도 문제지만 지방선거 이후 경기도와 불법정치자금을 건낸 벤처기업의 대표가 '스마트 경기도 구축 협업 추진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만약 남경필 지사가 사전에 이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불법 정치자금 수수뿐만 아니라 대가성 후원을 받았다는 뜻이다. 통상 대가성 정치자금은 불법 정치자금 관련 범죄 가운데 가장 죄질이 나쁜 범죄로 손꼽힌다. 이는 검찰의 사건 수사진행의 여부에 따라 남경질 지사의 도지사직 유지가 위협받는 상황까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 사건에서 남경필 지사에게 5000만원의 정치후원금을 건넨 벤처기업 대표 김모씨의 위법여부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법인자금으로 정치후원금을 기부했을 뿐만 아니라 타인 명의까지 이용해 후원금을 건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은 쟁점은 역시 남경필 지사의 정치자금법 위반혐의와 대가성의 여부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검찰은 선관위의 고발에 따라 벤처기업 대표 김모씨와 남경필 후원회 회계책임자를 소환해서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치후원금의 대가성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고, 이와 유사한 과거의 사례, 남경필 지사의 정치적 위상 등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남경필 지사는 논란이 확산되자 "불법후원금을 받은지 전혀 몰랐다"며 자신도 언론보도를 보고서야 알았다고 해명했다. 일단 논란이 터지면 관련 사실을 부인하고 증거가 제시되면 순순한 정치자금이었다고 국면전환을 시도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그동안 늘 보아오던 장면이었다. 물론 이번 경우는 후원금 기부과정 자체가 불법이었으므로 그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남경필 지사의 반응은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했던 정치인들의 교과서적인 대응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필자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남경필 지사가 이번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쪼개기 후원금을 받아왔다는 점이다. 입법로비의 대표적 사건이라 할 수 있는 2009년의 청목회 사건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쪼개기 후원은 현행 정치자금법을 교묘히 악용하는 정치자금 후원방법이다. 청목회 사건 이후에도 이같은 관행은 근절되지 않고 공공연하게 행해져 왔다. 서두에 언급했던 한국선급의 쪼개기 후원금 뿐만 아니라, 얼마 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새누리당의 박상은 의원도 해운 관련 업체들로부터 쪼개기 후원금을 받아온 사실이 밝혀졌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치과협회 입법로비 의혹에도 역시 쪼개기 후원금이 등장하며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 중이다. 





쪼개기 후원금은 그만큼 논란이 많고 문제의 소지가 많은 정치자금 후원방법이다. 언급했던 사례들에서 확인할 수 있듯 청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투명하지 못한 정치후원금의 성격이 짙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경필 지사는 문제의 쪼개기 후원방식으로 지금까지 세 차례나 정치후원금을 받아온 것이다. 따라서 정치자금법 규정을 교묘하게 악용하며 사회적 논란을 야기시켜온 문제의 방법으로 정치후원금을 받았으면서도 그저 몰랐을 뿐이라는 해명은, 그동안 5선 국회의원으로 대한민국의 입법을 담담해온 정치인이자 현 경기도지사로서 대단히 무책임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남경필 지사는 얼마 전 군목부 중인 아들이 후임병을 폭행하고 성추행한 사건으로 인해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아들과 관련된 논란 그 자체도 문제였지만 아들의 폭행과 성추행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틀 뒤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원 나혜석 거리에서 호프 한잔하고 있습니다. 날씨도 선선하고 분위기 짱~입니다. 아이스께끼 파는 훈남 기타리스트가 분위기 업 시키고 있네요"라는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지며 더 큰 사회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잘못인줄 알면서도 고치지 않았고 문제가 있음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았다. 이번 불법후원금 파문은 낡은 관성과 관행에 사로잡혀 공직자로서 올바르게 처신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얼마 전 있었던 '아들 논란'의 클리셰다. 검찰 수사의 결과에 상관없이 남경필 지사가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바람부는언덕이 여러분에게 보내는 초대장입니다 ☜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