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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윤봉길 의사 장손녀는 왜 보수정당을 선택했을까

ⓒ 아시아경제

 

SBS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썼네요.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이면서도 임시정부의 적통을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해온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에 전격 입당한 윤주경 전 독립기념관장(현 소속은 미래한국당)과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내용을 꼼꼼히 잃어보았습니다. 의아해하던 참이었거든요. 윤봉길 의사의 장손녀가 왜 하필 미통당을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잖아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한 독립투사의 장손녀가 미통당에 입당한다?.이는 레지스탕스 지도자의 손녀가 네오나치를 추종하는 당에 입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꼼꼼히 기사를 읽어봤어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올해 읽은 기사 중에 가장 황당하면서도 종잡기 힘든 기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기사의 제목이 "윤봉길 의사 장손녀가 보수 정당을 택한 이유"인데, 내용을 보면 은근히 윤주경씨를 디스하는 뉘앙스가 느껴지기 때문이죠. 어쩌면 정작 기자 자신도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유는 기사를 읽어보면 알 수 있는데요. 윤주경씨의 자질과 능력, 인식의 깊이가 기자의 눈높이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가 기사 속에 확연히 드러나는데요. 다 소개할 수는 없고 일부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자유한국당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여러 차례 물었는데 답변은 매번 겉돌았다. 자유, 평화, 정의, 통합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나열된 답변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독립운동은 특정 정파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말 정도가 귀에 들어왔다.'

'자기만의 단어로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독립운동은 단순히 민족의 독립을 위한 투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종식을 통해 평화의 세상을 만들어나가려는 인류 평화운동이었다는 주장은 꿈꾸는 자의 말처럼 들렸다. 이런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이 왜 그 당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답변이 못내 아쉬워서 전화 인터뷰 후에 별도로 질문서를 보냈다. 미진한 부분에 대한 보완 메일까지 보내며 성의 있게 대답하려 한 흔적이 느껴졌지만 서면 답변 역시 본인의 표현을 빌린다면 구체적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서면 질문서를 보내자 윤 씨는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답을 보내겠다고 했고 답 메일은 5시 24분에 도착했다. 메일을 보낸 뒤에 스스로 생각해도 미진한 부분이 있었던지 6시 22분, 6시 52분에 추가 답변을 보내왔다. 메일에 담긴 답변 내용은 아쉬웠지만 그녀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가요. 기자의 심정이 느껴지시나요? 추측컨대 기자는 윤주경씨로부터 자기 철학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답변이 매번 겉돌았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듣기 어려웠다, 꿈꾸는 자의 말처럼 들렸다, 답변이 못내 아쉬웠다, 서면 답변 역시 구체적이지.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10년 넘게 정치 관련 각종 인터뷰 기사를 봤지만, 이런 식으로 인터뷰 대상을 디스(?)하는 것은 난생 처음 봅니다.

그만큼 당황스러웠다는 방증이겠죠. 물론 기자는 미안했던지 기사의 말미에 윤주경씨가 성실하고 부지런한 사람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버스는 이미 지나간 뒤입니다. 성실과 근면, 부지런함이 정치인의 덕목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곤란하죠. 정치인은 확고한 자기철학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구체적이고 분명한 언어로 자기 생각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자가 보기에 윤주경씨는 그 부분이 많이 부족해 보였나 봅니다. 그러니 이런 황당한 기사가 나온 것이겠죠. 명색이 총선인터뷰인데, 결과적으로 윤주경씨의 밑천을 까발린 셈이 돼버렸습니다. 그나마 윤주경씨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건, 그가 비례대표(미래한국당 1번)라는 겁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인터뷰로 '윤주경 선거캠프'가 발칵 뒤집혔을 겁니다.

"2014년에 독립기념관장이 되어서 직원들 앞에서 서는데 왠지 쑥스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뭘 잘해서 그 자리에 오른 것은 아니잖아요. 다 할아버지 덕분이잖아요. 독립기념관장 자리에 간 것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있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제 맡은 일을 잘해야 할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도 그런 생각입니다."

읽는 내내 답답함이 가슴을 짓눌렀지만, 이날 기사 내용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윤주경씨가 할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바로 저부분이었습니다. 윤주경씨는 할아버지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이 기자가 애둘러 지적한 윤주경씨의 '생각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사실 이 부분은 자유한국당을 왜 택했느냐는 기자의 본질적 질문과도 맥락이 닿아있습니다. 그러나 기사 어디에서도 윤주경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마 기사의 제목을 "윤봉길 의사 장손녀가 보수 정당을 택한 이유"라 뽑은 기자 역시 그 답을 찾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윤주경씨도 마찬가지일지 모르죠.

그러나 상식을 가진 이들의 평가는 윤주경씨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어이없다는 반응이 일반적이니까요. 어찌됐든 한 가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윤주경씨가 참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할아버지의 얼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냈으니까요. 알면서 그랬다면 손녀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고, 모르고 그랬다면 진짜 생각이 없는 것이겠죠.

전자이든 후자이든 참 씁쓸하네요. 독립투사 윤봉길의 장손녀가 친일독재 비호 정당 미통당에 입당했습니다. 어떤 속사정이 있든, 어떤 이유를 댄다 한들 납득하기 힘든, 자가당착이자 이율배반입니다. 애통해하는 윤봉길 의사의 통곡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