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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윤석열의 법과 원칙은 어디로 사라졌나

ⓒ오마이뉴스

민감한(?) 시기 광주를 찾은 윤석열 검찰총장이 오월단체 소속 회원들에게 거세게 항의를 받는 일이 벌어졌다.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윤 총장은 20일 광주고검·지검을 방문해 간부 및 직원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바로 옆 광주고등법원까지 도보로 이동해 황병하 법원장과 환담을 나눴다.

환담 이후 윤 총장이 정문을 빠져 나오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녀와 남편을 잃은 '오월 어머니'들은 '윤 총장은 오월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그의 입장을 물었다.

윤 총장 일행과 '오월 어머니'들과의 마찰은 그때 일어났다. 윤 총장이 아무 말 없이 승용차에 오르자 '오월 어머니'들이 차량 앞을 가로 막으며 항의를 했고, 이 과정에서 법원·검찰 직원들과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한바탕 실랑이가 펼쳐진 것이다.

이와 관련 '오월 어머니'들은 "우리가 뭘 나쁘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질문을 담은 종이라도 전달하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못하게 했다. 40년간 억울함을 견딘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라며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한편 이날 광주고검·지검 앞에서는 '윤 총장 환영 집회'와 '검찰 개혁 촉구 집회'가 동시에 열려 눈길을 끌었다. 단체들은 각각 '문재인 방빼', '윤석열 잘한다',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해도 되는 건가', '표창장은 안되고 주가조작은 되는 건희' 등의 내용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집회를 진행했다. 윤 총장을 향한 작금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리라.

검찰총장의 일거수일투족이 이처럼 뜨겁게 조명을 받는 사례는 일찌기 유례가 없던 일이다. 총장 임명 전부터 이미 스타 검사였던 그는 취임 이후 더 유명해졌다. 전력질주하듯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7개월이 윤 총장의 이름을 또렷이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인지 최근 있었던 한 여론조사에서는 윤 총장이 차기대선주자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대선주자의 반열에까지 오른 윤 총장에게 이날의 해프닝은 어쨌든 그리 유쾌하지 않은 소동인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취임 이후 첫 지방 순회 방문에서 곤혹스러운 질문과 거친 항의를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날 검찰 개혁을 촉구하는 시민단체의 손에는 윤 총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의미심장한 손팻말이 들려있었다. 얼마 전 <뉴스타파>의 보도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킨 윤 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주가조작 연루 의혹이 바로 그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과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하명수사'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검찰의 수사 행태에 대한 비판은 이날 시민단체가 들고있던 손팻말 문구 속에 압축적으로 녹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표창장은 안되고 주가조작은 되는 건희'. 맥락상, 조 전 장관 자녀의 표창장 의혹을 먼지 털듯 수사했던 검찰이라면 김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역시 같은 잣대를 적용해 수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내사 당시 김씨가 내사 대상이 아니었다는 경찰 측의 입장이 나오기는 했지만, 주식거래 과정의 수상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만큼 검찰이 수사에 나서야 된다는 지적이다. 조 전 장관과 청와대 등 정권 수사 과정에서 확인된 추상 같은 단호함에 미루어본다면 의당 그래야 하지 않을까.

윤 총장은 그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윤 총장의 내세운 법과 원칙은 자의적이고 선택적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조 전 장관 일가 의혹과 맞물며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다니는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 자녀 의혹 수사가 그 비근한 예다.

나 의원 자녀 의혹을 줄기차게 파헤치고 있는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는 17일 '나경원 의원 자녀들의 황금스펙 3'편을 방송했다. 이날 방송에서 취재진은 나 의원의 아들 김아무개 씨가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에 제출한 포스터의 문제점을 더욱 심층적으로 다뤄 주목을 끌었다.

방송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취재진은 IEEE를 직접 방문해 포스터 표절의혹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후 IEEE 내부에서는 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IEEE 지적재산권 책임자는 취재진에게 포스터 표절 의혹에 대한 조사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고, 당시 고등학생이던 김 씨의 소속이 서울대 대학원으로 표기된 것에 대해 명백한 윤리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브라이언 리 박사 (미 메사추세츠공대 고문, IEEE회원) 역시 표절 의혹을 정리한 보고서를 작성해 미국의 논문 검증 기관의 검수를 의뢰했다고 밝혔는가 하면, 논문검증기관 조이 메네스 박사는 "저 아이템들은 분명히 표절"이라 명확하게 꼬집기도 했다. IEEE 측이 늦어도 5월까지는 결론을 낼 예정이라 밝힌 만큼 의혹의 윤곽은 조만간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스트레이트>는 성신여자대학교 부정입학과 성적조작 의혹을 받고있는 나 의원 딸에 대한 새로운 특혜 의혹도 제기하기도 했다. 나 의원 딸이 성신여대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15년 5월, 대학 측이 특혜성 해외 연수를 보내려 했던 정황이 포착됐다는 것이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성신여대 국제교류 처장은 위스콘신 대학에 장애 학생 해외 연수 지원프로그램 관련 이메일을 보내면서 학생에 대한 지원 등 나 의원 딸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지 문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처장은 학생 어머니의 부탁을 받았다며 메일 마지막에 "사실은 이 학생이 나경원 국회의원의 딸이에요"라고 나 의원 딸의 이력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나경원 의원실은 18일 "가지도 않은 해외연수를 들먹이며 ‘스펙쌓기’ 정황이라 주장하고 장애인에 대한, 스페셜올림픽에 대한 그간의 노력이 사적인 것으로 폄훼·왜곡된 점은 안타까운 부분"이라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법적 조치를 강구해 법의 엄정한 심판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앞서도 나 의원은 <스트레이트> 취재진을 상대로 3000만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청와대와 여권 실세를 향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나경원 의원 의혹 수사도 제대로 해야 한다. 나 의원 역시 전화 한 통이면 서울대 실험실을 빌릴 수 있는 그런 힘 센 분이기 때문이다. 조국 수사 때 검찰이 보여줬던 정성과 노력의 100분의 1, 아니 200분의 1이라도 기울이면 이번 사안의 시시비비는 금방 가려질 것이다."

방송이 끝나갈 무렵 <스트레이트> 조승원 기자가 검찰을 향해 날린 묵직한 '돌직구'다. 나 의원 자녀 의혹의 실체적 진실 못지 않게 중요해 보이는 이 멘트는 많는 사람들이 수긍할 법한, 그리고 법과 원칙을 강조해온 윤 총장이 새겨들어야 할만한 일침이라 할 터다. <스트레이트> 측이 나 의원 자녀 의혹을 파헤치는 근본적인 이유가 조 기자의 발언 속에.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조 전 장관 일가를 비롯한 정권 수사에는 전광석화와 같이 속도를 내던 검찰이 나 의원 자녀 의혹,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 등 관심이 집중된 다른 사건에는 상대적으로 더딘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한 합리적인 문제 제기로 보이기 때문이다.

앞서 윤 총장 부인 김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거래 의혹을 제기한 <뉴스타파>는 19일 '검사 윤석열의 법과 원칙, 그리고 이중잣대' 편을 통해 윤 총장이 강조해온 법과 원칙을 집중 분석했다. 이날 방송된 윤 총장의 과거 인사청문회 및 국회 국정감사 발언 중 일부를 옮겨본다.

"정치적 고려에 흔들리지 않고 저희가 법과 원칙대로 어떠한 사건이든지 철저하게 엄정하게 처리하도록 약속드리겠습니다."

"제가 25년 검사 생활하면서 정권은 변했지만 저희는 어떤 경우에도 법대로 사건을 처리했다고 그 부분은 제가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의 주인이자 의뢰인은 오직 국민밖에 없다 생각하고, 국민을 위한, 국민과 함께하는 검찰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19년 7월 8일,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누차 말씀드린대로 저희는 헌법과 국민을 생각하면서 어떠한 사건이든지 원칙대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2019년 10월 17일, 대검찰청 국정감사)

윤 총장의 법과 원칙, 그리고 수사 행태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표하는 이들이 비단 <스트레이트>와 <뉴스타파> 등 언론 뿐일까.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수많은 정치 수사와 제 식구 감싸기 행태 등을 상기하면 윤 총장은 시쳇말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야 할 지경이다.

세간의 따가운 시선은 '검찰' 스스로 자초한 바다. 윤 총장은 헌법과 국민을 생각하면서 어떠한 사건이든지 법대로, 원칙대로 공정하고 엄격하게 수사겠다고 다짐하고 강조해왔다. 검찰의 주인이자 의뢰인은 '국민'밖에 없다는 비장한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이쯤되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조 전 장관 일가와 청와대 및 여권 인사를 향한 수사에는 표범처럼 달려들면서 세월호 수사 외압 의혹은 왜 수사하지 않는가. 기무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사건,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가 고발한 공문서 위조 사건은 왜 감감무소식인가. 사문서위조 혐의로 고발된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과 무려 10차례나 고발장이 접수된 나 의원 관련 의혹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

수많은 이들이 제기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한 자연스러운, 그러나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다. 검찰의 선택적, 이중적 수사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윤 총장이 생각하는 법과 원칙이란 무엇인가. 윤 총장은 답해야 한다. 검찰의 '주인'이자 '의뢰인'인 국민들이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