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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비례대표 없앤다더니, 비례대표 위성정당 만든 한국당

ⓒ 동아일보

5일 자유한국당의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이 창당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습니다. 한국당이 위성정당을 만들지도 모른다는 세간의 우려가 결국 현실이 된 것입니다.

지난해 연말 선거법 개정안 논의 과정에서 위성정당 논란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4+1협의체'(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대안신당)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하자 한국당은 비례대표를 위한 위성정당을 만들겠다고 맞불을 놓았습니다.

12월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따라 21대 국회 의석은 지역구 253석과 비례대표 47석으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정당득표율의 연동률은 50%, 연동률 적용 캡은 30석으로 제한되기 때문에 지역구 비율이 높은 민주당과 한국당의 비례대표 의석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이 찾아낸 해법이 바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입니다. 한국당은 지역구만 공천하고 미래한국당은 비례대표만 공천하는 방식으로 의석수를 늘리겠다는 발상입니다. 위성정당의 창당을 막을 방법이 없는, 현행 선거제도의 빈틈을 노린 일종의 꼼수인 셈이죠.

한국당의 전략은 정치권 안팎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게 됩니다. 위성정당의 존재 자체가 대의민주주의와 선거제도의 근본을 뒤흔드는 일인 데다가, 유권자를 무시한 채 오로지 의석만 챙기겠다는 정략적 행태에 각계의 비판이 솟구친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당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한국당'의 정당 명칭 사용을 불허하자 위성정당의 이름을 '미래한국당'으로 변경시키며 발빠르게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 한선교 의원을 당 대표로 하는 '한국당의, 한국당에 의한, 한국당을 위한'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한 것입니다.

창당대회에 참석한 황교안 대표는 "무너진 나라를 살리기 위한 자유민주세력의 고육지책이고 헌정을 유린한 불법 선거법 개악에 대한 정당한 응전"이라며 "자유한국당과 미래한국당은 한마음 한 몸으로 움직이면서 문재인 정권 심판이라는 대의를 위해 손잡고 달려갈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위성정당 창당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점을 강조한 것입니다.

한국당은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이 '4+1협의체'에 의해 독단적으로 처리된 만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제1야당인 한국당을 배제한 채 범여권 주도로 이뤄진 선거법 개정안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죠.

그러나 선거법 개정안 처리 과정을 살펴보면 한국당의 주장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 드러납니다. 우리나라는 승자독식의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받은 사람이 당선되는 소선거구제는 사표가 많이 발생해 민의를 왜곡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소선거구제는 지역주의와 결부돼 특정 지역에서 특정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는 부작용도 심각합니다. 정치 갈등과 대립을 부추겨 정당의 정책 발전을 가로막고, 신생정당의 원내진출을 봉쇄해 정치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과열·혼탁 선거를 유발하는 단점도 있습니다.

이같은 맹점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거론돼온 것이 바로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정당 지지율에 따라 전체 의석을 배분 받기 때문에 득표율과 의석수의 비례성이 높아져 실제 표심이 국회 의석에 반영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지역주의 완화에도 기여할 수 있고, 양당정치의 폐해 극복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치개혁을 위한마중물로서 정치권 안팎에서 오랫동안 연구돼온 방안입니다. 이같은 명분을 의식해서인지 한국당도 처음부터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2018년 지방선거 참패 직후에는 김성태 당시 원내대표가 직접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서 기존의 입장에 함몰되고 매몰되지 않겠다"라며 전향적인 태도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지방선거 직후 21대 총선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선거제도 개편 카드를 만지작거리게 된 것이죠.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후 한국당은 선거제도 논의에서 사실상 발을 뺐습니다. 선거법 개정을 위해 가동된 정개특위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한국당은 원구성 과정부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더니 끝까지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이후의 과정은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한국당은 차일피일 시간만 끌면서 선거법 개정 논의 자체를 무력화시켰습니다. 당론조차 내지 않고 있다가 여야 5당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선거법 개정안에 합의하자, 그제서야 부랴부랴 자체안을 내놓았습니다. 그것도 이전의 모든 논의를 백지장으로 만드는 비례대표 폐지안이었습니다.

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은 소선거구제가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지역주의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리고 있는 한국당으로서는 소수정당에게 유리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굳이 도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거대 정당의 과다 대표 문제를 개선하고 소선거구제의 부작용과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노력은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선거법 개정안은 '패스트트랙'에 올려지게 됩니다. 한국당은 '불법 프레임' 전략으로 맞섰습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은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의 주도로 2012년 도입된 국회법 절차입니다. 특정 정당의 반대로 법안 처리가 무기한 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한 합법적 수단인 것이죠.

그러나 한국당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과거 자신들이 주도해 만든 법안을 부정하면서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를 일으키더니, 국회법 절차에 따라 진행된 선거법 개정안 처리마저 불법이라 규정했습니다. 그리고 급기야 '미래한국당'이라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창당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2018년 12월 한국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합의 처리하기로 약속했지만 이내 말을 바꿨습니다. 얼마 뒤에는 선거제 논의를 완전히 뒤짚는 비례대표 폐지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비례대표 의석을 위한 위성정당까지 만들었습니다.

같은 사안을 두고 공당의 입장이 고무줄처럼 이리저리 춤을 춥니다. 이는 한국당이 시대적 과제인 정치개혁보다 눈 앞의 이익, 다시 말해 의석수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시사해 줍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선거제도 개편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당의 어깃장과 몽니, 그리고 위성정당 창당이라는 이 기막힌 촌극을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한국당의 전략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해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만, 일단 여론은 위성정당에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리얼미터가 지난해 12월 27일 CBS의 의뢰로 비례정당 창당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 ±4.4%p. 전국 성인 504명 대상)에 따르면, '반대한다'는 응답이 61.6%('찬성한다' 25.5%)로 조사됐습니다.

지난달 1일 발표된 MBC 신년 여론조사(코리아리서치인터네셔널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전국 성인 1007명 대상)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한국당의 위성정당 창당에 대해 '의석만 얻으려는 편법'이라는 응답(59.6%)이 '불가피한 선택'(28.5%)이라는 의견보다 2배 이상 많았습니다. 한국당 비례위성정당이 만들어진다면 총선에서 그 정당에 투표를 하겠느냐는 질문에도 '투표하지 않겠다'(61.8%)라는 응답이 '투표하겠다'(31.8%)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미래한국당 창당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정치 후진국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으니 논란은 당분간 피할 수 없을 듯 보입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은 한국당의 묘수가 될까요, 아니면 악수가 될까요? 그 결과가 아주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