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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황교안의 10개월, 기억에 남는 건 '대정부 투쟁' 하나

ⓒ 동아일보

 

"이 단상을 내려가는 그 순간부터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맞서 국민과 나라를 지키는 치열한 전투를 시작하겠다"

지난 2월 27일 경기 고양 킨덱스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50%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 대표에 선출된 황교안 대표가 수락 연설에서 내뱉은 취임 일성입니다.

황 대표가 제1야당의 얼굴이 된 지 10개월. 황 대표가 천명한 이 목표(?)는 과연 어떻게 돼가고 있을까요.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 목표를 120% 초과 달성했다고 표현해도 무리는 없을 듯 보입니다.

황 대표의 공언처럼, 한국당이 올 한 해 정말 원 없이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냐 하면,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싸움이 놀랍게도 세밑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정치사에 과연 이런 적이 있었나 싶게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황 대표가 취임하기 전부터 국회는 이미 두 달 가까이 개점휴업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국당은 '김태우 특검', '신재민 청문회', '손혜원 국정조사' 등의 조건을 내걸며 국회 등원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한국당의 국회 보이콧이 정치 초년생이었던 황 대표에게 어떤 시그널이라도 준 것일까요.

황 대표는 취임 이후 적극적인 대정부 공세를 펼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공안검사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의 요직을 지낸 황 대표에게 어쩌면 문재인 정부의 존재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실제 황 대표는 취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던 3월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문재인 정권의 핵심은 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이라며 "자유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이들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황 대표의 대여투쟁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4월 20일 서울 광화문 광장 집회에 모습을 드러낸 황 대표는 "문재인 정권의 좌파독재를 끝낼 때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황 대표의 이 말은 이내 현실이 됐습니다.

얼마 뒤 여야 4당이 한국당을 빼고 선거법 개정안·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안 등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시키자 황 대표는 장외투쟁을 선언하며 국회 밖으로 전선을 확대시켰습니다.

한국당은 국회 의사일정을 전면 거부하며 '민생투쟁'에 나섰습니다. 국회의 주된 책무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민생 관련 법안을 심사하고 의결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당은 민생을 위한다면서 민생을 방치하는 이율배반적 장외 투쟁을 펼쳤고, 국회는 그로 인해 두 달 가까이 공전해야 했습니다.

1~2월에 이어 4월과 5월, 6월에도 국회는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이에 국회에 대한 성토가 빗발쳤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국회의원의 '세비반납'을 요구하는 게시글이 잇따라 오르기도 했습니다. 6개월 중 무려 5개월 가까이나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천만 원이 넘는 세비는 꼬박꼬박 챙기는 의원들을 향해 민심이 요동친 것입니다.

비판은 특히 국회법에 따라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패스트트랙을 불법이라 호도하며 장외투쟁에 나선 한국당에게 집중됐습니다. 실제 그 즈음 국회 파행의 책임을 묻는 여론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보다 한국당의 책임이 크다는 의견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을 주도했던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이 패스트트랙을 걸고 넘어지는 것 자체가 앞 뒤 말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랐습니다. 처리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음에도 명분없는 보이콧을 일삼으며 민생·개혁 입법을 가로막고 있다는 쓴소리도 나왔습니다.

한국당의 행태는 후반기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툭하면 장외투쟁과 의원직 총사퇴 카드를 꺼내들며 공세의 고삐를 내려놓지 않았습니다. 조국 정국 당시에는 주말마다 대규모 장외집회를 이어가며 대대적인 반정부 투쟁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 황 대표는 전격 삭발을 감행해 힘을 보탰습니다. 경제·외교·안보 등 무엇 하나 속시원하게 풀리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국회를 저버리고 정쟁에만 매몰돼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황 대표는 얼마 뒤 단식까지 벌이며 투쟁의 강도를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한국당의 대여투쟁 기조는 연말이 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칭)으로 구성된 '4+1'협의체 주도로 2020년 정부예산안이 통과되자 한국당은 국회 로텐더홀 앞에서 자리를 깔고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안 등 패스트랙으로 오른 안건에 대한 국회 본회의 의결을 저지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예산안 의결을 막지 못한 한국당은 이번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며 결사항전의 태세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 충돌 당시의 '동물국회'가 재연될 수도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만 하면 치열하다 못해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요. 대표 수락 연설에서 호언장담했던 대로, 적어도 '반정부 투쟁' 하나 만큼은 역대 누구와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화끈한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아,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대표 수락 연설 당시 황 대표는 이런 말도 했습니다. "정책정당·민생정당·미래정당으로 한국당을 담대하게 바꿔나가겠다", "혁신의 깃발을 더욱 높이 올리고, 자유 우파의 대통합을 이뤄내겠다"고 말이지요. 이 약속들은 과연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투쟁 이외에는 보여준 것이 별로 없는 황 대표의 전략 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는 투쟁 일변도의 전략에서 조금은 벗어나 '국민과 나라'를 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펼쳐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2020년 총선과 2022년 정권교체를 위해서는 '싸움의 기술'을 어필하는 것보다 '정책과 비전', '혁신과 통합'의 미래 가치를 제시하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중요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