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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황교안의 단식투쟁은 왜 '민폐' 소리를 듣고 있나

ⓒ 연합뉴스

 

자유한국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3선 중진 김세연 의원의 총선 불출마 선언 후폭풍이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김 의원이 한국당 해체를 포함한 전면적 쇄신과 대대적 물갈이를 요구하고 나서자 당 안팎으로 커다란 파장이 일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김 의원이 한국당을 "생명력을 잃은 좀비", "비호감 역대급 1위",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 "한국당은 수명이 다했다", "대선 승리는커녕 총선 승리도 어렵다"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고,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의 불출마까지 촉구하자 당 분위기는 벌집을 쑤신 듯 뒤숭숭해졌다.

한국당 원내대표를 지낸 정우택 의원은 19일 KBS 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한국당이 해체돼야 하고 소명을 다한 '좀비 정당'으로 판단한 사람이 이번 총선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여의도연구원의 원장직을 계속 수행한다는 것은 코미디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본인 스스로 (원장직을) 내려놓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장제원 의원도 같은날 KBS1 '사사건건'에 출연해 "안타깝다 못해 속상했다. 보수를 혁신하고 개혁하겠다는 친구가 불출마를 선언하니까 속상하다"라고 운을 떼며,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 의원이 같은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임 전 실장은 당의 폭탄을 제거하고 떠났는데 김 의원은 당에 폭탄을 투하하고 떠났다"고 에둘러 비판했다.

김 의원의 소신 발언에 당 내분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불출마 선언에 대한 당내 반응도 크게 엇갈리고 있다. 김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자기희생적 결단으로 평가하면서도, 막말에 가까운 독설로 분란과 분열을 초래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주목할 것은 김 의원이 황 대표와 나 원내대표 등 '지도부 용퇴론'까지 거론했다는 사실이다. 김 의원은 불출마 선언에서 "민주당 정권이 아무리 폭주를 거듭해도 한국당은 한 번도 민주당을 넘어서 본 적이 없다"며 "감수성이 없고, 공감능력이 없고, 소통 능력도 없으니 사람들이 우리를 조롱하는 걸 모르거나 의아하게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이는 다분히 지도부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실제 조국사태를 기화로 정부-여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되면서 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 격차가 상당히 좁혀지기도 했다. 보수층이 결집하고 무당층이 증가하면서 한국당이 상대적으로 반사이득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 한국당은 스스로 자멸했다. 조국 장관 청문위원 표창장 수여 논란, 패스트트랙 의원 공천 가산점 부여 논란, 공관갑질 의혹의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영입 논란 등 내부 악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지지율은 다시 곤두박질쳤다.

지도부 용퇴를 주장한 김 의원 역시 이 부분을 꼬집고 있다. 성찰과 쇄신이 없는 현재의 한국당으로는 정부-여당에 실망한 민심을 끌어안기에 한계가 너무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는 민심을 전혀 읽지 못하는 지도부의 공감능력 부족과 불통 행보 역시 강하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개혁보수 이미지에 탄탄한 지역기반(부산 금정)까지 갖춘 차세대 리더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불출마 선언을 통해 강조한 것은 결국 당의 전면적인 쇄신과 변화다. 기존의 관성과 정치 문법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당의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다는 날선 일침인 것이다.

그러나 김 의원의 날카로운 지적에도 한국당은 역시나다. 지도부 용퇴까지 거론하며 대대적 쇄신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내분만 격화되고 있을 뿐 변화를 위한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 와중에 최근 리더십에 위기를 맞고있는 황 대표가 돌연 단식 투쟁을 선언하고 나서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20일 지소미아 종료 철회와 패스트트랙 철회를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황 대표는 이번 단식에 "목숨을 걸겠다"며 청와대와 여당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 한겨레



황 대표의 단식에 뒷말들이 무수히 쏟아지고 있다. 지소미아 종료와 선거법-공수처법 처리를 막어보겠다는 구실을 내걸었지만, 최근 각종 구설에 오르며 리더십에 타격을 입은 황 대표가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단식 카드를 꺼내든 것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리더십의 위기를 대여투쟁으로 극복해보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황 대표가 내건 명분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황 대표는 "일본과의 경제 갈등을 지소미아 폐기라는 안보 갈등으로 바꾸고 미국까지 가세한 안보, 경제전쟁으로 밀어넣었다"며 문 대통령을 겨냥했다. 그러나 지소미안 논란의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는 우리 정부가 아닌 일본이다.


정치와 무관한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정치 문제로 비화시키고 이를 다시 경제 문제로 연계시켜 보복 조치를 감행한 것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황 대표의 주장은 일본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아베 내각의 경제보복 조치에 분노하는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동떨어진다.

패스트트랙 철회 요구 역시 마찬가지다. 황 대표는 국회법-그것도 2012년 자신들이 주도해 만든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합법적 절차로 발의된 패스트트랙 안건을 '불법'이라 규정하더니, 급기야 공수처법을 가리켜 "문재인 정권에 반대하는 자를 감옥에 넣겠다는 악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패스트트랙 의제는 청와대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 국회 내에서 여야간 협상으로 풀어야할 정치적 문제를 문 대통령이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앞뒤 말이 맞지 않는 정치공세에 지나지 않는다. 고위공직자 비리 근절을 위한 공수처법 도입에 찬성하는 다수 국민의 인식과도 상당한 간극이 있음은 물론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황 대표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위해 극단적인 방식을 총동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색이 제1야당의 대표라면 국회 내에서 협상과 조율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선이다. 장외투쟁-삭발-단식 등은 그 다음에 생각해 볼, 말 그대로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대표는 지난 2월 전당대회를 통해 한국당 대표로 선출된 이후 강력한 대여투쟁만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건설적 비판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보다 '반대를 위한 반대'와 맹목적인 떼쓰기로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까지 듣고 있는 실정이다.

당 내부에서도 황 대표의 전략부재와 리더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 "좀비", "민폐" 등 강한 어조를 섞어가며 '지도부 용퇴론'을 주장했던 김 의원의 뼈저린 일성도 이같은 당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인적 쇄신과 성찰 없이 과거의 낡고 고루한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의 표현인 셈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김 의원의 충정 어린 고언도 무위에 그칠 모양이다. 황 대표의 '단식'이 이같은 추론에 무게를 실어준다. 지금은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차대한 시기다. 지소미아 종료, 방위비 분담 갈등 , 경색된 남북-북미 관계 등 외교-안보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전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이어지면서 경제 여건이 악화되고 민생 역시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여야가 초당적으로 협력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정치권에 기대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런 막중한 시국에 황 대표는 뜬금없이 단식투쟁에 나서고 있다. 그것도 지소미아 종료와 패스트트랙 처리 철회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명분을 내세운 채 말이다.

정치권을 비롯해 시민사회는 황 대표의 단식투쟁을 일제히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이재정 민주당 대변인은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라는 김 의원의 쓴소리를 패러디한 듯 "황 대표의 단식은 명분이 없음을 넘어 민폐"라고 비판했다. 황 대표가 진심으로 민생과 안보를 걱정한다면 투쟁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처럼 안팎으로 "민폐" 소리를 듣다간, 김 의원 말마따나 대선은커녕 총선 승리도 난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