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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세월호 참사 재수사, 실체규명의 핵심은 박근혜와 황교안

ⓒ 한겨레

 

세월호 참사는 이전에 있었던 참사들, 이를테면 'KAL기 폭파사건', '성수대교 붕괴', '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경주리조트 붕괴' 등의 사건들과는 확연히 차원이 다른 사건이었다.

사건 그 자체로도 경악할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는 '불가항력'이나, 우발적 범행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 인간, 더 정확히는 이 사회의 무능과 무책임이 빚어낸 '인재'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무엇보다 끔찍하고 충격적이었던 것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해경, 승무원 등에게 승객들을 반드시 구조해내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는 데에 있었다.

눈 앞에서 승객들이 애타게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이를 보고도 이들이 현장에서 한 일은 거의 없다. 선내 진입은 애초부터 꿈도 꾸지 않았고, 그저 멀뚱하니 배가 침몰하는 것을 지켜보거나 자기 먼저 살겠다고 선체를 유유히 빠져나갔을 뿐이었다.

나는 이렇게 무섭고 괴기스러우며 절망적인 장면을 일찌기 보질 못했다. 간절히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며 선내에 머물러 있던 승객들, 아직 채 꽃피지도 못한 수많은 아이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우리 곁을 떠나갔다. 

승객들을 뒤로 한 채 제 목숨 살기에 급급했던 승무원들, 해경의 엉성한 초동 대응과 소극적인 구조 작업, 박 전 대통령 이하 정부와 공직사회의 안일한 상황인식과 사고수습 대처,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망각한 언론과 방송사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져있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세월호 참사 당시 박근혜 정부는 위기관리시스템의 총체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냈다. 그들은 무능하고 무책임했을 뿐 아니라 사고와 관련해 잘못된 사실을 공표하고 방송과 언론을 통해 거짓과 내용 부풀리기에 나서는 등 여론을 호도하려는 기만적인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온라인과 소셜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 책임론이 거세지자 SNS를 통제하고 이를 색깔론으로 물타기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당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국가안보실은 재난 대처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그만큼 정부는 끔찍하리만큼 무능하고 태만했으며, 무책임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세월호 참사의 참상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직까지 실체적 진실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있는지도 모른다. 국가적 대참사에 횡설수설을 연발하던 박 전 대통령의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져 있으며, 책임자 처벌과 진상규명 움직임에 외압을 행사한 관련자에 대한 수사도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한겨레


세월호 참사 피해자 단체가 15일 검찰에 사고 책임자 40명을 고소·고발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이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세월호 참사 책임자를 고소·고발한다"며 박 전 대통령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김장수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참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등 40명을 고소·고발했다.

검찰은 최근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면 재수사 방침을 천명하며 이번이 마지막 수사라는 각오로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바 있다. 검찰에 따르면 이번 재수사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직접 수사를 지휘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기획-표적 수사 논란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검찰이 패스트트랙 폭력 사건 수사와 세월호 참사 재수사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그간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참사 당시의 진실과 수사외압 의혹이 밝혀질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가장 먼저 강구되야 하는 것은 사고의 원인에 대해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는 일이다. 그 다음이 책임소재에 따른 책임자 처벌, 그리고 그 다음이 근본적인 시스템의 개혁, 마지막이 시스템을 운용할 사람에 대한 인적 쇄신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는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없다. 진상규명은 참사가 발생한지 5년이 넘도록 되지 않고 있고, 책임자 처벌도, 시스템 및 제도 혁신도 요원하다. 그나마 이마저도 정권이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을 터다.

그런 면에서 이번 재수사는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은 물론 책임자에 대해 준엄하게 책임을 묻는 데에까지 나가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 땅에 이와 같은 국가적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 대한 수사도 철저히 해야 한다. 참사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황교안은 2014년 11월 세월호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해경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시 변찬우 광주지검장을 크게 질책했고, 법무부 라인을 통해 대검과 광주지검을 지속적으로 압박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황교안은 박근혜 정부의 2인자이면서 박근혜의 '가케무샤'의 역할을 했던, 사법농단·재판거래 관련 의혹, 기무사 계엄령 문건 의혹, 그리고 국정농단 방조 의혹까지 받고있는 문제적 인물이다.

의혹대로라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고,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세월호 참사 수사의 불똥이 대통령과 정부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 수사팀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한 셈이 된다. 


이번 재수사의 촛점이 참사 당일 박근혜의 행적과 함께 세월호 수사를 방해하고 외압을 행사한 황교안에게 집중돼야 하는 이유일 터다.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로 의혹의 실상을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그것이 하늘의 별이 된 아이들에게 뒤늦게마나 국가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