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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경심은 구속..국정원녀 김씨는 기소유예, 무죄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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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당시 불거진 국가정보원 댓글공작 사건(국정원 사건)의 핵심 당사자였던 국정원 여직원 김모(35)씨가 위증 혐의와 관련된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박상구 부장판사는 23일 위증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기억에 반하는 허위 진술을 했다고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주지하다시피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이었던 김씨는 국정원 사건 당시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불법 댓글 활동을 한 혐의로 고발됐으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김씨는 2017년 국정원 사건을 재수사한 검찰에 의해 지난해 2월 위증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로 작성된 '이슈와 논지' 문건 등을 토대로 조직적으로 댓글 활동을 벌여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재판부는 "스스로 지시에 따른 조직적 댓글 활동을 했다고 진술하고, 조직 상부에서 내린 지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마당에 허위 사실을 꾸밀 동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의 증언을 허위 진술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생에 나라라도 구한 것일까. 국정원 사건 이후 김씨에게 벌어진 일들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닌 것 같다. 한번 생각해 보라. 국정원 사건은 국민의 공복인 국가기관이 대선과 국내 정치에 깊숙이 개입한 있을 수 없는 헌정유린 사건이다.

김씨는 천인공노할 그 사건의 핵심 피의자이자 민주주의를 유린한 중대 범죄자다. 그러나 이처럼 위중한 범죄에도 그는 철저히 보호받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국정원녀의 이름은 '김하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언론은 그를 '김하영'이 아닌 김씨로 적는다.

그의 얼굴 역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민주주의의 심장을 도려낸 용서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그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

성별이 여자라는 것과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아무 거리낌없이 싸지르는 인성을 지녔다는 것을 제외하면 사람들이 그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3년 6월 13일 국회에서는 국정원 사건 관련 2차 청문회가 열렸다. 그러나 이날 김씨를 비롯한해 국정원 직원들은 가림막 뒤에 숨어 증언을 했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김씨와 국정원 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사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이들은 가림막 뒤에 몸을 숨길 수 있었다.

김씨에게 일어난 행운(?)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정원 사건을 수사한 박근혜 검찰은 그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기소유예란 사건이 경미해 재판에 넘겨 굳이 처벌할 필요까지 없다고 판단될 때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박근혜 검찰은 김씨가 저지른 범죄가 기소를 할만큼 위중,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국가기관이 조작적으로 개입해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무너뜨렸음에도 검찰은 김씨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위증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 역시 마찬가지다. 이날 법원은 김씨가 상급자의 지시에 따른 댓글 활동을 인정하는 취지로 증언을 한만큼 의도적으로 허위사실을 꾸밀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의도적이던, 그렇지 않던 간에) 결과적으로 본다면 김씨는 국회, 검찰, 법원, 그리고 언론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를 받은 꼴이 됐다. 앞서 그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은 아닐까 반문했던 이유다.

 

ⓒ 동아일보



물론 모두가 김씨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다. 김씨와 정반대로 억세게 재수(?)없는 사람도 있다. 자녀 입시 의혹 및 사모펀드 비리 혐의로 24일 새벽 전격 구속된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바로 그런 경우다.

국정원 직원의 신상이 공개되서는 안 된다며 가림막까지 제공받던 김씨와 달리 정 교수는 국회로부터 무차별적인 공세에 시달렸다. 한국당 등 야당은 정 교수 관련 의혹에 맹공을 퍼부으며 조국 일가를 "가족사기단"으로 매도했다. 법적 판단이 내려지기 전임에도 정 교수는 확증범 취급을 받았다.

선거사범이었던 김씨에 대해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던 검찰은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해서는 특수부 검사 수십 명을 투입해가며 전방위적인 수사를 펼쳤다. 검찰은 두 달여 동안 70여 곳을 압수수색했고, 종극에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자본시장법상 허위신고•미공개정보이용, 증거인멸교사 등 11개 혐의를 적용해 정 교수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씨의 위증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던 법원은 이날 정 교수를 얄짤없이 구속했다. 영장 실질심사를 담당했던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정전담 판사는 "범죄 혐의 상당 부분이 소명되고, 현재까지의 수사경과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배경을 설명했다.

국정원녀를 김씨로 표기한 언론은 정 교수에 대해서는 너나 할 것 없이 본명을 적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련 내용을 전할 때 조국 법무부 장관의 이름까지 도매급으로 소환시키는 친절을 보여주고 있다.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보도량, 일거수일투족을 깨알 같이 보도하는 세밀함,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검찰과의 환상적인 콜라보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가 망신창이되는 데 크게 일조했다.

희대의 선거사범이었던 국정원녀 김씨와 자녀 입시 비리•사모펀드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정 교수에 대한 정치권, 검찰, 법원, 언론의 태도가 이처럼 극과 극이다. 이 극명한 대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 교수를 비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전대미문의 선거사범이자 민주주의 파괴범이었던 김씨와 법리적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정 교수를 대하는 이 나라 정치권, 검찰, 법원, 언론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지적하려는 것이다.

조국 논란은 이 사회에 공정의 의미를 묻고 있지만, 국정원녀 김씨와 정 교수를 대하는 저들의 태도에서 우리는 자연스레 또다른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이 나라 정치권, 검찰, 법원, 언론은 과연 공정한(했는)가.

권력기관인 국회, 검찰, 법원, 그리고 언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이미 극에 달한 상황이다. 사람들을 납득시키려면 최소한의 일관성과 형평성이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와 그들의 공정성을 문제 삼는 국회, 검찰, 법원, 언론 중 누가 더 불공정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