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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존경한다면서'X신 같다'..여상규의 가식과 위선

ⓒ 에펨코리아

 

정치인의 가식과 위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앞에서는 법과 정의, 공정과 상식, 원칙과 절차 등 거창한 수사를 늘어놓다가도, 뒷구멍에서 호박씨를 까는 군상들이 시쳇말로 널리고 널렸다.

모 정당의 모 의원은 국정원에서 1억원의 특활비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관련 내용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동대구 역에서 할복하겠다며 펄쩍 뛰었다.

그러나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던 그는 항소심에서 돈 받은 혐의를 인정했다. 국정원으로부터 특활비를 받은 사실은 맞지만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없어 뇌물은 아니라고 말을 바꾼 것이다.

할복까지 거론할 만큼 자신의 결백을 당당히 외치던 그는 2019년 7월 11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 및 벌금 1억5천만원의 원심 확정판결을 받고 꾸역꾸역 '콩밥'을 먹고 있는 중이다.

그 바닥의 위선과 가식이 어디 이 것뿐이겠는가.국정감사, 청문회, 대정부질문 등에서 자주 목격하게 되는 장면 중의 하나가 바로 의원들이 상대방 의원을 지칭할 때 습관처럼 입에 달고 사는 '존경하는'이라는 미사여구다.

백이면 백, 이름을 호명하기에 앞서 그들은 '존경 하는 ㅇㅇ 의원님'이라는 말을 붙인다. 누가 봐도 존경하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 다들 어찌 그럴 수 있는지. 참 베알도 좋고, 얼굴도 두껍다.

그러나 아무리 숨긴다 한들 본심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7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 사회를 맡은 여상규 법사위원장이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입에 담아선 안 될 욕설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여 위원장이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자신의 신상발언에 반발하는 김 의원을 향해 "누가 당신한테 자격을 받았어. 웃기고 앉아 있네. 진짜 X신 같은 게. 아주"라고 욕설을 하는 장면이 방송을 탄 것.

'X신'은 국가인권위와 장애인 인권단체 등에서 사용하지 말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비속어다.

전국에 생중계되는 국정감사 자리에서 ' X신'이란 반인권적 발언이 튀어나온 것도 놀랍거니와, 그 발언의 당사자가 법제사법위원장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다.

법사위는 본회의 의결에 앞서 볍률안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심사하는 곳이다. 이런 막중한 책무를 지닌 법사위에서, 그것도 위원장이 'X신'이란 혐오•비하 발언을 했다는 건 예사로 넘길 사안이 아니다.

 

ⓒ 한겨레



여 위원장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번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6일 열렸던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이른바 '편파 진행'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여 위원장은 청문회 시작부터 "후보자 청문과 관계없는 질의는 용납하지 않겠다. 검찰 수사를 비판한다든지"라고 으름장을 놓는가 하면, 의혹을 해명하려는 조 후보자를 향해 "뭘 그렇게 미주알고주알 하느냐",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등 여러 차례 말을 가로막기도 했다.

또 "온 가족이 검찰 수사를 받고 있고 구속까지 될 수 있다", 임명권자에게 부담을 주고 있는데 학교 선배로서 지금이라도 사퇴하라고 충고한다", "일부 언론보도를 보면 후보자 처에 대해 기소를 금방 할 것 같은 보도가 나온다. 아무래도 기소 여부가 결정될 시점인 12시(자정) 이전까지는 회의를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 등의 발언으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여 위원장의 편파적 태도는 이날도 이어졌다. 그는 패스트트랙 수사와 관련해 "검찰에서 함부로 손댈 일이 아니다"라며 "(패스트트랙은) 정치문제다. 검찰에서 함부로 손댈 일도 아니다. 수사하지 말아야 할 건 수사하지 말아야 진정한 용기 있는 검찰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은 패스트트랙 처리과정에서 발생한 폭력 사태와 관련해 소속 의원 20명이 소환을 앞둔 상황이다. 그런데 수사에 앞서 법제사법위원장(더욱이 그는 이 사건의 수사 대상자다)이 검찰수사에 압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는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회의를 진행해야 할 위원장의 책무를 망각한 노골적인 편들기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1980년 국가안전기획부와 검찰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과에서 근무하던 석모씨를 간첩 방조 혐의로 기소한 1심 판결에서 석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판사가 바로 여 위원장이다.

지난 2009년 열린 재심에서 재판부는 당시 중앙정보부 수사관의 고문으로 인한 허위 자백을 인정해 석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18년 1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가 이 사건과 관련한 방송을 내보내며 여 위원장에게 "1심 판결로 한 분의 삶이 망가졌다. 책임은 느끼지 못하나"라고 묻자 "웃기고 앉아있네, 이 양반 정말"이라 불같이 화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물은 여러 차례 정화 작업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마실 수 있다. 필터링이 필요한 것은 정치도 마찬가지다. 존경한다면서 동료 의원에게 ' X신'이라는 반인권적 비속어를 쏟아내고, 국회의원의 본분을 무시한 채 당리당략과 정파 논리만 고집하고, 특권과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 정치판에 버티고 있는 한 이 나라 정치는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또 그 다음에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더럽고, 치사하고, 저급하고, 구질구질하고, 넌더리가 나고, 꼴보기도 싫고, 그 놈이 그 놈 같고, 뭘 해도 달라질 것이 없어 보여도 우리가 정치를 멀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일 터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