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권은희와 윤석열, 그리고 조국

가볍게 쓴다. 일 때문에 당분간 월요일은 시간 내기가 어렵게 됐고, 이 글은 사심이 들어가 있는 관계로. 앞으로는 가능하면 화·수·목·금 이렇게 칼럼을 쓰고, 월·토·일은 간단히 요점만 찝어서 쓰도록 하겠다. 

 

정치 관련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벌써 8년, 어지간한 '빠꼼이'가 다 됐다. 그래서 이제 돌아가는 상황만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사건이 어떻게 진행될지, 어떤 결과가 나올지. 그 사람의 성향, 됨됨이, 믿을 수 있는지, 좋은 정치인인지 아닌지. 뭐, 기타 등등.

 

정치 칼럼 8년 쓰면서 예측이 빗나간 경우는 딱 두 번 있었는데, 그게 묘하게도 국정원 사건과 관련돼서다. 사실은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뼈 아픈데. 있는 힘을 다해 그 사람들을 엄호해 주었기에 그로 인한 상실감과 배신감, 씁쓸함은 (그간 말로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상상을 초월한다.

 

ⓒ 민중의 소리

 

그 둘은 바로 권은희와 윤석열이다. 난 이 둘이 정의롭고, 당차고, 기개있고,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원칙과 소신을 갖춘, 그래서 대의를 향해 꿋꿋이 걸어가는 보기드문 '인재'라 생각했다. 민주주의와 헌법가치가 무도한 권력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고 있을 때, 정의와 양심에 따라 당당히 '아니오'를 외치는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국정원 사건 외압 의혹을 폭로한 권은희가 그 여파로 시련을 겪을 때 그를 옹호하는 글을 몇 편 썼다. 자랑같지만, 그 글은 다음 아고라 등을 중심으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한다. 청문회에서 1대 14의 외로운 싸움을 펼치던 모습을 본 후 쓴 글에서 나는 ' 권은희'만큼은 꼭 지켜주고 싶다고 썼다.

 

그 당시 권은희는 국가기관이 개입된 불법대선개입사건의 수사과정을 지켜보며 모멸감과 자괴감에 빠져있을 사람들에게 공동체적 가치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일깨워 준 몇 안 되는 '의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외쳤다. 훗날 박물관에서 보게 될 지 모르는 개인의 양심과 사회의 정의에 혹 목말라 있다면 권은희를 지키는 일에 동참해 주길 바란다고. 그는 충분히 당신이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그것이 부당하고 불의한 권력에 맞서며 무섭고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그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권은희가 2014년 광주 광산을 재보선에 출마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한 편의 글을 썼는데, (또 자랑같지만) 한때 블로그가 다운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글을 쓴 당일 평소 2000명 안팎이던 방문자수가 10만명이 넘을 정도였으니.

 

그 글의 말미에 나는 이렇게 썼다. 당신을 정치의 영역으로 불러낸 주체는 당신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이름 모를 민초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그럴수만 있다면 당신은 '광주의 딸'이 아닌 '국민의 딸' 나아가 '국민의 정치인'이 될 것이라고. 앞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응원하겠다고.

그러나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권은희는 정치공학도 안철수의 사람이 되더니 과거의 총기와 빛을 잃어버렸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정치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 중앙일보

 

권은희에게서 실망감을 느꼈다면 윤석열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다. 권은희는 단지 자신의 정치적 선택을 한 것 뿐이다. 권은희를 향한 개인적 기대가 깨져버린 아쉬움이 있을지언정, 그렇다고 그의 선택이 우리 정치·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 (아마 다음 총선에서도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검찰총장 윤석열은 다르다. 그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무기로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정권의 안위마저 뒤흔들 수 있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노통 때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대통령 역시 검찰 수사에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환기하면 자칫 또다른 악몽이 시작될 수도 있다. 

 

문제는 정치권력으로부터 검찰 수사의 자율권과 독립성을 지켜주기 위한 문 대통령의 선의가 되레 부메랑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검찰이 조국 장관 자택을 포함해 압수수색만 곳만 벌써 70군데가 넘는다.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먼지털기식 수사가 일사분란하게 진행되고 있다.

 

피의사실도 속속 유포되고 있다. 검찰·언론·야당이 두 달 가까이 앞다퉈 조국 죽이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이면 누구도 감당해낼 수 없다. 노통도 그렇게 당했다. 외려 조국이 버텨내고 있다는 사실이 용할 정도다.

 

검찰, 아니 윤석열의 의도는 명확하다.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그 뻔한 의도 때문에 한 개인이, 집안이, 나라가, 그리고 검찰개혁의 당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에게 분노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조직을 향한 극강의 이기주의가 한 가족의 인권을 짓밟고, 시대적 과제인 검찰개혁마저 무위로 만들 태세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기 전 그는 "조직을 대단히 사랑한다"는 묘한 말도 남겼다. 돌이켜보면 그 말 속에 담겨진 함의를 간과했던 것이 오늘의 이 사달을 만들었지 않나 싶다. 검찰개혁의 적임자가 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았던 윤석열이 수사권을 앞세워 '깡패짓'을 하고 있으니 반전도 이런 반전이 또 있을까. 

 

윤석열의 목표가 검찰개혁을 좌초시키는 것에 있다는 것은 이제 명확해졌다. 분명한 것은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앞으로도 검찰은 언제나 '검찰' 편이라는 사실일 터다. 조국을 기소하고, 검찰개혁을 추진할 정부의 동력이 완전히 상실될 때까지 검찰은 끝까지 물고 늘어질 것이다.

 

윤석열의 검찰 쿠데타는 조국을 넘어 문재인 정권까지 정조준하고 있다. 조국이 쓰러지면 문재인 정부도 쓰러진다. 시민의 간절한 열망인 검찰개혁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수구·기득권 적폐세력이 다시 준동하고 촛불혁명은 한낯 미몽에 그치고 만다. 조국 논란이 단지 조국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듯, 조국의 실패는 조국 개인의 실패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문재인 정부의 실패, 곧 이명박·박근혜의 귀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