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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교문제로 번진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결국 검찰에 의해 불구속 기소를 당했다.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일본의 주요언론이 가토 전 지국장의 기소소식을 속보로 전하면서 우려스러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대부분의 일본 언론은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침해받았다며 한국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일본 언론 뿐만이 아니다. 일본 정부를 대표해서 스가 관방장관은 보도의 자유와 한일관계 관점에서 지극히 유감스러운 결정이며, 국제사회의 상식에도 크게 벗어난 조치라고 한국정부를 비판했다. 아번 사건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미국 정부 역시 젠 사키 미 국무부 대변인의 브리핑을 통해 미국은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지지한다며 한국 정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로 세월호 참사 당일의 박 대통령의 행적이 다시금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상황은 박 대통령 자신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득될 것이 전혀없는 고약한 상황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국가원수로서의 품위와 명예가 실추될 수 밖에 없고, 국가적으로 볼 때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비민주적 국가라는 오명을 쓸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안이 사안인 만큼 국가적 망신이 이만 저만한 일이 아니다. 이래저래 영 모양새가 빠지는 불쾌한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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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산케이의 보도는 타국 국가원수를 모욕주는 매우 부적절한 내용 일색이었고 그 근거 역시 지극히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직접 취재한 내용이 아니라 조선일보가 보도했던 칼럼인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을 인용보도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정치적 입장을 떠나 평소 혐한을 부추겨온 일본내 대표적 극우신문인 산케이의 이번 보도를 달갑게 볼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박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가적 이미지로까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비판하면서 우려를 표한 내용도 바로 이 부분이다. 당사자인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산케이의 보도 내용이 사실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한국 정부가 어디까지 얼마나 수용하느냐의 여부다. 외신기자클럽(SFCC)과 국경없는 기자회 등이 대한민국의 언론자유와 이 사건을 연결시켜 보고 있다는 것도 눈여겨 봐야할 부분이다. 





2014년 5월 1일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가 발표한 박근혜 정부의 언론자유지수는 197개 평가 대상국 가운데 68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보다 4단계 하락한 것으로 대한민국은 현재 언론자유가 부분적으로 보장되는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어 있는 상태다. 대한민국은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1년 언론자유국 지위를 상실했다. 참여정부 시절 언론자유지수가 2003년 39위, 2004년 26위, 2005년 31위, 2007년 37위로 언론자유국이었던 점을 떠올리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언론자유가 상당히 침해받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사회와 세계언론계는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 정부가 언론과 표현의 대한 자유를 얼마나 용인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실례로 삼으려 할 것이다. 


검찰이 가토 전 지국장을 기소하면서 적용시킨 것은 명예훼손 혐의다. 개인의 인격을 실현하는 요소이자,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 중의 하나인 표현의 자유에 예외를 두는 조항 중의 하나가 바로 명예훼손과 관련된 부분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권리인 표현의 자유도 예외적으로 명예훼손에서만큼은 제약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같은 명예훼손이라 할지라도 권력과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에 대해서는 개인에 대한 그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미국과 UN 등은 우리나라의 명예훼손 법 조항이 권력과 국가기관에 대한 비판적 기능을 무력화시키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며 수정을 권고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권력을 비판하는 표현의 자유는 보다 폭넓게 수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이번 사건의 내용보다 대한민국이 이번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그 과정에 더 주목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자유를 한국 사회가 얼마만큼 보장하고 있느냐의 문제에 더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검찰은 국제사회가 우려를 표명한 바와 같이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을 탄압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 행태들을 보이고 있다. 





먼저 검찰은 애초 이번 사건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조선일보에 칼럼을 쓴 기자에 대해서는 서면 조사를 하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해당 칼럼은 박근혜 대통령과 정윤회의 관계와 세간에 떠도는 대통령을 둘러싼 풍문을 거론하며 이번 사건의 실질적 단초를 제공했다. 그런데 검찰은 가토 전 지국장은 외교관계의 악화와 사회적 파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소를 했으면서, 같은 내용을 보도한 조선일보의 기자에게는 서면조사만 하는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었다. 일본의 언론들이 형평성을 거론하며 문제를 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또 검찰은 이 사건의 실질적인 쟁점이라 할 수 있는 박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서도 전혀 수사를 하지 않았다. 검찰이 한 일이라고는 청와대로부터 박 대통령이 그날 경내에 머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것 뿐이다.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증거는 청와대로부터 받았다는 서면보고서가 유일하다. 이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를 조사하지도 않았다. 어지간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검찰의 수사행태는 봐주기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청와대 역시 이번 사건에서 성역 위에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청와대는 국회와 감사원이 요구한 관련기록의 제출을 단호히 거부했다. 앞으로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대통령기록관은 청와대의 자료제출 거부는 법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청와대가 신성불가침의 치외법권에 놓여있지 않는 이상 청와대의 행동은 아무런 근거없는 치기이며 몽니다. 


이번 사건에 청와대와 검찰이 찰떡공조 속에 한 몸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국제사회와 세계 언론의 우려섞인 비판에 대해 청와대가 한국의 실정법대로 처리하고 있을 뿐이라며 선을 긋고 있지만 자국 국민들도 믿지 않는 사실을 저들이라고 해서 모를 리는 없다. 특히 국제사회가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는 부분은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과 여론에 대해 한국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전락한 한국의 언론자유도는 이번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더욱 급락할 가능성이 높다. 


결과적으로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검찰이 외신기자를 기소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부는 국제사회와 세계언론으로부터 언론과 표현의 자유 논란을 자초한 꼴이 됐다. 더구나 청와대와 검찰이 보여주고 있는 짜맞추기 수사는 결국 이 사건이 국제적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는 여지마저 열어 놓았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세월호 당일 대통령의 행적을 둘러싼 풍문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벌이고 있는 일들이 오히려 그 풍문을 점점 더 전세계로 확산시키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긁어 부스럼이 따로 없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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