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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의 윤리특위 보이콧, 5.18 망언 3인방 징계 물 건너가나

ⓒ 오마이뉴스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는 국회 윤리 강령을 위반한 국회의원의 징계 및 자격을 심사하기 위해 1991년에 설치된 특별위원회다. 국회법 제46조 1항에 의거, 국회의원의 자격과 징계에 관한 사항 등을 심사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윤리특위는 각계로부터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동료 의원을 심사해야 하는 탓에 '제 식구 감싸기' 행태가 비일비재한 데다, 각 당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파행을 겪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실제 19대 국회의 경우 윤리특위에 의해 징계안이 의결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하다. 비리와 막말, 품위 위반 등으로 총 39차례에 걸쳐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이 가운데 징계가 처리된 안건은 성폭행 혐의를 받은 심학봉 전 새누리당 의원 1건이 유일했다.

18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총 54차례 징계안이 제출됐지만 2011년 성희롱 파문을 일으킨 강용석 전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만 가결됐을 뿐 나머지는 모두 계류되거나 철회됐다. 그마저도 '30일 국회 출석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경우였다.

20대 국회 역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윤리특위에 제소된 안건 다수가 감감무소식이다. 이 중에는 지난 2016년 10월 제출된 한선교 당시 새누리당 의원 관련 징계안처럼 오래 묵은 안건도 있다. 제소만 난무할 뿐 실질적인 징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하고, 유가족을 모욕하는 망언으로 지탄을 받은 김진태·김순례·이종명 한국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 역시 '함흥차사'다.

이들 3인은 지난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 당시 "폭동이라고 했던 5·18이 정치적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는데 이제 다시 뒤집을 때"(이종명 의원),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김순례 의원),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김진태 의원) 등의 발언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논란 직후인 2월 12일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50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4.4% 포인트)해 13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5·18 망언' 의원 제명에 대한 찬성 여론이 64.3%에 달할 만큼 후폭풍이 거세게 일었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국회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2월 12일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 171명의 의원이 이들에 대한 징계안을 윤리특위에 제출했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한국당 역시 자체 징계안을 마련하겠다며 진화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한국당 윤리위원회는 이종명 의원을 제명하고, 김진태·김순례 의원에 대한 징계는 2·28 전당대회 이후로 유예하는 '셀프' 징계안을 발표해 빈축을 샀다. 징계 책임을 신임 지도부에 떠넘기는 면피성 징계안을 발표한 것이다.

당 대표로 선출된 황교안 대표 역시 징계 절차에 대해선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징계 여부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절차대로 진행할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때 맞춰(?) 김영종 당 윤리위원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윤리위도 개점휴업 상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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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약이 없기는 국회 윤리특위도 매한가지다. 지난달 18일 5·18 망언 의원 '3인방'과 이해충돌 논란에 휩싸인 서영교(민주당)·손혜원(무소속) 의원 등 18건의 의원 징계안을 논의하기 위해 윤리심사자문위원회(자문위)를 열었지만 시작부터 파행의 연속이다.

민주당(4명)·한국당(3명)·바른미래당(1명)으로 구성된 자문위는 신임 자문위원장 선임 문제로 크게 격돌했다. 한국당 추천위원인 홍성걸 국민대 교수가 위원장을 맡겠다고 하자 민주당 추천 위원들이 연장자 호선이 관례였다고 맞대응하면서다. 치열한 기싸움 끝에 한국당 추천 위원들이 퇴장하면서 결국 징계안은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한국당은 위원장으로 선임된 민주당 추천 장훈열 변호사가 5·18 유공자라는 사실을 거론하며 자문위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지난달 21일에는 자문위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며 추천위원 3명이 사퇴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22일 열릴 예정이던 자문위 회의 역시 한국당 추천 위원 3명의 불참으로 안건 심사가 연기됐다. 한국당 추천위원들이 자문위를 보이콧하면서 징계 논의가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은 장 위원장이 5·18 유공자인 만큼 징계 논의의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홍 교수가 위원장을 맡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야 4당은 자문위 파행의 책임이 한국당에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이 나온 지 벌써 40일이 돼간다"며 "징계를 피하기 위해 온갖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라고 각을 세웠다.

바른미래당 윤리특위 위원인 이태규·임재훈 의원도 이날 "한국당 위원들의 사퇴는 설득력이 없다"라며 "신임 위원장이 5·18 유공자여서 심사 불공정성이 우려된다면, 안건 조정과 5·18 징계안 심사에서 제척 시킬 것을 요구할 일이지 사퇴해 파행을 불러올 일이 아니다"라고 유감을 표명했다.

민주평화당·정의당 등도 한국당을 한 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는 이날 "5·18 망언 3인방의 생명 연장 꼼수가 도를 넘고 있다"며 "윤리특위서 한국당의 추천을 받은 자문위원 3명이 돌연 전원 사퇴해 윤리특위 징계 논의 자체를 마비시켰다"라고 성토했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역시 같은 날 "한국당은 앞에서는 망언에 대해 사과하고, 뒤에서는 징계를 막을 꼼수만 연구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유명무실화 된 윤리특위와 한국당 추천 자문위원들의 집단 사퇴로 5.18 망언 3인에 대한 징계 절차는 멈춰 선 상태다. 5·18 민주화운동 관련 입장과 태도, 태극기 부대의 입김 등을 감안하면 한국당이 이들에 대한 징계에 적극적으로 나설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5·18 망언 3인방에 대한 징계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리특위의 그동안의 행태와 한국당의 비협조, 논란이 촉발될 당시에 비해 시들해진 국민적 관심 등을 고려하면 이번에도 유야무야로 끝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래서일까. 5·18 망언 3인은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다. 특히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에 비유했던 김순례 의원은 논란 이후 외려 인지도가 급상승해 한국당 최고위원으로 선출되는 등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실효성 없는 국회 윤리 법령을 손질하고, 윤리특위의 심사제도를 개선해 윤리 규정을 위반한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를 강화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노력해야 하는 이유일 터다. 국회의원의 비윤리적 행태를 징계·시정하는 곳이 돼야 할 윤리특위가 논란을 피해 가는 임시 '거처'가 되어서는, 반헌법적·비윤리적 망언을 아무 일 없이 어물쩡 넘어가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