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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한국당 패싱 현실화 되나?

전기세, 수도세, 관리비 등 내야 할 공과금이 한둘이 아니다. 아이들 학원비도 밀려 있고, 각종 보험료에, 아파트 대출 이자도 내야 한다. 쌓여가는 고지서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 가장인 남편이 아무 대책없이 집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다면 어떤 심정이 들까. 두달 가까이 방구석에 쳐박혀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말이다.


ⓒ 오마이뉴스



두달 째 개점휴업 상태인 국회의 모습이 딱 저와 같다면 과도한 표현일까. 그러나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처리해야 할 각종 민생입법, 개혁입법이 그야말로 산더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 국가정보원법, 공기업 지배구조 개혁법, 공정거래법 등의 민생·개혁법안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것.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선거제도 개혁, 검찰개혁 등의 정치·사법개혁 법안이다. 그러나 이들 법안들은 자유한국당의 반대 기류 속에 오랜 기간 공회전을 계속해 왔고, 그마저도 1~2월 국회가 문을 굳게 걸어닫으면서 처리가 요원해진 상태다. 
 
지난해 12월 15일 여야 5당 원내대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1월 중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대표의 단식이 길어지자 여야가 선거제도 개혁에 나서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구체적 내용이 빠져있는 당시 합의가 손학규·이정미 대표의 단식을 중단시키기 위한 형식적 합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실제 여야 합의에도 불구하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선거제도 개혁에 미온적인 한국당이 과연 전향적으로 나오겠느냐는 의구심이 여전히 팽배했다.

이유가 있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단순다수제인 현행 선거제도의 수혜를 가장 많이 받아온 정당이 바로 한국당이다. 한국당은 지역주의와 결합한 소선거구제의 과실을 수십 년째 누려온 터였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례성 강화를 위해 권역별 연동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지만 무산된 것도 한국당의 반대 때문이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자신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 선거제도를 바꿀 이유가 한국당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작년 6·13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이 궤멸적 참패를 당했을 때가 선거제도 개혁의 적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당이 현행 선거제도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목소리가 당내에서 일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국민의 지지가 국회의석에 정확하게 반영되는 선거제도 도입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그러나 이번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문제였다. 민주당은 기존의 당론과 대선공약에 배치되는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며 선거제도 개혁을 바라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하자 이른바 주판알을 튕기기 시작한 것이었다. 

선거제도 개혁의 골든타임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가 버렸다. 이후 정부여당이 정책적 혼선과 잇따른 사건·사고로 휘청이는 사이 야금야금 지지율을 회복한 한국당은 선거제도 개혁에 방관자적 입장을 보이던 예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거대 양당의 욕심 때문에 선거제도 개혁의 절호의 기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진 것이다.

그나마 한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은 민주당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과 공조해 한국당을 압박하며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마지막 힘싸움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국당이 '김태우 특검', '신재민 청문회', '손혜원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국회의사 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국회 파행의 원인을 정부여당 탓으로 돌리며 국회 등원을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다. 

물론 국회 파행의 책임이 한국당에게만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한편에선 국회 정상화를 위한 여당의 노력과 의지 부족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국회가 놀고 먹는(?) 배경에 한국당의 정치·정략적 의도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무엇보다 국회 파행이 정부여당 탓이라는 주장은 보이콧을 마구 남발하고 있는 한국당의 행태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실제 한국당이 20대 국회에 들어서 감행한 보이콧만 무려 16회에 이른다. 한국당을 가리켜 일각에서 '반대당', '보이콧당'이라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이정미 대표는 지난 25일 YTN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20대 국회 들어와서 지금 자유한국당이 국회 보이콧을 16번 선언했다"며 "1월 국회는 또 릴레이 단식한다고 그렇게 됐고, 2월 국회에서는 자당의 전당대회가 사실은 실질적인 이유"라고 꼬집었다.

이정미 대표는 이어 ​​​​​​"전당대회 치르느라고 국회 발목 잡아놓고 또 결국은 온갖 특검, 국정조사, 청문회 이런 이야기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다"며 정략적 목적으로 습관적으로 보이콧에 나서고 있는 한국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하는 제1야당의 입장을 감안한다 해도, 이 정도면 그 저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취지일 테다. 공당이라면 적어도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은 해가면서 비판을 하든 각을 세우든 해야 한다. 그러라고 국민들이 세금을 내고 있는 것 아닌가. 


ⓒ 오마이뉴스


"(지금 국회가) 하는 게 하나 있습니까? 사법개혁이 됐습니까? 국가(권력)기관 개혁이 됐습니까? 그러니까 5·18 (망언같은) 이런 일이 생기는 거에요. 그게 괜히 생겼습니까. 이런 분위기 속에서 5·18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거에요. ‘이게 국회냐’ 하는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해서 국회로 몰려올까 두려워요.”

지난 19일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2월 임시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던 중 문희상 국회의장이 쏟아낸 일성이다. 열 일 해도 모자랄 시국에 정쟁을 일삼으며 세금만 축내고 있으니 국민들 심기가 말이 아닐 것이라는 얘기다. 아닌 게 아니라 국회를 향한 세간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폭발 일보 직전이다. 1년 남은 총선 때 두고보자는 서슬 퍼런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여야 모두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은 정치개혁을 위한, 포기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대립과 반목, 불신과 분열, 지역주의를 고착화시키는 현행 선거제도 아래에서는 정치 발전은 물론이고 국민 삶의 진작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소선거구제의 폐해에 발목 잡혀온 지난 수십년의 역사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법 개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한 '패스트트랙'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은 주목할 만하다. 합의 처리가 난망해지자 여야 4당이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으로, 여야 4당이 '의원직 총사퇴'까지 거론한 한국당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뜻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가 관심사다.  

패스트트랙은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사실상 최후의 수단이라는 평가다. 한국당이 지금처럼 계속해서 미온적으로 나올 경우 방법은 결국 하나밖에 없다. 선거제도 개혁에 마음이 없는 한국당을 빼고 선거법 개정에 나서는 것이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12월 27일 회계 투명성을 위한 '유치원 3법'이 한국당의 반대로 가로 막히자 패스트트랙으로 안건을 처리한 바 있다. 

패스트트랙은 한국당을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적 측면도 있는 만큼 여야 4당은 최대한 대화의 협상의 자세를 견지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물러서지 말고 강하게 나가야 한다. 기다릴 만큼 기다렸고, 참을 만큼 참았다. 정치개혁과 발전을 가로막는 현행 선거제도를 혁신할 절호의 기회를 또다시 날려버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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