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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5·18 폄훼한 한국당 3인..너흰 국민에게 모욕감을 줬어

2015년 7월. 1944년 헝가리 아우슈비츠에서 30만명의 헝가리계 유대인의 처형에 조력한 혐의를 받던 나치 비밀경찰 요원 오스카 그뢰닝(판결 당시 나이 94세)에게 4년의 징역형이 내려졌다. 그해 9월 아우슈비츠에서 전신원으로 일했던 91세 노파 역시 같은 이유로 독일 검찰에게 기소를 당했다. 2018년 11월에는 오스트리아 마유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경비병으로 일했던 95세 남성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동조한 혐의로 기소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과 슬라브족, 장애인, 정치범 등 민간인 1천만명 이상이 나치에 의해 학살당했다. '홀로코스트'는 지워내고 싶은 독일의 일부분이다.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의 한 페이지다. 그러나 그들은 숨기려 하지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뼈저린 자기반성을 통해 독일은 철저히 과거사 청산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천인공노할 나치 만행에 대한 속죄이자 최선의 재발방지 대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터다. 나치 부역자에 대한 독일의 추적과 단죄가 멈추지 않는 배경이다.


ⓒ 오마이뉴스

독일의 반대편, 대한민국에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8일 국회에서는 김진태(강원 춘천시)·이종명(비례대표) 자유한국당 의원이 공동주최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가 열렸다. 모임에 참석한 지만원씨는 "5·18은 북한특수군 600명이 주도한 게릴라전이었다"며 "작전의 목적은 전라도를 북한 부속지역으로 전환해 통일의 교두보로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북한 특수부대 개입설'로 5·18 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왜곡·폄훼해 왔던 지만원씨는 이날도 같은 주장을 재차 반복했다.


더욱 가관은 한국당 의원들이었다. 이종명 의원은 환영사에서 "폭동이라고 했던 5·18이 정치적 세력에 의해 민주화 운동이 됐는데 이제 다시 뒤집을 때"라며 "사실에 기초해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5·18 북한군 개입설로 형사처벌까지 받았던 지만원씨를 대놓고 편드는 발언을 한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의 망언 릴레이는 계속 이어졌다. 원내대변인인 김순례(비례대표) 의원은 "종북 좌파들이 판을 치며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성토했고, 이종명 의원과 함께 공청회를 공동 주최한 김진태 의원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5·18 문제만큼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된다"며 "힘을 합쳐 투쟁해 나가자"고 분위기를 띄었다.

저들의 주장대로라면 '5·18 민주화운동'은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한 '폭동'이며, 5·18 유공자들은 '괴물집단’이라는 얘기가 된다. 하나 같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용서하기 힘든 망언이다. 5·18 무력진압을 정당화하는 공청회 자체도 논란이지만 이날의 모임이 민의의 전당이라 불리는 국회 내에서 열렸다는 것이 더 충격적이다. 그동안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와 가치를 끊임없이 왜곡·조작해온 지만원씨 등 일부 세력에게 한국당이 판을 깔아준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당 지도부의 인식이다.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나경원 원내대표는 9일 입장문을 통해 "한국당은 광주시민의 희생과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과 헌신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할 것임을 밝힌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다만 일부 의원들의 발언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존재할 수 있으나 정치권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고 조장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해 또다른 논란의 빌미를 제공했다.

황당하기는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 역시 마찬가지다. 김병준 위원장은 논란 직후 “5·18은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발전의 밑거름이 된 사건”이라며 “이미 역사적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부분에 대한 끝없는 의혹 제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11일 비대위 회의가 끝난 이후 기자들에게 "보수정당 안에 여러 가지 스펙트럼, 즉 견해차가 있을 수 있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는데 그것이 보수정당의 생명력"이라며 나경원 원내대표와 비슷한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놀라운 것은 한국당 지도부가 소속 의원들의 망동을 해석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다는 사실이다. 같은 논리라면 나치의 홀로코스트,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야만 행위 역시 팩트가 아닌 가치판단의 문제가 된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이 송두리째 말살됐다는 점에서 5·18은 나치·일제의 만행과 본질이 크게 다르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당했고, 유가족들의 상흔은 아직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독일이 그런 것처럼 국가가, 후손들이 나서 잘못을 바로 잡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그것이 산 자들의 도리이자 예의일 터다.

그러나, 독일과 달리 대한민국은 거꾸로 가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 40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까지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가공권력에 의해 민간인 학살과 반인륜적 범죄 행위가 무차별적으로 자행됐지만 시민들에 대한 최초 발포·집단 발포 책임자, 인권유린 행위 가담자, 집단 학살지와 암매장지, 사망자 및 행명불명자의 정확한 규모와 소재 등은 여전히 안개속이다.

2018년 9월 14일 '5·18 민주화 운동 진상규명 특별법'(5·18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진상규명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할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한국당이 위원추천을 차일피일 미루면서 해를 넘긴 지난달 1월 14일이 돼서야 간신히 위원 구성을 끝마쳤다. 그마저도 한국당은 5·18의 정신을  훼손하고 깎아내렸던 극우인사를 추천해 뒷말을 무성히 낳았다.


ⓒ 오마이뉴스

진상규명이 안 되니 책임자 처벌도 요원한 일이 돼가고 있다. 외려 시간이 가면서 전두환 신군부에 의한 사건 은폐와 조작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는 등 의혹만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일부 세력들은 아직도 ‘북한군 개입설’, ‘폭동' 등의 궤변을 늘어 놓으며 5·18 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왜곡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당 소속 의원들이 망언은 이런 가운데 나왔다. 그것도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에서 말이다. 

물론, 그들의 행태는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당의 정치적 뿌리는 전두환 신군부와 맞닿아 있다. 광주를 총칼로 짓밟은 신군부는 민주정의당을 창당해 정권을 거머쥐었다. 민정당은 이후 민주자유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을 거쳐 현재의 한국당으로 이어져 왔다. (한국당의 거룩한(?) 계보는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공화당, 해방 이후 친일청산을 가로막은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까지 이어진다)

5·18 특별법 제정에 찬성하지 않았던 것도, 진상조사위 출범에 두 손 놓고 있었던 것도, 편향적 극우인사를 조사위원으로 추천한 것도, 소속 의원들의 입에서 5·18 민주화운동 관련 망동이 잇따르고 있는 것도, 용서받지 못할 엽기적 망언을 다양한 해석이라 인식하는 것도 한국당의 정치적 뿌리와 법통을 따져보면 결코 무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의 5·18 관련 논란을 일부의 개인적 일탈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문제는 저들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점이다. 국회의원은 민의를 대변하는 사람들이지 왜곡시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저들 '3인'은 국민의 보편적 정서와 상식에 역행하는 행태로 오히려 민의 왜곡에 앞장서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은 역사적·법적 평가가 이미 명확히 내려진 사안임에도 일부 세력의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한 주장을 사실인 것처럼 호도해 유가족은 물론이고 대다수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느와르 영화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달콤한 인생'의 클라이막스. 자신을 죽이려는 이유를 묻는 선우(이병헌 분)에게 강 사장(김영철 분)은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고 말한다. 5·18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왜곡·폄훼한 한국당 의원 3인에게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일 터다. 인류 보편적 정서와 인간의 존엄을 갉아먹는 비이성적이고 몰상식한 작태를 다시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모래를 씹은 듯한,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또다시 맛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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