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대선후보 지지율 1위 황교안..그의 정치 여정이 녹록치 않아 보이는 이유

최근 자유한국당에 입당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오는 2월 27일로 예정된 한국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했다. 정치권에서는 황 전 총리의 출마를 사실상의 대권 도전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보수진영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인 황 전 총리의 시선이 당권 너머에 있다는 것은 삼척동자가 다 아는 일. 당권은 대권을 위해 거쳐야 할 관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황 전 총리는 29일 오전 서울 영등포 한국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도탄의 국민을 구하고 위기의 나라를 지켜내려면 당 대표가 돼 동지 여러분과 함께 싸울 수밖에 없다고 결심했다"면서 "당 대표가 된다면, 단순한 승리를 넘어, 한국당을 압도적 제1당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본격적으로 정치 활동에 나설 것임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황 전 총리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날, 아주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기자회견 직전 발표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황 전 총리가 이낙연 현 총리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것.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줄곧 2위권을 형성하고 있던 황 전 총리가 1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 행보에 나서는 황 전 총리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기분좋은 소식이 전해진 셈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지난 21~25일 전국 성인 2,515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0%포인트)한 결과에 따르면, 황 전 총리는 17.1%의 지지를 받아 15.3%를 기록한 이 총리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선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당권·대권 경쟁 주자로 평가받는 홍준표 전 대표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각각 5.9%, 5.3%를 기록해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황 전 총리를 흐뭇하게 하는 소식은 또 있다. 이날 당 선거관리위원회는 입당한 지 3개월이 되지 않아 피선거권이 없는 황 전총리와 오 전 서울시장에게 책임당원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당권 경쟁에 앞서 출마 자격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당 선관위가 사실상 황 전 총리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 선관위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 선거의 후보등록 신청자가 경선 기탁금을 납부하고 입당원서 또는 당비를 정기납부했다는 출금이체 신청서를 제출할 경우, 책임당원 자격을 부여할 수 있도록 의결해달라고 비상대책위원회에 요청하기까지 했다. 당내에서 불거지고 있는 피선거권 논란을 일단락시키겠다는 취지다. 

비대위의 최종 입장은 31일 나올 것으로 보인다.  황 전 총리의 전당대회 출마에 부정적인 비대위가 당 선관위의 요청을 받아들일지의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당 선관위가 황 전 총리의 출마를 승인한 이상 비대위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활동 종료를 앞둔 비대위가 당 선관위의 결정을 뒤짚으면서까지 당내 분란을 야기시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렇듯 당 일부의 반발과 출마 자격 논란에도 불구하고 황 전 총리의 당권 도전은 거침이 없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1위에 오른 여론조사 결과는 본격적으로 정치 행보에 나선 그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해주는 강력한 무기이자 버팀목이라는 분석이다. 당장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황교안 대세론'이 회자되고 있다. 보수진영을 중심으로 황 전 총리가 보수 통합과 재건에 앞장설 적임자라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황 전 총리 역시 이같은 세간의 흐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당권 도전 기자회견에서 보수진영을 의식한 발언들을 무더기로 쏟아냈다. 그는 “과거로 퇴행하고 있는 위기의 대한민국을 되살리겠다”며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정을 좌우하고 있다”고 문재인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철 지난 좌파 경제실험 소득주도성장이 이 정권의 도그마가 됐다”, "김정은을 칭송하고 북한을 찬양하는 세력들이 광화문 광장을 점령하고, 80년대 주체사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 국회를 장악하고 있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와 진보·좌파 진영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보수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 보인 것이다.

보수 통합 의지와 재건 방향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그는 "지금 절실한 과제는 자유우파의 대통합을 이루고 당의 외연을 확대해 더욱 강한 한국당을 만드는 일"이라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 가치에 뜻을 같이 한다면, 폭넓게 품고 함께 가는 큰 정당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흩어진 보수진영을 하나로 모으는 한편 외연 확장에도 힘을 기울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황 전 총리의 행보에선 이처럼 자신감이 '철철' 묻어난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사분오열됐던 보수진영은 최근 정부 여당이 각종 악재에 신음하는 사이 뚜렷하게 세를 규합해 나가고 있다. 한국당의 지지율도 국정농단 사태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한 때 20~30% 차이가 나던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이제 10% 안팎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한국당의 차기 대권주자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황 전 총리가 전격 입당을 결정한 이면에는 이같은 한국당의 지리멸렬한 내부상황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범보수진영의 차기 대선후보 1순위로 손꼽혀온 황 전 총리는 친박계로부터 전당대회 출마 요청을 받는 등 꾸준히 러브콜을 받아온 상태였다. 당권을 잡고 지도력을 인정받게 될 경우 대권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황 전 총리가 야인 생활을 접고 정치에 뛰어든 실질적인 배경일 터다. 

그러나 황 전 총리가 넘어야 할 산도 만만찮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날, 과거 통합진보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김미희·김재연·오병윤 전 의원 등이 황 전 총리를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들은 고소장에서 "법무부 장관으로서 직권을 남용해 헌법재판소로 하여금 독립적이지 않고 불공정하게 정당해산심판 사건을 처리하게 함으로써 고소인들의 공무담임권,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의 행사를 방해했다"며 "(황 전 총리는) 헌재와 법무부 간의 내통 의혹이 있으며, 정부 측 증인 김영환(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고, 사법권을 침해하고 훼손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황 전 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이던 2013년 말 당시 박근혜 정부를 대리해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고 직접 변론에 나선 바 있다. 황 전 총리는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 관계자와 연락을 주고 받으며 정당해산 사건의 진행사항과 선고결과에 관한 내용을 김영환 전 수석에게 미리 알려줌으로써 정당해산사건의 직무상 비밀을 누설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30일에는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여론조사에서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이름이 거명되지 않도록 조치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세월호참사와 관련해 광주지검에 외압을 행사한 의혹이 있는 황 전 총리가 대선후보군으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 오마이뉴스


실제 황 전 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 해경 123정장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업과사) 혐의 적용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시 변찬우 광주지검장을 크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됐다.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커지자 ‘업과사’ 적용을 하지 못하도록 법무부의 김주현 검찰국장-이선욱 형사기획과장 라인을 통해 대검과 광주지검을 압박했다는 의혹도 있다. (한겨레 2017년 5월 29일자)

황 전 총리를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과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막는가 하면, 국정원 댓글 사건을 진두지휘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종용했다는 의혹도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시절에는 박영수 특검팀의 활동 연장을 거부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고, 국군 기무사령부가 2017년 3월 작성한 계엄령 문건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표기가 발견되면서 이를 지시하고 보고받은 것 아니냐는 의심도 받고 있다.

황 전 총리가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자 홍 전 대표는 "황교안은 박근혜가 탄핵될 때 정치적으로 같이 탄핵된 사람"이라고 했다. "이 당이 다시 도로 탄핵당, 도로 친박당, 도로 특권당, 도로 병역비리당으로 회귀하게 방치하는 건 한국 보수우파세력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도 했다. 강력한 경쟁자 중의 한 사람인 홍 전 대표의 일갈은 황 전 총리를 향한 당내 견제가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는 신호탄이다. 

당 내부에서도 '박근혜-최순실'과 겹쳐지는 황 전 총리의 이미지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당이 어려울 때 먼 발치에 서있던 황 전 총리의 '무혈입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황 전 총리의 '맷집'을 걱정하기도 한다. 앞으로 예상되는 혹독한 검증을 견뎌낼 수 있을까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일 것이다. 주자하다시피 정치에 도전했던 관료·학자 대부분이 이 과정을 버텨내지 못했다.

그러나 황 전 총리를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역시 국정농단의 꼬리표다. 황 전 총리가 보수진영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장관으로서, 총리로서의 후광을 떼어놓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문제는 그가 장관, 총리를 거치는 동안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박 전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농단의 그림자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았다면 '직무유기'다. 박근혜 정부에서의 이력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음에도 황 전 총리의 정치 여정이 녹록치 않아 보이는 이유다.



 바람 언덕이 1인 미디어로 자립할 수 있도록 응원해 주세요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