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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살인마 '전두환'을 위한 변명은 없다

ⓒ 오마이뉴스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재판부(광주지법 형사8단독 김호석 판사)가 7일 구인영장을 발부하겠다고 밝혔다. 전 씨가 건강 상의 이유로 지난해 8월 27일에 이어 이날도 불출석하자 법원이 강제구인을 통해 재판을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전 씨에 대한 다음 재판은 오는 3월 11일 열릴 예정이다. 

전 씨는 지난 2017년 4월에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 신부를 '가면을 쓴 사탄',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 등으로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5월 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와 유가족은 회고록이 출간된 직후 전 씨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며, 검찰은 전 씨를 불구속기소했다. 

<전두환 회고록>은 출간되자마자 거센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다. 전 씨는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 '북한군 개입에 의한 폭동' 등으로 묘사했다. 스스로를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로 비유했는가 하면, 무고한 시민이 희생된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대해서도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정당하고도 불가피한 조치'라며 '셀프 면죄부'를 내리기도 했다. 

이밖에도 회고록에서 문제가 된 부분은 부지기수다. 전 씨는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이 개입했으며, 계엄군에 의한 헬기사격과 시민을 향한 발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2월 7일 국방부 5·18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헬기가 시민들을 향해 여러차례 사격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특조위는 "5·18 민주화운동 기간 육군이 공격헬기 '500MD'와 기동헬기 'UH-1H'를이용해 광주시민을 향해 사격한 사실이 학인됐다"며 군 헬기에 의한 사격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 앞서 지난 2016년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전일빌딩 리모델링 과정에서 발견된 탄흔이 헬기 사격에 의한 것이라고 판정을 내리기도 했다. 비무장한 시민을 향해 발포하지 않았다는 주장 역시 관련자 진술과 함께 계엄군의 발포 명령이 담긴 문건이 발견되는 등 여러 경로를 통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법원이 5월 단체 등이 전 씨를 상대로 낸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하는 동시에 전 씨가 회고록을 통해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5·18 관련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이유도 그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회고록을 통해 전 씨가 5·18 민주화운동을 얼마나 악의적으로 왜곡했는지는 재판부의 판결문에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 9월 13일 5월 단체 등이 전 씨와 전 씨의 아들 재국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광주지법 민사14부 신신호 부장판사)는 "전두환은 역사적 평가를 반대하고 당시 계엄군 당사자들이 수사기관이나 법정에서 변명적 진술을 한 조서나 일부 세력의 근거 없는 주장에만 기초해 5·18 발생 경위, 진행 과정에 대해 사실과 다른 서술을 해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적시했다. 

이어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5·18에 대해 다른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5·18 과정에서 무력적인 과잉진압을 한 당사자들의 진술이 아닌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한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 이에 대한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전두환 주장처럼 5·18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수 있고 서로 다른 견해를 밝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증을 거친 객관적인 자료에 기초한 것이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역사의 왜곡이다"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 오마이뉴스


법원의 판결을 요약하면, 전 씨가 객관적 사실이 결여된 일방적 주장을 펴면서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고 5·18 관련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시키고 있다는 뜻일 터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하고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학살한 국가 반란·내란의 중심에 전 씨가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전 씨는 얼토당토 않은 궤변과 변명으로 이미 역사적 평가가 내려진 5·18 민주화운동을 끊임없이 폄훼하고 있다. 

5월 단체가 이날 재판에 불출석한 전 씨를 강하게 비판한 것은 그런 이유일 터다. 이들은 공판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전 씨는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더는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전 씨는 수많은 광주 시민을 학살한 것뿐만 아니라 5·18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던 젊은이를 감옥에 가두는 등 80년대를 독재와 암흑으로 만들었다"며 "여기에 대해서도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한편에선 전 씨를 비호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판에 불출석하고 있는 전 씨에 대해 법원이 강제구인 방침을 밝히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그의 자택 앞에는 이를 비판하는 보수단체들의 집회가 열렸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자유대한호국단·500만 야전군·자유연합·전군구국동지회 등 보수단체 연합 200여명은 이날 전 씨의 자택 앞에 모여 법원을 성토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38년 일을 광주에서 다시 재판한다는 것은 마녀사냥"이라며 "법원에서 강제구인하러 온다면 우리를 밟고 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씁쓸하다. 마치 한 편의 소극(笑劇)을 보는 것 같다. 전 씨는 군사반란을 통해 권력을 찬탈한 독재자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총칼로 시민을 무자비하게 진압한 주동자이며, 국가반역죄와 국가내란죄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대역죄인'이다. 그러나 모두가 아는 것처럼 전 씨에 대한 단죄는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적 사면을 통해 극적으로 회생한 전 씨는 이후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호·경비 등의 예우를 누려온 터였다. 

반면 5·18 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은 40여 년이 다되도록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계엄군의 유혈진압에 의해 시민이 학살되고 인권이 유린되는 등의 반인류적인 범죄가 자행됐지만 최초 발포 명령자가 누구인지, 헬기를 동원한 발포는 몇 차례인지 등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5·18 진상규명특별법'에 의해 지난해 9월 14일 출범한 진상조사위원회 역시 자유한국당이 조사위원 추천을 피일차일 미루면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수많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전 씨는 여전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베 등 극우집단 일각에서는 전 씨를 '구국의 영웅'으로 추켜세운다. 최근에는 전씨의 부인인 이순자 씨가 "민주주의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저는 우리 남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공분을 사기도 했다. 전 씨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이처럼 그를 비호하기에 여념이 없다. 천인공노할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전 씨가 지금껏 특권과 특혜를 누려온 배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 전 씨의 처벌을 원하는 시민적 요구 역시 점점 거세지고 있다. 강제구인 방침이 전해지자 관련 기사에는 법원의 결정에 공감하며 전 씨를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말살하고, 무고한 시민을 잔인무도하게 탄압했던 후과(後果)일 터다. 전 씨에 대한 역사의 준엄한 평가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그를 위한 '변명'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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