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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김병준의 '칼'이 나경원의 '방패'를 뚫을 수 없는 이유

#1.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서 정말 우리 당에 계파주의가 크게 약화되고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탈계파주의의 승리라고 본다. 지긋지긋한 계파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들이 합쳐져 이번 선거 결과가 나왔다."

#2.

"이번 선거의 의미는 통합과 미래다. 비대위원장께서 우리 당에 오시면서 계파 깨트리기가 시작됐다면, 계파 종식의 완성이 이번 선거가 아닌가 생각한다."

원내대표 경선에 대한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1)과 나경원 신임 원내대표(#2)의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1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과 나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를 통해 한국당의 계파색이 엷어지는 것이 확인됐다고 자평했다. 


ⓒ 오마이뉴스

그러나 '지긋지긋한' 계파 갈등이 사라졌다고 덕담을 이어간 둘 사이의 '케미'는 오래가지 못했다. 비대위의 인적쇄신 작업과 관련해 두 사람은 확연한 인식차를 드러냈다. 나 원내대표가 김 위원장이 추진하려는 인적쇄신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하면서 둘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펼쳐지고 있다. 

나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인적쇄신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의원 임기가 남아 있는데 인작쇄신이 지나치면 대여 투쟁력이 약화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이어 "나는 112명의 의원들을 모시고 싸워야 한다. 군사 한 명 한 명이 중요하다"며 "당 소속 의원 112명이 모두 전사가 돼 함께 뛸 수 있어야 하는데 에너지를 파괴하는 인적청산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했다. 

조직강화특별위원회의 당무감사 결과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현역의원 일부의 당협위원장 자격 박탈을 꾀하고 있는 김 위원장의 인적쇄신 구상에 묵직한 견제구를 날린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김 위원장이 '마이웨이'를 고수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는 것. 김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나중에 할 것은 나중에 하고, 지금 해야 할 것은 지금 해야 한다"며 "내가 비대위원장으로서 일하며 강력하게 요구받은 것이 바로 인적쇄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김 위원장은 "1차 인적쇄신은 이번에 하는 것이고, 2차 인적쇄신은 전당대회를 통해서 이뤄질 것"이라며 "공천이 3차 인적쇄신이 될 것이고, 4차 인적쇄신은 국민의 선택을 통해 이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적쇄신의 구체적 단계론까지 거론하며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김 위원장과 나 원내대표의 극명한 입장 차이가 확인되면서 조만간 발표될 조강특위의 당협위원장 교체 명단의 규모와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인적쇄신에 대한 당내 이견이 첨예한 상황에서 조강특위의 결과 발표에 따라 계파 갈등이 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달 18일 조강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용태 사무총장은 '대여 투쟁에 미온적인 인사', '반시장적 입법 참여 인사', '자유민주주의와 안보의식이 미진한 인사', '2016년 총선 당시 진박 공천 인사',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연관 인사', '당분열 조장 인사', '존재감이 미약한 영남 다선' 등 '7대 원칙'을 심사기준으로 제시한 바 있다. 김 위원장 역시 별도의 판단을 통해 비대위원장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눈여겨 봐야 할 것은 조강특위가 제시한 '7대 원칙'에 대한 친박계의 입장과 태도다.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 이후 인적청산 1순위로 지목받아온 친박계는 조강특위가 발표한 심사기준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친박계 내부에서는 '국정농단 사태 연관 인사', '존재감이 미약한 영남 다선' 등이 포함된 조강특위의 기준안이 노골적으로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다며 강하게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조강특위의 당협위원장 교체 명단에 친박계 인사가 다수 포함돼 있을 경우 계파 갈등이 재점화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원내대표 경선 과정을 통해 친박계의 존재감과 영향력이 여실히 입증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내홍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일각에서 조강특위의 인적쇄신이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조강특위가 엄청난 후폭풍이 예상되는 특정계파의 물갈이에 나서기에는 현실적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나 원내대표가 비대위의 인적쇄신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같은 예상에 힘을 실어준다. 나 원내대표가 예상을 뒤집고 압도적으로 승리한 데에는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친박계 역시 이같은 세간의 평가를 부인하지 않는 모양새다. 친박계 핵심으로 불리는 홍문종 의원은 12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나 원내대표가) '수당파, 잔류파 혹은 친박과 손잡고 당선된 거다' 이렇게 보도를 하고 있다"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했다.   

이는 나 원내대표가 비대위의 인적쇄신을 걸고 넘어진 속내를 짐작하게 한다. 친박계와의 전략적 공생을 선택한 이상 나 원내대표가 인적쇄신을 문제 삼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으로 볼 수 있다. 더욱이 나 원내대표는 이미 보수대통합과 함께 강력한 대여 투쟁을 공언한 상태다. 나 원내대표로서는 자중지란이 불을 보듯 뻔히 예상되는 인적쇄신이 달가울 리 없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세간의 관심은 김 위원장이 인적쇄신의 칼날을 과연 휘두를 수 있을지의 여부에 집중된다. 인적쇄신의 수위와 폭에 따라 김병준 비대위는 물론이고 한국당 혁신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른바 '전원책 파동'을 거치며 김 위원장의 위상과 권위가 크게 상처를 입은 데다, 원내대표 경선을 통해 친박계의 구심력이 뚜렷하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당초 13~14일로 예정됐던 당협위원장 교체 명단 발표가 늘어지고 있는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임기가 두 달여밖에 남지 않은 김 위원장이 미래 권력인 나 원내대표의 반대 입장을 무릅쓰고 인적쇄신을 단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배경일 터다. 쇄신 타이밍을 실기한 김 위원장의 '칼'이 나 원내대표의 '방패'를 뚫어내기 어렵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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