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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미주동포들의 시위는 매국이 아니라 애국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일 4박 7일의 일정으로 캐나다와 미국 순방길에 나섰다. 캐나다 국빈방문과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박 대통령은 캐나다에 도착한 20일부터 사흘간 동포간담회, 데이비드 존스턴 총독과의 환담 및 국빈 만찬, 스티븐 하퍼 총리와의 정상회담 및 오찬, 한국과 캐나다 비지니스심포지엄 참석 등의 일정을 수행했다. 그리고 22일 뉴욕으로 출발해 23~24일 열리는 유엔 기후정상회의, 유엔 총회, 유엔 사무총장 주최의 '글로벌 교육우선구상(GEFI)' 고위급 회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정상급 회의 등에 참석하고 있는 중이다. 


일반적으로 해외동포들은 모국 대통령의 방문에 자부심과 함께 가슴 뭉클한 상념에 빠져들게 된다. 아마도 이국만리 타지에서 살아가며 겪었을 갖은 설움과 애환들이 대통령의 방문에 맞춰 한꺼번에 터져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해외 동포들에게 모국의 대통령은 자상한 아버지이며 인자한 어머니와도 같은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자 상징적 존재로 여겨진다. 따라서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교민사회는 마치 큰 잔치를 앞둔 심정으로 분주하고 들뜨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 박 대통령의 방미 와중에는 아주 특별한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다.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대단히 이례적인 장면들이다. 





주류 방송과 언론에서는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캐나다를 방문한 첫날인 20일, 박 대통령은 동포들과의 간담회 장소였던 오타와 샤토로리에 호텔에 정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시위대들이 국회의사당에서부터 호텔 앞까지 박 대통령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특별법을 제정하라', '박근혜는 한국의 합법적인 대통령이 아닙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기 때문이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호텔의 정문이 아닌 다른 출입구를 이용해 행사장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박 대통령을 향한 시위는 비단 캐나다에서만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24일 유엔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찾은 박 대통령은 다시 한번 교민들의 시위에 체면을 구겨야만 했다. 이날 교민들은 세월호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한편 세월호 참사를 외면하는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번 시위는 뉴욕거주 교민뿐만 아니라 LA, 워싱턴 DC, 버지니아 주 등 미국 각지에서 300여 명 가량의 교민들이 참가한 미주교민 집회 사상 최대규모의 시위였다. 2009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미 기간 중 뉴욕 한인들 10여명이 '반MB집회'를 열었던 때와 비교하면 이번 미주 교민들의 시위가 얼마나 큰 규모인지 짐작할 수 있다. 


미주 교민들로부터 상상하지 못했던 홀대와 규탄을 받자 '종박주의'에서 헤어나올 줄 모르는 새누리당이 발끈하고 나섰다. 새누리당의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일부 교민들의 도를 넘는 행동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며 "그들의 스토킹 시위는 결국 우리나라의 품격을 떨어뜨리고, 대통령의 이번 순방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드는 매국적인 행위"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장우 원내대변인은 여기서 한술 더 떴다. 그는 "UN총회장에서까지 국격을 훼손하고 나라를 망신시키는 재미 친북좌파들은 시위를 즉각 중단하라"며 "시위를 주도한 단체는 미국 각지에서 활동하는 '노눗돌'이란 친북성향의 단체로 최근에는 뉴욕타임즈에 대통령 비하 광고까지 낸 것으로 알려졌다"고 시위에 참석한 미주 교민들을 맹비난했다.


이명박 정권 이후부터 대통령과 정부정책을 비판할 때면 약방의 감초처럼 나타나는 '종북'과 '친북좌파'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새누리당의 고루함은 도무지 진화할 줄을 모른다. 낡아빠진 고루함에 더해 상상력마저 빈곤하기 짝이 없으니 사람들의 장탄식을 끄집어내는 참으로 신기한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모든 사회적 현상에는 인과가 따른다. 하다 못해 사과가 하나 떨어져도 그에 합당한 이유가 존재한다. 해외동포들이 자국 대통령의 방문에 맞추어 시위를 벌이는 것은 마땅히 밝혀져야만 하는 진실이 감추어지고 지켜져야만 하는 보편적 상식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선거에 국가기관이 불법개입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무력화시키고 범죄의 피의자들을 보호해 주고 있는 나라, 수 백명의 자국 국민들이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속에 목숨을 잃었음에도 나몰라라 하는 대통령과 정부, 수개월이 지났음에도 사고의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나라의 불의와 부조리를 해외동포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시위에 참석한 해외동포들을 향해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새누리당의 모습을 통해 수 십년 전 그들의 원형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들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신군부 시절 반공과 애국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용공사건을 조작해 냈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에게 '좌익', '빨갱이'라는 낙인을 찍으며 무자비하게 인권을 유린했다. '좌익'이 '좌파'로, '빨갱이'가 '종북'으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저들의 반응양식은 놀랍게도 똑같다. 


중세의  왕조시대가 아닌 이상 대통령은 신상불가침의 절대자가 아니다. 주권자인 국민이 부여해 준 권력을 한시적 기간동안 사용하는 국민의 대표자일 뿐이다. 대통령도 잘못했으면 비판과 비난을 받아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탄핵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대통령의 자리는 다른 의미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게 향하는 비판에 대한 저들의 낡은 반응이 이를 증명한다. 이같은 인식은  민주주의에 대한 오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저들의 태생적 습성에 기인하고 있다.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체제와 정권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어디론가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반병신이 되어 나오고 때로 목숨까지 잃어야만 했다. 그 시절은 정치권력이 '애국'이란 이름으로 시민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고 인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아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야만의 시대였다. 그 시절 '애국'이란 절대권력자에 대한 맹목적 충성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그러나 권력자가 국가가 될 수 없는 이상 이는 명백한 오류일 수 밖에 없다.


미주 동포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을 비판하고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것은 부당함과 불의함에 대한 항의이자 저항의 표현이다. 저들의 행위는 오래 전 이 땅의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자유를 위해 무시무시한 군사독재정권과 당당히 맞서 싸웠던 사람들의 그 모습과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수십년 전 자신들의 정치 선배들이 했던 방식 그대로 시위에 참가한 미주 교포들을 향해 '종북'이라는 올무를 덧씌우며 이를 '매국행위'로 매도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향한 미주동포들의 시위가 '매국행위'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개별주체의 몫이겠지만 이것 한가지는 환기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정의를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저항하는 행위가 국격을 훼손시키고 나라를 망신시키는 매국행위라 단죄되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여전히 유신독재와 군사독재의 서슬퍼런 압제에 시달리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 말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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