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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한국당의 황당한 논리가 기가 막혀

"거대한 분단의 벽을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꿈꾸고 준비하는 자의 몫입니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평화통일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세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남북한 주민들의 인도적 문제부터 해결해 가야 합니다. 둘째, 남북한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를 함께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셋째,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에 나서야 합니다. 저는 이런 제안을 남북한이 함께 실현할 수 있도록 '남북교류협력사무소' 설치를 북측에 제안하고자 합니다."


ⓒ 오마이뉴스


이 발언의 주인공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다. 적대적 강경 정책으로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개성공단을 폐쇄시킴으로써 남북관계를 단절시켰다고 평가받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 발언의 당사자다. 


지난 1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박 의원은 이날 2014~2015년 <조선일보>의 '통일이 미래다' 기획시리즈와 박 전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 그리고 김무성 의원의 발언 등을 인용해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보수진영에서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북한 퍼주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보수진영의 공세가 한마디로 '내로남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 의원에 따르면, 당시 <조선일보>는 '통일이 미래다' 기획 기사에서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의 발언을 인용해 "북한이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하면 스타기업들이 줄줄이 탄생할 것이다. 통일한국은 21세기 가장 강력한 국가 중 하나로 떠오를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통일한국이 2030년에는 G7의 강대국이 될 것"이며 "2014년부터 남북이 상호 화해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경제·사회적으로 통합을 이뤄갈 경우 연평균 4~5% 정도의 고속성장을 하게 될 것이고, 결론적으로 2030년 GDP가 2조8천억 달러, 2050년에는 6조5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박 의원은 이날 김무성 한국당 의원의 발언도 소개했다. 2014년 2월 11일 김 의원이 주도해 만든 당내 연구모임인 '통일경제교실' 첫 세미나에서 나온 발언이다. 김 의원은 이날 인사말을 통해 "한반도에 통일기회가 다가오는데도 이를 놓친다면 이는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며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준비하고 또 준비해야 하는 게 이 시대 정치인에게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라고 역설했다. 

김 의원의 통일 예찬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김 위원은 당시 이런 말도 했다. "우리나라가 G15에서 G7 반열에 오를 수 있도록 신성장동력을 찾아내야 하는데 그게 바로 통일이라고 확신한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도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는데 통일이 대박이 되도록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그러나 그들은 정권이 바뀌자 다른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경협을 통해 어마어마한 경제·사회적 이익을 창출해 낼 수 있다고, 남북 경제 협력은 '퍼주기'가 아니라 오히려 '퍼오기'가 될 것이라고, 신성장동력인 통일 대박을 놓치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던 사람들이 태도를 바꿔 정반대의 주장을 하기 시작한다. 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에 따라 입장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 첫 날이었던 10일 이와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조치인 '5·24조치' 해제와 관련해, "해제 용의가 있느냐"는 이해찬 민주당 의원의 질문에 강 장관이 "관계부처와 검토 중"이라고 답변하면서다. 

강 장관의 입에서 남북 간 교역을 전면 금지한 5·24 조치 해제 검토 발언이 나오자 한국당 등 보수야당은 격한 반응을 보였다. 5·24 조치의 발단이 된 천안함 사건을 거론하며 날을 세운 것이다. 정진석 의원은 "5·24 조치 해제는 국회와 전혀 상의된 바가 없는데 사전 상의 없이 검토한다는 것은 유감스럽다"며 "국회가 막을 방법은 없으니 강행한다면 적어도 천안함 피해 유족에게 먼저 찾아가 이해를 구하는 것이 순서"라고 비판했다. 

김무성 의원 역시 "외교부가 5·24 조치 주무부처도 아닌데 검토 발언을 국정감사에서 해도 되느냐"며 "천안함 폭침이 북한 소행이 아니라고 보느냐"고 따져 물었고, 이정현(무소속) 의원은 '위증 고발'을 거론하며 발언 취소를 강력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자신의 발언이 논란이 되자 강 장관은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제 말이 앞서 나갔다면 죄송하다는 말씀 드린다"고 사과했다. 


ⓒ 오마이뉴스


5·24 조치와 관련된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강 장관의 준비 부족, 자신의 발언이 미칠 파장을 고려하지 못한 정무적 판단 등에 대해서는 비판의 여지가 충분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들은 우리의 승인 없이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각적으로 반응한 것에서 드러나듯,  5·24 조치 해제가 미국은 물론 국제사회와의 외교적 갈등을 야기시킬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5·24 조치 해제와 관련해 한국당의 공세가 논리적으로 타당한지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합리적 판단을 위해 그들의 과거 행태를 먼저 살펴보자. JTBC는 10일 박근혜 정권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5·24 조치 해제의 필요성이 강하게 대두됐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9월 당시 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은 각각 "가장 큰 걸림돌은 저는 5·24 조치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5·24 조치는 이제 시효가 지난 정책입니다. 새로운 차원에서 대담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라며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5·24 조치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이 '통일 대박'을 부르짖은 이후 그에 발맞춰 여당 지도부의 기조가 달라진 것이다. 

JTBC는 이날 한국당 등이 맹비난을 퍼붓고 있는 '9·19 군사합의'와 관련해서도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남북 긴장이 고조되던 2011년 이명박 정부 국방부가 '남북 상호 비행금지구역 설정', 'NLL을 중심으로 한 훈련 금지구역 설정', 'GP 철수' 등 군비통제추진계획서를 작성했다는 내용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계획서가 9·19 군사합의의 내용과 놀라울만큼 흡사하다는 사실이다. 한국당의 논리대로라면 이명박 정부 당시 이미 '무장해제', '영토주권 포기' 정황이 있었던 셈이다. 그것도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 이듬해에 말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과 관련해 반대를 일삼고 있는 한국당의 행태에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지적이 끊이질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터다. 집권 당시 추진했던 정책들은 물론이고 자신들이 했던 발언까지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 아침에 짓뭉개버리기 일쑤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사정이 이러니 한국당이 아무리 건설적인 비판을 한다 해도 걸러서 듣고 보는 '한국당 디스카운트'가 횡행하는 것일 테다. 

자신들이 집권할 때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하더니,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니 '통일은 쪽박'이라 한다. 내용 면에서 크게 차이가 없는 군비통제추진계획서까지 작성했으면서 평양선언에 담겨있는 9·19 군사합의 비난에 열을 올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평화협력지대' 구상엔 'NLL 포기'라 핏대를 세우더니, 자신들은 DMZ(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을 만들자고 주장한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우리는 하나다'라는 현수막까지 내걸고 북한팀을 열렬히 응원하더니,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평양올림픽'이라 폄훼하며 힐난한다.

작금의 한국당의 행태가 대개 이러하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최소한의 일관성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이쯤되면 자연스럽게 의문이 생긴다. 자신들이 과거에 뭘 했는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면서도 저러는 건지 말이다. 전자라면 공당으로서의 무책임과 자질 부족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일 테고, 후자라면 속된 말로 염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 한국당이 어떤 답을 내놓을지 정말 궁금해진다. 다들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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