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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의 'NLL 포기' 공세..'새누리당 시즌2' 빼다 박았다

"진리는 하늘의 달과 같고 문자는 우리의 손가락과 같다. 달을 가리키는 것은 손가락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달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달을 보라고 손가락을 들었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쳐다봐서야 어찌 되겠는가".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견지망월'(見指忘月) 고사다. 손가락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달은 보지 못한다는 얘기다. 

전 세계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깎아내리기에 여념이 없는 자유한국당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뜩 이 고사가 떠올랐다. 남북이 전격적으로 합의한 평양공동선언의 본질을 직시하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 공동 번영을 위한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온 힘을 쏟아야 할 시기에 정치공학을 앞세워 정상회담 흠집내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다. 


ⓒ 오마이뉴스


한국당의 '견지망월' 행태 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NLL 포기' 주장이다. 한국당은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노광철 인민무력상이 합의한 남북 군사분야 합의를 '무장해제'라 비난하면서 문 대통령이 'NLL을 포기했다'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마치 지난 2012년 대선의 데쟈뷰를 보는 것 같다. 당시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며 대대적인 정치공세를 편 바 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군사분야 합의에서 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하고 정찰 자산을 스스로 봉쇄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장병들이 피로써 지켜온 서해 NLL을 사실상 포기하는 폭거를 자행했다. '노무현정부 시즌2' 정부답게 노 전 대통령이 포기하려 했던 NLL을 문재인 대통령이 확실하게 포기하고 말았다."

21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이다. 그는 '새누리당 시즌2' 정당의 원내대표답게 이미 사실 무근으로 밝혀진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으로도 모자라 남북 군사분야 합의를 악의적으로 호도하고 있다. '안보팔이'로 혹세무민 하려는 지긋지긋한 행태가 2012년 대선 당시나 지금이나 똑같이 반복·재생되고 있는 것이다. 

정문헌 전 새누리당 의원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논란은 2012년 대선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메가톤 이슈였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NLL을 포기하겠다"고 발언했다는 게 주된 요지다. 정 전 의원은 두 정상 사이에 단독비밀회담이 있었고, 'NLL 포기' 발언을 입증할 녹취록도 존재한다며 정치생명까지 걸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은 의혹을 제기한지 3일만에 녹취록은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이 말한 '대화록'이라며 슬그머니 말을 바꿨다.)

정 전 의원이 포문을 열자 새누리당과 당시 박근혜 후보는 '안보공세'에 총력을 기울이며 남북정상 사이의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연일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 선대위 총괄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의원 역시 부산 유세에서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NLL을 포기하겠다'고 말했다며 열변을 토하기도 했다. 김 의원이 부산 유세에서 읽었던 문건은 훗날 공개된 대화록 내용과 거의 흡사해 불법문서유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새누리당이 총공세를 펼쳤던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실제 2012년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계량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정치공세가 지속되면서 '안보이슈'가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했고, 그에 따라 보수층을 강하게 결집시키는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당시 새누리당의 공세가 사실이 아닌 새빨간 거짓을 바탕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정 전 의원의 주장은 허위로 밝혀졌다. 두 정상 사이의 단독비밀회담은 열리지 않았고, 당연히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공개된 대화록 그 어디에도 나라가 절단이라도 날 것처럼 새누리당이 물고 늘어지던 그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공세를 펼쳤던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주장은 날조이자 철저하게 기획된 정치공작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 오마이뉴스


그런데 한국당이 또 다시 NLL을 걸고 넘어지고 있다. 악의적인 정치공세로 판명난 NLL 문제를 그들이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을 터다. 남북정상회담의 영향으로 하락세를 보이던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동의 찬성 여론이 비등해지자 안보이슈를 통해 제동을 걸어보려는 속셈일 터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정국 주도권이 정부여당으로 넘어가는 것이 못내 못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비판도, 반대도 객관적인 사실에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해야 공감을 얻는다. '평양공동선언'은 진저리나는 전쟁 위협과 공포를 종식시키고 화해와 평화, 경제적 번영의 초석을 다지기 위한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남북 군사분야 합의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반도의 화약고'라 불려온 NLL 지역에서의 군사 행동을 자제하고, 이 지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어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겠다는 취지인 것이다. 

그러나 한국당은 이와 같은 남북 군사분야 합의의 본질적 의미는 아예 머리 속에서 지워버린 모양이다. 한국당은 북측 50km, 남측 85km로 지역 설정이 돼 있다는 사실과 이 지역에서의 군사훈련이 중단된다는 점 등을 집중 부각시키며 이를 'NLL 포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북측 역시 장사정포와 미사일이 집중 배치돼 있는 해안선 일대에서의 훈련이 중지되고, 북측 해안선(270km)이 남측 해안선(100km)보다  2배 이상 길게 설정됐으며, 이번 합의로 군사적 대치 대신 평화공존의 길이 열리게 됐다는 사실 등은 전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대다수 시민들은 남북 평화와 공존, 번영과 통일의 시대를 열기 위한 두 지도자의 위대한 여정에 성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전 세계 역시 지구촌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변화에 적극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당은 다르다. 8천만 겨레의 운명을 가늠할 중차대한 시기에 힘을 보태기는커녕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폄훼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 그에 맞춰 인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저들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여전히 모르는 모양이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저열한 정치공세에 또 다시 속아넘어갈 리 만무하건만, 이미 거짓으로 판가름 난 'NLL 포기'를 염치 없이 또 다시 입에 담고 있다. 세상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시민들의 의식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새누리당 시즌2'를 빼다 박은 듯한 한국당의 행태를 도무지 이해할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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