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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특활비 폐지 전격 선언한 국회..그들은 왜 욕을 먹고 있나

13일 오전 아주 의미심장(?)해 보이는 정치적 합의가 국회로부터 나왔습니다. 문희상 국회의장 주제로 국회에서 열린 여야 3당 원내대표 회동 결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여야 3당 원내대표는 이날 그동안 첨예한 논란을 불러일으켜왔던 국회 특수활동비를 전격적으로 폐지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음은 이날 회동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의 발언 중 일부입니다. 


"'의정사에 남을 쾌거를 결단내렸다'라고 생각합니다"(문희상 국회의장), "특활비 문제에 여야 간 완전히 폐지하는 것으로 합의했습니다"(홍영표 더불민주당 원내대표), "특활비 폐지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의 일면을 걷어낼 수 있게 돼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대립과 반목, 소모적 정쟁에 날 새는 줄 모르던 정치권이 모처럼 의기투합해 손을 잡았습니다. 문 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들은 정치사에 남을 기념비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사실에 고무된 듯 회동 직후 대단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내비쳤습니다. 대다수 언론 역시 이날 회동 결과를 실시간으로 전하며 여야의 특활비 폐지 합의의 의미와 이후 전망을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냈습니다.


ⓒ 연합뉴스

앞서 8일 민주당과 한국당은 영수증과 증빙서류 등을 첨부하는 조건으로 올해 특활비를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합의한 바 있습니다. 폐지 대신 업무추진비 등의 형식으로 특활비를 양성화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 결정으로 민주당과 한국당은 거센 역풍에 휩싸이게 됩니다. 


특활비 논란의 핵심은 전적으로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에 있습니다. 과도한 특권과 특혜로 여론의 비난을 한 몸에 받던 국회가 특활비 폐지가 아닌 유지로 방향을 선회하자 여론의 비난이 솟구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특활비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국회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정적 여론이 거세지자 민주당과 한국당은 결국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날 여야는 특활비를 폐지하기로 입장을 바꿨고, 이를 공식화했습니다. 고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참여연대의 폭로로 뜨겁게 불이 붙었던 국회의원들의 특활비 논란은 이것으로 일단락되는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날 오후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여야 합의의 구체적 내용이 알려지면서입니다. "의정사에 남을" "특활비 폐지를 통해" "정의롭지 못한 제도의 일면을 걷어낼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오히려 정치권을 향해 비난이 솟구치고 있습니다. 잘못된 관행과 문화를 바로잡겠다며 특활비를 폐지하기로 결정한 국회는 왜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명확해 보입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이번 여야 합의에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 이날 합의는 유심히 들여다보면 석연찮은 부분들이 한 둘이 아닙니다. 먼저 국회의 합의를 과연 특활비의 완전한 폐지로 볼 수 있는지부터가 의문스럽습니다. 

2018년 예산안에 따르면, 올해 국회에는 총 62억 7000만원의 특활비가 책정됐습니다. 이 가운데 교섭단체 몫으로 배정된 금액이 15억 원입니다. 이날 국회가 폐지하기로 합의한 특활비가 바로 이 부분에 해당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전체 특활비 중 교섭단체 몫으로 배정된 15억 원만 국회가 폐지하기로 결정했다는 뜻입니다. 완전 폐지와는 상당한 간극이 느껴집니다.  

논란의 소지는 또 있습니다. 이날 회동에서는 국회의장단과 상임위 몫의 특활비는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부분 역시 완전 폐지보다는 축소가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종합해 보면 여야의 이날 합의는 전면 폐지가 아닌 '부분 폐지'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 오마이뉴스


 업무추진비와 관련된 부분 역시 짚어볼 대목입니다. 업무추진비는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 활동에 직접적으로 소요되는 경비'인 특활비와 달리 국회의 일상적인 공무를 처리하는 데 사용되는 경비입니다. 그런데 국회는 특활비를 폐지하면서 그 일부를 업무추진비로 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와 관련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이날 YTN 라디오 '김호성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지금 국회에 이미 예산 편성되어 있는 업무추진비를 예산 증액을 하면서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겠다는 방향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회가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특활비를 폐지하는 대신 업무추진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예산을 확보하려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대표는 이어 "업무추진비가 얼마나 더 증액되어야 하는지, 이를 납득시키려면 특활비가 제대로 정당하게 사용됐는가를 밝히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며 "그런 논의 없이 업무추진비를 다시 늘리고자 하는 것은 특활비는 없앴지만 특활비로 받아왔던 돈은 그대로 수령하겠다는 그런 뜻으로 읽힐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활비의 일부분이 업무추진비 등으로 전용(轉用)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업무추진비 역시 국민적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특활비와 마찬가지로 그동안 업무추진비의 용처를 두고서도 크고 작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이를 감안한다면 업무추진비 증액은 결국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국회가 '특활비 폐지' 합의를 도출했음에도 그들을 향한 세간의 의구심은 전혀 가시질 않고 있습니다. 외려 특활비 완전 폐지를 선언한 국회를 향해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국회의장단과 상임위 몫으로 배정돼 있는 특활비의 폐지 여부가 여전히 불투명한 데다가, 겉으로는 특활비를 없애겠다고 하면서도 그 이면에서 업무추진비를 늘리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는 16일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 국회 차원의 제도 개선 방안이 특활비 논란의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만약 이번에도 납득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한다면 국회를 향한 국민적 비난이 폭주하게 될 것입니다. 특활비 폐지가 국민을 기만하는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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