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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일가의 갑질이 당신에게 묻고 있는 것

대한민국 민간항공업계의 쌍두마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다. 부당 노동 행위과 불공정 거래 행위,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는 물론이고 감추어져 있던 총수 일가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나며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갑질' 논란까지 불거지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향한 비난이 폭주하고 있는 상태다.

두 재벌의 갑질 경쟁 열기가 뜨겁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점입가경이 따로 없다. 마치 누가 누가 더 갑질하나 경연대회를 보는 것 같다. 포문은 대한항공이 먼저 열었다.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던지기'로 시작된 조양호 일가의 갑질 논란은 또 다시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됐다. 대통령도 못한다는 '램프 리턴'을 지시한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불거진 게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장남인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이사 역시 과거 노인 폭행 사건에 휘말렸던 사실을 떠올리면 한숨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황당한 것은 대한항공 일가의 갑질이 자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삼남매의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의 갑질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전 이사장이 직원에게 폭언과 폭행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는가 하면, 자신을 할머니라고 부른 인천하얏트호텔 정원 관리 직원을 그만두게 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공항 라운지에서 음식을 내던지고 운전기사에게 상습적으로 욕설과 폭행을 가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직원들의 폭로도 잇따랐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이용하는 게시판과 카카오톡 단톡방 등에는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전횡과 갑질을 폭로하는 글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광고대행사 직원을 상대로 한 조 전 전무의 고성과 욕설, 이 전 이사장의 폭언·폭행 등과 관련된 제보가 이어지기도 했다. 해외에서 구입한 고가제품을 세관 신고 없이 밀반입했다는 내부자 고발도 나왔다. 

이쯤되면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은 일상적 관행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지경이다. 그러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재벌가의 갑질 행태는 비단 대한항공에만 그치지 않았다. 대한항공 총수 일가를 향한 국민적 분노가 채 사그라들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시아나항공이 바통을 이어 받았다. 초유의 기내식 사태로 여론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불과 얼마 전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 파문으로 세상이 발칵 뒤집어졌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아시아나항공 사태는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해 보인다. 이번 논란은 표면적으로 기내식 공급에 문제가 생기며 촉발됐다. 그러나 자세히 뜯어보면 이번 사태 역시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과 별반 차이가 없다. 이른바 'No Meal'(기내식 미탑재) 사태를 부른 아시아나항공의 기내식 대란의 이면에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갑질'의 그림자가 어려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번 사태는 아시아나항공이 지난 15년 동안 기내식을 공급하던 업체와 계약을 종료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됐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이 석연찮다. 아시아나항공은 품질과 단가 등을 고려해 납품 업체를 변경했다고 밝혔지만 기존 업체의 주장은 그와는 전혀 다르다. 이 업체는 지난해 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인 금호홀딩스가 발행한 1600억 원 규모의 신주인수권부사채(BW) 매입 요구를 거절하자 아시아나항공 측이 계약을 종료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로 납품 계약을 맺은 업체 측에서 BW 매입 요구를 수용했다는 점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아시아나그룹이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BW 매입을 재계약 조건으로 내세웠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금호타이어를 재인수하기 위한 자금 확보 차원에서 업체에 BW 매입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의혹이 사실이라면 총수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기존 업체가 피해를 입은 셈이 된다. 이와 관련 재계약에 실패한 기존 업체는 BW 매입 요구의 불공정성을 문제 삼아 아시아나항공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한 상태다.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대란 사태는 납품업체 협력사 대표의 목숨까지 앗아 갔다. 납품 문제로 극심한 압박에 시달리던 협력사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3월 건설 중이던 기내식 공장의 화재로 납품에 차질이 생기자 7월부터 3개월 동안 임시로 기내식을 공급할 업체를 선정했다. 그러나 저가항공사에 납품하던 이 업체의 생산량으로는 애시당초 물량을 감당할 여력이 부족했다는 게 중론이다. 결과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한 대응과 주먹구구식 땜질 처방이 기내식 대란과 협력업체 대표의 죽음으로 이어진 셈이다. 

박삼구 아시아나그룹 회장의 갑질 행태 역시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지경이다. 최근 KBS <뉴스9>은 아시아나항공 승무원 교육생 수십 명이 모여 박 회장 방문을 앞두고 환영행사를 연습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해당 영상에는 교육생들이 "회장님을 뵙는 날, 자꾸만 떨리는 마음에 밤잠을 설쳤었죠", "새빨간 장미만큼 회장님 사랑해. 가슴이 터질 듯한 이 마음 아는지" 등의 낯뜨거운 가사가 포함된 노래를 연습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날 방송에서는 박 회장과 신체 접촉을 하라는 윗선의 지시를 받았다는 현직 승무원의 충격적인 폭로도 나왔다. 증언에 나선 승무원은 관리자들이 "회장님이 저희가 안 안아줬다고 되게 서운하다고. 그럼 '회장님' 이러면서 안아드리고 또 사랑합니다, 해 드리고. (손을) 깊숙이 잡아라. 안을 때도 꽉 안아라 이런 식으로 지시를 한다"고 털어놨다. 이 승무원은 자신들의 처지를 '기쁨조'에 비유하며 "이러려고 승무원을 지원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앞서 2월 박 회장은 승무원을 격려하는 행사에서 신체접촉을 시도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직장인들의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는 박 회장과 관련된 '미투' 제보가 잇따르기도 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 회장은 결국 "모든 것이 내 불찰이고 책임"이라며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KBS <뉴스9>의 방송 내용은 박 회장의 당시 사과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쏟아지는 사회적 비난과 그에 따른 엄청난 후폭풍에도 불구하고 그는 갑질의 유혹(?)을 끝내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사회가 다시 술렁이고 있다. 재벌 일가의 갑질이 그 진원지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갑질 파문은 이 나라 특권층의 현주소를 여과없이 보여준다. 자신들을 향한 따가운 질책과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그들의 갑질은 도무지 멈출 기미가 없다. 그런 면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총수 일가의 갑질은 그들을 감싸고 있는 특권의식의 뿌리가 얼마나 질기고 단단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갑질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갑질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갑질이 만연화된 사회라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더욱이 대한민국은 극강의 특권의식과 선민의식, 천민 자본주의와 물욕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곳이다. 갑질의 피해자가 갑질의 가해자가 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사회인 것이다. 이는 갑질이 특정 계층에게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재벌 총수 일가를 향한 대중의 분노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긋지긋한 갑질 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식의 대전환과 보다 본질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왜곡된 갑·을관계를 막기 위한 강력한 법안을 만들고, 불공정 관행을 감시·감독하는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무한경쟁과 서열화를 부추기는 교육시스템을 전면적으로 개혁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문화적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는 동안 불평등과 부조리에 노출돼온 사회 구조와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시대 혁신의 의지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바로 사회 개혁의 적기일 터다. 잘못된 제도와 문화를 하나하나 바꿔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아니라 다음에는 대한민국의 날개가 꺾여버릴지도 모른다. 성난 대중의 분노가 특권층의 갑질을 비난하는 데에만 그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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