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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풍전등화에 빠진 한국당..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6·13 지방선거에서 기록적인 참패를 당한 자유한국당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또 없을 듯 하다. 한국당이 지방선거 패배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다. 홍준표 대표의 사퇴로 리더십에 구멍이 생긴 가운데 당 수습 방안을 놓고 극심한 내홍에 빠져드는 양상이다. 설상가상으로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해묵은 계파 갈등까지 불거지며 당의 위기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김성태 당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18일 '중앙당 해체'와 '원내중심 정당 전환' 등을 골자로 하는 깜짝 '쇄신안'을 발표했다. 김 권한대행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로 한국당은 중앙당 해체를 선언하고 지금 이 순간부터 곧바로 중앙당 해체 작업에 돌입하겠다"며 "중앙당 조직을 원내중심으로 집중하고 그 외 조직과 기능을 필수적 기능 위주로 슬림화해서 간결한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김 권한대행은 아울러 자신이 직접 중앙당 청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청산 작업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김 권한대행의 혁신안은, 그러나 환영받지 못했다. 혁신안이 발표되자 당 내부에서 외려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박덕흠·김한표 의원 등 재선 의원 15명은 이날 여의도 국회의원 회관에서 모임을 갖고 김 권한대행이 독단적으로 '중앙당 해체'가 포함된 쇄신안을 발표했다며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의원들과 협의 없이 쇄신안이 발표되자 절차적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원외당협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한국당 재건비상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물어 김 권한대행의 퇴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김 원내대표는 이번 선거참패의 책임과 홍준표 전 대표의 전횡에 대한 협력에 엄중한 책임을 지고 즉각 사퇴해야 할 대상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거 패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김 권한대행이 당 쇄신 작업을 주도하는 것 자체가 자가당착이라는 비판이다. 

쇄신안을 둘러싸고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친박계와 비박계 간의 계파 갈등이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은 재선모임을 통해 "(무릎꿇기) 퍼포먼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저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며 "매번 보여주기식 이벤트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그건 원내대표가 월권하는 것"이라고 김 권한대행을 강하게 비판했다. 

한선교 의원도 1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비대위원장을 영입하면 전권은 그 분이 갖는 것이고, 권한대행은 그때까지 당을 순조롭게 순리대로 운영해 가는 것"이라고 각을 세웠다. 한 의원은 이어 "한 가지 염려가 되는 것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중앙당 해체와 같은 커다란 플랜을 내갖고 걸고 나온 것으로 봐서는 또다시 한국당에 김성태를 중심으로 한 어떤 세력이 결집해 있는 것은 아닌가"라며 김 권한대행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당 쇄신 움직임에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정우택 의원 역시 19일 BBS 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비박계인 김무성 의원의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에 대해 "2016년 선거 때 이미 언급한 내용인데 공개적으로 발표한 것을 보고 당권 도전을 위한 다른 생각에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한 의원의 인식과 같은 맥락으로 당 쇄신안을 계기로 비주류인 비박계가 당권 장악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 노컷뉴스


친박계의 우려 섞인 시각은 한국당 내에서 당권을 둘러싸고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권한대행의 급작스런 쇄신안 발표가 '김무성·김성태·김용태' 의원 등 바른정당 복당파의 당권 장악 시도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친박계의 판단인 것으로 보인다. 김 권한대행이 19일 오전 김무성 의원을 비롯한 복당파 의원 10여명과 비공개로 만나 당 쇄신안에 대해 의견 조율을 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들의 의구심은 더욱 커지고 있는 상태다.

이처럼 쇄신안을 둘러싼 내분이 계파 싸움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지방선거 참패로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져있는 한국당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홍 대표의 사퇴로 리더십이 붕괴된 가운데 김 권한대행의 수습책이 당 내부의 공감을 얻지 못하며 오히려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이 처해있는 위기의 본질을 성찰하고 힘을 하나로 규합해도 모자랄 시기에 또다시 구태스런 모습을 재연하고 있으니 시쳇말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한국당의 위기는 어느 한 사람, 특정 계파의 잘못이 아닌 모두가 연대해 책임을 져야 할 총체적인 문제다. 기득권을 내려놓고 책임과 희생을 다하겠다는 '선당후사'의 자세가 절실한 이유일 터다. 그러나 한국당은 그와는 정반대로 가고 있다. 책임과 희생은커녕 당이 난파하는 중임에도 기득권 지키기와 헤게모니 싸움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당 혁신의 바로미터가 될 세대교체와 인적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하다. 한국당의 쇄신안이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배경일 것이다.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현 더불어민주당)은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전북을 제외한 15개 지역에서 전패했을 뿐 아니라 기초단체장 선거 역시 230곳 중 19곳밖에 승리하지 못하는 참담한 실패를 맛봐야 했다. 그로부터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기까지 무려 12년의 세월을 절치부심해야 했다. 그 사이 민주당은 2016년 총선에서 제1당으로 올라서기 전까지 선거마다 연전 연패를 거듭했다. 이는 한국당이 다시 궤도에 오를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해주는 대목이다. 

그동안 한국당은 당 해체, 당명 교체, 비대위 체제를 통한 혁신안 발표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여러 차례 연출해 온 바 있다. 문제는 이른바 '학습효과'다. 한국당의 쇄신은 이미 많은 국민들에게 눈속임 '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통렬한 반성과 성찰, 자기 희생 없이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기득권 사수를 위한 계파 싸움에 매몰되는 모습은 과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런 식이라면 한국당이 그 어떤 혁신안과 쇄신책을 내놓는다 해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득달같이 무릎을 꿇고 잘못을 구하고 혁신을 외쳐본들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입증해왔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시늉'이 아니라 '내용'이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한국당은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뼈저리게 직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연기'(演技)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면 당 자체가 '연기'(煙氣)처럼 사라지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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