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안철수의 정치생명이 꺼져가고 있다

지방선거의 '꽃'은 단연 서울시장 선거입니다. 메가시티 서울의 정치·사회·문화적 상징성을 감안하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니 대선'으로 불리는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예년과 사뭇 다르게 전개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1위보다 2위 싸움이 훨씬 더 주목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3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 간의 치열한 2위 쟁탈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 후보는 사실상 1위 굳히기에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지지율에서 김·안 두 후보를 압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박 후보는 두 번의 재임기간 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시정을 운영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외교·안보 상황도 박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입니다. 여기에 '문재인 프리미엄'이라는 '덤'까지 더해졌습니다. 치열한 선거전이 펼쳐지는 시기 박 시장 캠프에서는 여유마저 느껴집니다. 


ⓒ 오마이뉴스


반면 김 후보와 안 후보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습니다. 두 후보 모두 좀처럼 반등의 모멘텀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끌려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 후보는 그동안 시대흐름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듯한 행보로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왔습니다. 탄핵 정국 당시 김 후보는 태극기집회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이목을 끌었습니다. 당시 그는 박 전 대통령의 행위가 "헌법의 기본이념인 자유민주주의를 뿌리내리기 위한 정당한 통치행위"라며 무죄를 주장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김 후보는 지난달 31일 서울역 앞에서 열린 선거운동 출정식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습니다. "세월호처럼 죽음의 굿판을 벌이는 자들은 물러가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며 구설에 오른 것입니다. 선거 공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다수 국민의 보편적 인식과 동떨어진 김 후보의 행태는 그 한계가 명확합니다. 공략 대상이라 할 수 있는 부동층은 물론이고 김 후보의 실질적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이탈을 부추기는 주된 원인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자유한국당 디스카운트' 현상도 김 후보를 고심하게 만드는 부분입니다. 한국당은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여파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시대흐름과 유리된 수구냉전적 인식과 태도, 국민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구시대적 행태가 이어지면서 좀처럼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표의 확장성 면에서 김 후보가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 후보의 지지율이 한국당 지지율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안 후보의 경우는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해 보입니다.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할 당시까지만 해도 안 후보는 박 후보에 맞설 수 있는 유일무이한 대항마로 평가받아왔습니다. 그러나 본격적인 선거 국면에 접어들자 전혀 예기치 못한 흐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박 시장과 양강구도를 형성할 것이라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국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조사기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안 후보가 김 후보에게 뒤지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타났습니다. 안 후보의 입장에서 보자면 선거를 자신하던 당초의 예상을 완전히 깨뜨리는 당혹스러운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김 후보와 엇비슷하게 나오면서 서울시장 선거는 시쳇말로 김이 빠져버렸습니다. 세간의 관심은 이제 '2위 싸움'에 쏠리고 있습니다. '누가 1등을 하느냐'보다 '누가 2등을 하느냐'에 촉각이 곤두서는 보기 드문 선거전이 펼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보수진영 안팎에서 '단일화' 요구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입니다. 박 후보의 일방적 독주를 막아내기 위한 견제 심리가 보수진영 내부에서 강하게 분출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단일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여지를 남겨놓기는 했지만 두 후보 모두 단일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두 후보 간의 지지율 차이가 크지 않은 탓에 상대를 압박할 명분과 근거 역시 희박합니다. 게다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두 후보가 단일화를 한다고 해도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누가 단일후보가 되든 박 후보가 여유있게 앞서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단일화 회의론마저 제기되고 있습니다. 무엇을 해도 힘든 상황인만큼 차라리 2위 싸움에서 승리하는 편이 낫다는 현실적 판단이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 세계일보


선거에서 2등 싸움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는 승자독식의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현재의 선거구도 아래에서는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그와는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반드시 2위를 차지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두 후보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여야' 대결 못지 않게 '야야' 대결의 결과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선거입니다. 향후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는 정계 개편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보수재편을 위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사이의 주도권 싸움이 아주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보수진영의 적자 자리를 놓고 뜨겁게 경쟁하고 있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외나무다리에서 마주보고 있는 셈입니다. 더욱이 서울시는 다른 여타 지역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치·사회적 파급력이 막대한 곳입니다. 2위 싸움에서 밀려날 경우 받게 될 타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지방선거 이후 정계 개편을 주도하기 위해서라도 2위는 두 당 모두에게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입니다.

2위 싸움은 김·안 후보의 정치적 미래와도 직결돼 있습니다. 2위를 차지하게 될 경우 20대 총선 이후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김 후보의 당내 영향력은 급상승하게 될 전망입니다. 마땅한 후보가 보이지 않던 한국당의 곤궁했던 처지를 상기하면 김 후보의 자기 희생은 당내 입지를 높일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을 제공해 줍니다. 상황에 따라선 포스트 '홍준표'를 가리는 당권 경쟁에서도 앞서나갈 수 있습니다. 

안 후보는 더욱 절실한 입장입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안 후보는 사실상 배수진을 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안 후보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의당 당권 경쟁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나 선거에 출마하고 있습니다. 당안팎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계속된 선거 출마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참신함을 떨어뜨리게 될 뿐더러 유권자의 입장에서도 피로감이 쌓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안 후보의 정치적 위상은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만약 안 후보가 지난 대선에서 획득한 서울지역 득표율인 22.7%에 못미치는 결과가 나올 경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야권을 대표하는 대권주자로서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유승민 공동대표와의 당권 경쟁에서도 뒤쳐지게 될 공산이 큽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가 안 후보의 정치적 생명을 좌우하는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박 후보의 일방적인 독주가 이어지면서 서울시장 선거의 흥미가 반감된다는 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오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나 두 후보 사이의 2위 경쟁에 불이 붙으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었던 서울시장 선거가 활기를 띠는 모양새입니다. 백전노장 김문수 한국당 후보가 이길까요, 아니면 어느덧 중견 정치인으로 자리잡은 안철수 바른미래당 후보가 이길까요. 2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두 후보 간의 공방전이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밋밋하기만 했던 서울시장 선거가 주목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 1인 미디어 '바람 언덕'이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립니다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