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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친문 패권주의란 유령과 싸우고 있는 국민의당

ⓒ 오마이뉴스



"더불어민주당은 친문 패권이 지배하는 당이기 때문에 50% 이상 득표할 거로 예상하고 있고요. 그것이 문 전 대표에게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국민들이 봤을 때는 친문 세력이 패권주의 세력으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에 또 당 지배력을 통해서 후보가 됐구나, 이렇게 평가할 수 있어서 문 전 대표가 이기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죠."

민주당의 호남 순회경선에 대한 문병호 국민의당 최고위원의 예측입니다. 문 최고의원은 문재인 후보의 압승을 예상하면서도 그것은 친문 패권주의의 결과이기 때문에 오히려 문 후보에게 '독'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문 후보는 27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에서 열린 경선에서 총 14만2343표 60.2%의 득표율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문 최고위원의 주장대로라면 문 후보의 압승은 호남지역의 친문 세력들이 패권주의를 가동시킨 결과입니다. 당을 장악하고 있는 친문 세력들이 조직력을 발휘해 호남 순회경선의 압승을 이끈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장투표(8167표)와 ARS 투표(13만3130표), 대의원 투표(1046표)에서 문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사람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모두 친문 패권주의에 손을 들어준 패권 추종 세력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문 후보의 승리를 패권주의와 결부시킨 것은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호남이 패권 청산을 확실히 하려 우리가 상대하기 쉬운 후보를 선택해줬다. 이번 기회에 마지막 남은 패권을 청산하겠다는 호남의 전략적 선택이다. 우리에게 가장 쉬운 후보를 선택해줘 고마울 따름"이라고 민주당의 호남 순회경선 결과를 평가했습니다. 문 후보가 호남 경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국민의당의 정치적 레토릭인 '친문 패권주의'가 어김 없이 등장하는 모양새입니다. 

그렇다면 문 후보의 호남 순회경선 압승을 비난하고 있는 국민의당의 호남권 경선 결과는 어땠을까요. 국민의당의 호남권 경선은 지난 25일과 26일 이틀간 열렸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경선 결과입니다. 안철수 후보는 호남 경선에서 총투표 9만2923표 중 무려 5만9731표를 싹쓸이하며 1위를 차지했습니다. 안 후보가 획득한 64.7%의 득표율은 문 후보의 득표율 60.2%보다 오히려 높습니다. 박 대표와 문 최고위원의 논리대로라면 안 후보의 압승은 '안문 패권주의'가 작동한 결과여야 합니다. 그러나 안 후보의 승리에 패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패권'이란 '어떤 분야에서 우두머리나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여 누리는 공인된 권리와 힘'을 뜻합니다. 그리스어인 '헤게모니아'에서 유래된 패권(헤게모니)은 다수의 동의 하에 부여된 권력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패권에 '다수의 동의'라는 전제가 깔려있다는 점입니다. 다수의 동의에 의한 공인된 권력은 합법적인 정당성을 갖습니다. 다시 말해 패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패권이란 용어 자체도 본래 권력이 얻어지는 과정을 강조한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패권이란 단어는 권력을 독점하고 상대를 지배하려는 비민주적 행태를 지칭하는 용어가 돼버렸습니다. 정치권에서 패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특히나 그렇습니다. 패권에 이처럼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어져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계파정치를 통해 패권을 독점하고 이를 기득권 사수를 위한 도구로 적극 활용해온 탓입니다.

국회의원들과 당원들 위에 군림하는 패권적 계파정치는 한국정치의 오랜 관행이었습니다. 국민의당은 친문 세력이 바로 이같은 계파정치를 펼치고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권력을 틀어쥔 친문 세력이 강력한 패권을 휘두르며 비민주적 전횡을 일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국민의당의 주장이 맞다면 친문 패권주의는 반정치이자 반민주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패권정당인 민주당의 지지율은 50%에 육박하고 있고, 친문 패권주의의 중심인 문 후보는 대선주자 지지율 1위를 수개월 째 사수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친문 패권주의의 실체를 잘 몰라서 벌어지고 있는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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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친문 패권주의라는 용어의 정체가 궁금해집니다. 친문 패권주의는 어느날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닙니다. 과거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친노 세력을 공격할 때 사용했던 친노 패권주의의 프레임을 비문 세력이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친문 패권주의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민주당에서 노무현을 흔들어대던 사람들이 현재 친문 패권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주축 세력이라는 사실입니다. 박지원, 김한길, 김영환, 손학규 등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선거 때마다 '친노 청산론'을 들고나와 친노 세력을 공격하고는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유는 친노 세력이 기존의 정치 문법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은 계파 정치의 산물인 당권 나눠먹기와 공천 줄세우기 등을 철저하게 배격했습니다. 기존의 정치 관행을 허문 것입니다. 이는 문 후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당 대표 시절 계파별 공천이 아닌 시스템공천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호남지역에 뿌리를 두고 있던 호남 중진들과 박영선, 이종걸 의원 등 당내 중진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들은 문 후보의 당 혁신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중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급기야 그들 중 일부는 탈당을 감행해 안 후보와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합니다.

그렇다면 친문 패권주의는 과연 무엇일까요? 친문 패권주의가 실제하는 것이라면 그 실체가 드러나야 합니다. 당 대표로 있을 때 문 후보는 주요 당직에 친문 세력을 앉힌 일이 없습니다. 당안팎의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입니다. 의사결정 역시 철저하게 시스템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이것 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문 후보는 총선 승리를 위해 당 대표직까지 내던진 인물입니다. 국민의당 주장대로 당시 민주당 내에서 친문 패권주의가 작동됐다면 이는 상상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패권주의란 도대체 어느 나라 민주당의 패권주의를 말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민주당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친문 패권주의와 연결시키고 있는 국민의당의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오버랩되는 인물이 한 사람 있습니다. 세르반테스의 역작 '라 만차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돈키호테가 바로 그렇습니다. 돈키호테는 산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거대한 괴물을 향해 맹렬히 돌진합니다. 그러나 그 괴물은 돈키호테의 망상이 만들어낸 허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돈키호테는 상상속의 괴물과 싸우기 위해 칼을 뽑아 들었던 것입니다. 

가상의 적을 향해 끊임 없이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기는 국민의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민주당 내에 친문 패권주의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친문 패권주의의 부정적 이미지가 대중들에게 각인되기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민의당이 친문 패권주의라는 실체 없는 프레임을 작동시켜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끊임 없이 유발시키고 있는 이유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국민의당이 주술처럼 되뇌이는 친노 패권주의는 보수세력이 야권을 옭아맬 때 사용하던 색깔론의 작동 원리와 아주 흡사합니다. 실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용어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인 목적에서 만들어진, 정치공학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어 서슬 퍼런 칼 끝을 겨누고 있습니다. 정치의 저열함과 비루함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내는 장면이 또 어디에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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