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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외환위기 생각나는 정홍원 총리의 발언

지난 달 27일 국제통화기금(IMF)는 한국 경제를 예측하며 아주 의미심장한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아시아국가 중 한국이 미국통화정책의 급변에 가장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IMF는 미국 기준금리가 갑자기 오르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포인트 가까이 떨어질 수 있다는 예측과 함께 한국이 미국발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의 보고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양적완화 종료 그 이후의 상황을 예측한 것이었다. 미 연준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매달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와 주택담보채권을 사들였던 양적완화 정책을 10월 말에 종료했다. 미 연준이 양적완화 정책을 종료했다는 것은 미국의 실업률과 가계지출, 물가상승률 등의 경제지표가 회복세로 돌아섰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미 연준의 다음 수순으로 금리인상을 꼽고 있다. 금리를 인상하겠다는 것은 미 연준이 미국 경제의 회복을 낙관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5월 버냉키가 양적완화 종료를 시사하는 발언을 한 이후 인도,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금융시장이 크게 휘청거렸다. 한국의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버냉키의 발언 이후 한국 주식시장은 한달간 8.6%나 주가가 하락했다. 양적완화 종료에 따른 위기감으로 각국에 유입됐던 달러가 갑자기 빠져 나가면서 벌어진 현상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양적완화 정책이 종료되고 실제 금리가 인상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미리 알려주는 예고편이나 다름이 없다.  


한국 경제에 대한 IMF의 경고는 이같은 미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에 따른 한국의 글로벌 유동성 축소, 국제 금리 인상, 소비제약, 기업투자 위축으로 연계되는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정책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한국 경제의 리스크를 극대화시킬 핵폭탄은 무려 10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가 될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 경제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도 금리를 인상할 수 밖에는 없다. 금리 인상은 그동안 정부의 부동산 대출규제 완화와 기준 금리인하 정책으로 한껏 몸을 불린 가계의 이자부담을 가중시켜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미 연준의 양적완화 종료와 곧 닥칠지 모르는 금리인상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과 IMF의 한국 경제에 대한 경고 등을 고려한 경제 정책의 수립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후보자 시절부터 대대적인 경기부양책을 펼칠 것을 예고했다. 다분히 박근혜 대통령의 474비전(경제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불)을 의식한 행보다. 그는 경기를 부양시키기 위해서 "지도에도 없는 길"을 만들어 가겠다고까지  했다. 이는 쉽게 말해 시중에 돈과 규제를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뜻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완화라는 극단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으며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진단과 처방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역시 거품이 잔뜩 끼어있는 부동산 가계대출이다. 현재 가계부채 1000조 중 500조 가량이 부동산관련 가계대출로 파악되고 있다. 부동산 관련 핵심규제를 풀면서까지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발상은 사실상 정부가 일종의 투기를 조장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세계 경제의 흐름상 집값이 상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박판을 정부가 열어준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치적쌓기용 경제지표가 손톱만큼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서민들의 고통과 부담은 가중될 수 밖에 없다. 나는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이 정부가 과연 어떤 대책을 내놓을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필자의 궁금증은 정홍원 총리의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풀렸다. 정홍원 총리는 어제(4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미국의 재정정책의 변화로 한국판 금융위기가 다가오는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느냐는 새정치민주연합 윤호중 의원의 질문에 대해 "어떻게 총리가 다 알아서 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질문을 하시려면 원고를 주셔야지 대비를 할꺼 아닙니까. 아무것도 없이 어떻게 그걸 압니까"라고 답했다.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힌다. 총리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할 수는 없겠지만 이는 공직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세와 마음가짐의 문제다. 그리고 저 질문이 미리 원고를 받고 대비를 해야 할만큼 어려운 질문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굳이 경제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총리라면 미국의 금리인상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끼치는 영향, 가계부채와의 직접적인 연관성과 파장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정홍원 총리가 이를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알면서도 이렇게 행동했다면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능멸한 것이다. 


정홍원 총리는 이날 1000조가 넘는 가계부채에 대해 "관리가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의 가계부채 현황을 "감내할 수준"이라고 진단하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인식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정부는 3천6백억(9월말 기준)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와 3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경상수지 흑자 등을 근거로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금융불안의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장미빛 전망이 불과할 뿐 실제로는 굉장히 위험한 수준에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2011년 국가총부채(가계부채, 정부부채, 기업부채)는 국내 총생산(GDP)대비 3.1배가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금융위기를 겪었던 그리스의 국가총부채가 GDP대비 2.6배였던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위태로운 수준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 핵심에 바로 가계부채가 있다. 우리나라의 가계부채 증가율은 2011년 이후 OECD 국가중에서 압도적인 1위를 기록했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빚을 내도 좋으니 집을 사라고 부추긴 것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그 빚은 바로 가계 뿐만 아니라 한국경제의 목줄을 겨눌 비수가 된다. 





상황이 이런데도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확대 정책을 고집하고 있고, 정홍원 총리는 무책임하고 한가한 소리나 하고 있다. 이같은 관료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98년의 외환위기가 떠오르게 만든다. 당시에도 정부의 고위관계자들은 한국의 외환위기는 절대로 없을 거라며 허세와 너스레를 떨기에 바빴다. 그들 중 일부는 누구처럼 잘못된 진단과 처방으로 한국경제를 수렁으로 끌고 갔고, 일부는 누구처럼 내막도 모르면서 근거없는 낙관론만 부추겼다. 


물론 필자는 한국이 또 다시 외환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미국을 중심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 경제의 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을 고수한다면, 설마가 현실이 되는 최악의 경우가 생기지 말란 법도 없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언제나 그렇듯이 미리 예고하고 찾아오는 위기란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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