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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비웃을 인공기 게양 논란

인천 아시안게임 개막을 불과 며칠 앞두고 북한의 인공기를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연인즉 이렇다. 경기도 고양시는 고양종합운동장 앞 도로에 인공기를 내걸었다가 보수단체의 항의가 잇따르자 마지못해 인공기를 철거했다. 그래도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어제(10일) "경기장 인근 거리에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기와 대회 엠블링 기만 내걸고 참가국의 국기는 경기장 내에서만 게양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며 가이드 라인을 제시했다. 그런데 문제는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의 결정이 OCA의 규정을 위반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OCA 규정 58조에 의하면 "모든 경기장 및 그 부근, 본부 호텔, 선수촌과 메인프레스 센터, 공항 등에는 OCA 기와 참가 올림픽위원회(NOC) 회원들의 기가 게양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논란을 잠재우려던 것이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전 세계를 통틀어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생각해 보면 인공기 논란은 이전에도 몇 차례 있었다. 지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도 인공기를 게양해야 하는지를 두고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 당시에도 논란에 불을 지핀 주체들의 면면과 이후의 상황전개 양상은 지금과 대동소이했다. 출처 불명의 관변단체들이 불을 지피고 나면 보수인사들이 나서서 숟가락을 얹는 식이었다. 


당시 인공기 게양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 근거로 국가보안법을 내세웠다. 우리나라가 북한을 실체적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있고, 인공기가 국가보안법상 이적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 게양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과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에는 치열한 논쟁 과정을 거쳐 대회규정을 준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고, 이에 따라 경기장 안밖에서 인공기가 내걸릴 수 있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논란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이었다. 부산 아시안게임 경기장에서 북한의 인공기를 들고 응원하는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약 70%에 가까운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시민들은 문제될 것이 뭐냐는 식으로 담담하게 반응했고 쿨하게 받아들였다. 인공기가 내걸리고 이를 응원의 도구로 사용하게 되면 사회불안과 이념의 혼란이 가중될 것이고 급기야 북한의 통일전선 전술에 말려들게 될 것이라던 일각의 주장은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걱정했던 사회불안도 없었고, 이념의 혼란은 더더욱 없었다. 스포츠를 통해 함께 즐기고 소통하며 남과 북이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교감을 나누는 축제의 장이 한바탕 열렸을 뿐이었다. 





이같은 풍경은 격세지감을 느끼기에 충분할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이 이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시민들은 두번이나 남북정상이 한자리에서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그러는 사이 철책에 가로막혀 있던 남북경협이 개성공단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금강산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시대가 바뀌면 사상과 패러다임도 그에 맞게 진화해야만 한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강산이 변해도 도무지 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레드 컴플렉스에 갇혀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변치않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소리만 토해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지고지순한 사랑도 변하는 세상에서 이 사람들의 일관됨은 차라리 경이에 가깝다. 그러나 이들의 일관성은 이성이 결핍되어 있고 논리마저 빈약하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맞아 인공기를 거리에 게양하는 것이 사회불안 및 이념의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저 둘 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어떠한 근거나 답도 제시하지 못하는 저들이 오직 내세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빨갱이', '좌익', '좌파', '종북' 등의 구시대적 퇴물인 매카시즘이 유일하다면 유일하다. 


인공기 철거에는 어떤 정치적 의도도 개입되지 않았다는 고양시의 입장과는 달리 시민들은 그 이면에 어떤 정치적 함의가 내포되어 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마도 오랜기간 동안 받아온 학습효과 때문일 것이다. 이미 십년도 훨씬 전에 시민들이 대수롭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던 인공기 게양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이 시대가 명백히 퇴보했다는 것을 상징하는 해프닝이다. 전 세계인을 초대해 놓고 OCA의 규정까지 어겨가며 길거리에서 타국의 국기마저 게양하지 못하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적 조롱거리로 밖에는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시민들은 21세기를 지나 미래를 향해 가는데 관은 여전히 20세의 낡은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도약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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