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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위기의 대한민국, 노무현이었다면 어땠을까?

지난 2002년 민주당은 대한민국 정치사상 처음으로 국민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역사적인 전기를 마련했다. 국민경선은 당권과 대선을 분리함으로써 기존의 권위적인 1인보스 정치 체제를 청산하고, 당원과 국민이 함께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정치개혁의 신호탄이었다. 이 과정을 거쳐 당시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대통령 후보가 바로 노무현 후보였다. 당시 민주당 내에는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적이었다. 호남을 정치적 뿌리로 삼고 있는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계파와 조직은 물론 당내 기반이 전무한 부산출신의 노무현 후보가 선출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의 예상을 뛰어 넘고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되었다. 노무현의 승리는 지역주의의 노예가 되어버린 대한민국 정치,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대한민국 정치, 부정과 비리·부패로 나날이 멍들어가고 있는 대한민국 정치를 혁신해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 분출된 결과였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의 경선승리는 그에게서 새정치의 희망을 발견한 국민들에게는 축제를 의미했지만, 민주당을 장악하고 있던 기득권 세력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재앙을 의미했다. 노무현의 가치가 상징하는 새정치의 텃밭에서는 구시대의 낡은정치가 끼어들 여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경선 이후 그들은 노골적으로 노무현 흔들기에 앞장 섰다.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 후보와 낙선 후보들을 중심으로 '노무현 필패론'을 앞세워 노무현의 사상과 인격을 비난하며 대선후보로서의 부당함을 끊임없이 제기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2002 8 8일 실시된 보궐선거의 패배는 민주당 내의 반노와 비노그룹들에게 노무현 후보를 민주당의 대선후보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절호의 기회로 작용했다. 당 안팎으로 보궐선거 패배의 책임론이 이어졌고, 그 화살은 당연히 노무현 후보를 향하고 있었다



ⓒ 프레시안

 

'조·중·동' '노무현 흔들기'를 그대로 차용한 민주당 내 반노와 비노들의 '노무현 대선 필패론'에 맞서 노무현 후보는 재경선의 카드를 던졌다. 이것은 선거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당내의 기류에 맞서는 한편 그 자신이 보궐선거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경우 재신임을 받겠다고 약속한 것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승부수였다이후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일이다. 반노와 비노들은 탈당을 결행했고 후단협을 결성해 정몽준을 지지했다. 이후 정몽준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 과정와 정몽준 후보의 단일화 파기로 이어지는 드라마틱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한민국의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사실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고졸의 인권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 자체가 대한민국 정치 현실로 볼 때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는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고 변화와 혁신을 간절히 기대하는 국민들이 만들어낸 한편의 드라마였다. 대통령 선거가 온 국민이 참여하는축제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선거는 국민들의 축제여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이를 가장 잘 반영했던 선거 중의 하나일 것이다. 오늘 불현듯 지난 2002년 대선 상황이 떠오른 것은 축제였던 당시 대선과 지난 2012년 대선이 너무도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난 2012년 대선은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으로 인해 축제가 되어야 할 선거가 누더기가 되고 말았다국정원은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고, 이를 수사했던 경찰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 이 과정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경찰에 모종의 압력을 행사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당시 국정원을 두둔하며 오히려 의혹을 제기한 민주당의 정치공세를 비난했다. 이후 국정원 불법대선개입 사건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의해 철저히 정략적으로 악용되었다



ⓒ MBN by 늙은도령

 

국정원 사건에 대한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응은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수준의 절박함이 배어 있었다. 그 절박함이 '성폭행범이나 할 수법', '흑색선전과의 전면전'. '인권 침해' 등의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으로 나타났고, 문재인 후보를 향한 사생결단식 공세로 표출되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지도 모른다. 대선을 불과 며칠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대응했을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국정원이 국정원장의 지시에 의해 대선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의혹은 검찰의 수사 결과 (사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진실이 덮여졌을 뿐) 사실로 밝혀졌다. 또한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어떤 짓을 자행했는 지도 만천하에 드러난 상태이며,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대통령 자신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섬겨야 하는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덕목은 무엇일까? 두 말할 것도 없이 필자는 그것이 우리 헌법이 규정한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대통령은 헌법이 정해 놓은 가치,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가치를 구현하고 이를 지켜내야 할 의지와 신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은 어떠한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 국정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가기관이 보여준 불법과 부정에 대해 대통령은 도대체 어떤 입장이었나



ⓒ 서울신문 by 아이엠피터

 

통탄스럽게도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구현하지도, 인정하지도 않았다. 이는 어떻게든 권력을 유지하고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빗나간 권력지상주의와 비뚤어진 특권의식의 발로에 다름 아니며, 민주주의의 질서를 대통령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위상과 자긍심은 땅으로 추락했다. 그런데 국가기관과 정부, 집권여당 그리고 대통령이 앞장 서서 진실을 은폐하고 부정을 철저하게 비호했다. 이런 흐름은 이후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그리고 최근의 역사교과서 국정화까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다


이 개별 사건들은 모두 헌법과 민주주의의 가치가 실종되고, 주권재민의 대원칙이 무너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 중심에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말한다. 헌법 가치의 실종을 우려하고, 권위주의의 부활을 걱정한다. 노무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국정원 사건과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와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진행되는 작금의 현실을 노무현 은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라면 정말 어떻게 행동했을까? 헌법 가치와 민주주의가 유린당하고, 주권재민의 대원칙이 농락당하는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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