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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야3당이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를 반대하는 이유

ⓒ 오마이뉴스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지난 15일 무산됐다.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여야 간사는 이날 전체회의를 열고 보고서 채택 여부를 논의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자유한국당이 김 후보자의 이념적 편향성과 자질 문제를 거론하며 완강히 반대했기 때문이다. 특위는 18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지만 보고서 채택여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김 후보자에 대한 보고서 채택이 불발되면서 사법부 수장 공백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가 끝나는 오는 24일까지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장과 대법원장이 동시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헌정사상 최초로 헌재소장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일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실제 김 후보자의 인준을 두고 국면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반대 의사가 분명한 자유한국당·바른정당과 달리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의원들의 자율투표에 맡긴다는 입장이지만 결과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의당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땡깡' 발언을 문제 삼고 당사자의 사과 없이는 김 후보자의 국회 인준 상정 논의를 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것도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문제는 이것이 다가 아니다. 양 대법관이 퇴임하는 24일 이전에 국회가 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을 처리하려면 오는 28일로 예정된 다음 본회의에 앞서 여야가 임시 본회의 개최에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헌재소장 국회 인준 부결 이후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며 국회 인준 절차가 멈춰선 상태여서 합의에 이르기까지 난항이 예상된다. 표결을 위한 임시 본회의가 열린다 해도  실제 표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미궁 속이다.


참담하다. 인사청문 과정에서 나타난 야당의 정치공세가 구태스럽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그동안 인사청문회를 거쳐간 수많은 고위공직자 중 김 후보자만큼 흠결이 없는 인사가 있었던가. 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논문표절, 위장전입, 병역 면탈 등이 드러나지 않았던 보기 드문 '청정 후보'였다. 품성과 자질, 경륜 역시 대법원장의 막중한 소임을 수행하기에 부족할 것이 없다는 평가다.  법조계 안팎의 신망 역시 두텁다.

어디 그뿐인가. 김 후보자는 '딸깍발이 판사'라는 별칭이 붙을 만큼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닌 것으로도 유명하다. 법관으로 30년이 넘게 재직하면서도 재산은 부모 재산까지 합쳐 8억6천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백혜련 민주당 의원이 인사청문회에서 공개한 고위 법관들의 평균 재산 22억9476만 원에 비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무능한 것 아니냐"는 기동민 민주당 의원의 질의에 "동의하지 않는다. 내 재산이 적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묵직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김 후보자의 이념적 편향성을 걸고 넘어지는 것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보수야당이 문제 삼고 있는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는 사법 독립과 사법 민주화, 사회적 약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설립된 진보성향의 학술단체다. 보수야당은 이 단체에서 활동한 이력을 '색깔론'으로 연결시켜 공직에 부적합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그 주장대로라면 보수적 성향의 법관 모임이자 사법부의 '하나회'라 평가받는 민사판례연구회 소속 판사들도(현 양 대법원장도 민판 출신이다) 공직에 나서면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진보는 무조건 죄악시하고 보는 이념적 편향성이 만들어낸 모순이다.

그런가 하면 보수야당은 김 후보자의 경력과 자질도 문제 삼고 있다. 장제원 한국당 의원의 발언을 그대로 빌려 표현하자면, "춘천경찰서장이 경찰총수가 되고, 육군 준장이 육군 참모총장을 하는 겪"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거다. 기가 차다. 아무리 생각해도 춘천경찰서장이 경찰총수가 되면 안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혹, 이 나라에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다는 건가. 장영실을 누가 중용했는지는 익히 알려진 바다. 세종대왕이 봤다면 혀를 찼을 장면을 2017년 대한민국 국회에서 목격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격 폄하에 지역 모독,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는 천박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 오마이뉴스


대법관을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얼마 전 논란이 된 사법 수뇌부의 일선 판사 외압 파문과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은 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사법권력으로 인해 초래된 측면이 강하다. 일선 판사들이 현 사법 수뇌부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도,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도 그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제기였다. 그런 면에서 대법관을 역임하지 않은 김 후보자야 말로 사법부의 독립과 개혁을 이끌어낼 적임자일 수 있다. 사법부 내부 사정에 익숙하면서 사법 수뇌부의 권력 이해관계와 직접적 연관이 없는 인사인 탓이다.

대법원장 인선의 스탭이 꼬인 데에는 국민의당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언급한 것처럼 국민의당은 추 대표의 '땡깡' 발언 사과 없이는 의사 일정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표결과 국무위원의 거취 문제를 연계한 사실이 드러나 빈축을 샀던 국민의당이 이번에도 역시 대법원장 인사 일정과 추 대표의 사과를 묶어 의사일정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7월 추 대표의 '머리 자르기' 발언에 반발해 추가경정예산 논의를 올스톱시킨 것을 상기하면 국민의당의 연계 전략은 이쯤되면 거의 습관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관건은 '명분'이다.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과 관련해 "김이수 전 헌재소장 후보자는 올곧은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분으로, 견해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만 어떤 잘못도 없다"는 뜻밖의 발언을 했다. 이어 "문제의 발단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을 덧붙였다. 말인즉, 김 후보자는 문제가 없었는데 문 대통령 때문에 부결시켰다는 거다. 이는 "헌법과 법률해 근거한 의결"이라던 안철수 대표의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김 원내대표의 인식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당의 기본적인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안 대표가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뜬금 없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4강 대사 모두를 교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도 그와 같은 당내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터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킨데 이어 대법원장 후보자 인사 일정을 추 대표의 사과와 연계시키고 있는 것도 결국은 같은 맥락이라고 봐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 문재인 정부가 싫다는 거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6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김정은이 '우리가 한반도 결정권을 가졌다'라고 한 것과 김이수 후보자를 부결시킨 뒤 안 대표가 '우리가 20대 국회 결정권을 가졌다'라고 한 것은 비슷하다"라며 안 대표를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한국당에 대해서도 "부결되자마자 '됐어, 이제 탄핵이야'라고 했는데 비슷한 형제들로 보인다"라고 꼬집었다.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뚜렷한 명분도 없이 부결시킨 야 3당을 싸잡아 비난한 것이다.

인사를 비판하는 것은 야당의 당연한 권리다. 따라서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비판은 모름지기 명확한 근거와 합리적 상식의 바탕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올곧은 법조인의 길을 걸어온" 헌재소장 임명동의안을 대통령이 싫다고 부결시키고, 대쪽같은 성품과 인품을 지닌 대법원장 후보자를 '색깔론'과 자질 부족으로 매도하는 것이 야당의 정당한 권리 행사일 수는 없다.

반대도 정도껏 해야 한다. 명분 없는 정치공세로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10개월(내년 지방선거), 3년(2020년 총선)이 너무 더디다"고 외치는 시민들도 많다. 광음여류( 光陰如流)라 했다. 시간은 물처럼 빨리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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