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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값 인상이 건강증진이 될 수 없는 이유

정부는 얼마 전 현행 2500원 수준의 담뱃값을 4500원으로 2000원 가량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담뱃값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흡연율이 떨어져 담뱃세 인상의 효과가 크다는 것이 정부가 밝힌 이유다. 지난 11일 경제장관회의를 통해 확정된 담뱃값 인상안의 명칭인 '금연 종합대책'에서 드러나듯 정부는 국민들의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차원에서 담뱃세 인상을 추진하는 것이지 증세를 통한 세수 확보 차원이 아니라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실제로 담뱃세 인상을 주도한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물론이고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국민건강차원에서라도 담배 가격은 인상할 수 밖에 없다며 국민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담뱃값 인상이 결국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함이며 저소득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만 더 가중시키는 '서민증세'일 뿐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특히 기업감세와 법인세 인하, 소득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상속증여세 등의 세율 인하를 통해 부자들의 세금을 대폭 감면해주었던 정부가 간접세인 담뱃세 인상을 통해 손쉽게 세수 확보에 나서려한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고 있다. 담뱃값 인상이 증세와는 상관없이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는 정부와 서민의 호주머니를 턴 '서민증세'라는 반대론자들의 주장 중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먼저 참여정부 시절인 지난 2005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청와대 영수회담 및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참여정부에서 추진하려던 담뱃값 인상(500원)과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박근혜 대표는 "담배가격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역진성을 심화시키고, 밀수와 사재기 등 심각한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며 물가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이 아닌가. 세금을 올리지 않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참여정부의 담뱃값 인상에 반대했다. 한나라당 역시 당 차원에서 보다 분명하고 적극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한나라당은 공식 논평을 통해 "정부의 담뱃값 인상 시도는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담뱃값 인상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한나라당이 참여정부의 담배값 인상을 반대하며 내세운 논리는 현재 담배값 인상을 반대하는 쪽에서 주장하고 있는 목소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서민부담을 가중시키는 담배값 인상을 통해 부족한 세수를 확보하려 한다는 논리다. 여기에 국민건강증진이라는 시의적절한 명분을 빼놓지 않은 것도 똑같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정치권력을 손에 넣자 담뱃값 인상에 대한 태도가 180도 달라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입장변화에 대해 국민들에게 최소한 해명이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지난 9월 16일 국회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토론회가 열렸다. 정부의 담뱃값 인상안이 사회적으로 큰 논란을 야기시키자 새누리당 주최로 찬반토론회를 개최한 것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담뱃값 인상안을 찬성하는 쪽에서도 담뱃값에 포함된 국민건강증진부담금의 금연사업 지출분이 미미하다는 점과 신설되는 개별소비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실상 조세수입 확충을 위한 증세의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토론회에 참여한 새누리당의 강기윤 의원은 "정부는 담뱃값 인상안이 건강증진을 위한 금연 정책의 일환이라고 포장했지만, 담배 한 갑 당 2천원을 인상하면 세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정부의 '건강증진 일환'이라는 담뱃값 인상근거는 앞뒤 논리가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여당인 새누리당 내에서도 정부의 이번 담뱃세 인상안이 국민건강을 위한 조치가 아닌 세수 증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듯 하다. 之勢(순치지세)의 관계인 여당조차 이번 담뱃값 인상이 논리가 부족하다고 꼬집고 있는것을 보면 정부의 속내가 뻔해도 너무 뻔하기 때문이다. 


담뱃값 인상을 통해 국민건강증진을 꽤하겠다는 정부 주장의 공허함은 얼마전 발표된 2015년 예산안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보건복지부는 내년 청소년 흡연예방사업과 맞춤형 금연지원서비스 등에 총 1521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올해 금연사업예산인 113억원에 비하면 13.4배 가량 증액되는 것이다. 정부는 흡연예방과 치료를 위해 관련 예산을 대폭 강화했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언론을 통해 전폭적으로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담뱃값 인상을 통해 거두어 들이는 10조원 가량의 막대한 세수와 비교하면 지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이를 건강증진기금의 경상사업비로 책정된 1조2004억원에 대비한다 하더라도 겨우 12.7% 수준에 그친다. 담뱃값 인상을 통해 확보한 엄청난 세수가 정작 국민건강증진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담뱃값 인상안에서 놓쳐서는 안되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정부가 담뱃값 인상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물가연동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물가가 내릴 확률은 없기 때문에) 소비자 물가상승률에 따라 매년 담뱃값 인상이 불가피해 진다. 평균적으로 매년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2.2~4.7% 대임을 감안하면 매년 약 500원 정도의 담뱃값이 인상될 수 있고, 2020년 경에는 담뱃값이 6000원을 넘어서게 된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정부로서는 매년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담뱃값을 자동적으로 인상할 수 있게 되니 가만히 앉아서 세수확보가 가능해지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이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없이, 어떠한 절차와 과정도 없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으니 정부로서는 이만한 세수확보책이 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선거공약의 하나로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 프랜들리와 단호히 결별하고 경제민주화를 반드시 달성할 것이라 공언했다. 그러나 부자감세와 서민증세가 충돌하는 박근혜 정부의 이 모순적 기현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민주화가 이명박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표를 의식해 탄생한 대표적인 '空約'임을 입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필자가 일전에 썼던 글의 제목처럼 경제민주화가 사기에 불과했다는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담뱃값 500원 인상을 '위헌'이라고까지 말해 가며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금은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법안이자 꼭 필요한 정책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그러나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담뱃가격을 가장 많은 세금을 걷어들일 수 있는 4500원으로 상정한 점, 가격별 차등 세율을 적용시키는 종가세 방식을 도입한 점, 신설되는 개별소비세에 정부몫만 늘린다는 점 등 박근혜 정부가 부족한 세수확보를 위해 담뱃값 인상안을 입법 예고했다는 증거들은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담뱃값 인상이 세수확보가 아닌 국민건강증진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일컫는 위선을 박근혜 정부가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의 모습을 다름 아닌 정부가 보여주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