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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끝장 못낸 끝장토론, 이제 국민의당이 끝장날 판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로 극심한 내홍에 훱싸였던 국민의당이 21일 의원총회를 통해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책연대 등을 통해 바른정당과의 신뢰를 먼저 구축하고 선거연대로 나아가겠다는 방침을 굳힌 것이다.

국민의당은 이날 오후 2시부터 7시25분까지 5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를 거쳐 이같은 내용의 합의문을 발표했다. 김경진 원내대변인이 발표한 합의문은 지난달 25일 최고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 결과와 같은 것으로 '선 정책연대, 후 선거연대'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 한 것이다.

지난달 안철수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에 불씨를 당기면서 통합에 반대하는 호남 중진의원들을 중심으로 분당·탈당 목소리가 분출되는 등 국민의당은 심각한 격랑에 빠져있던 터였다. 그 때문에 사전에 '끝장토론'이 예고됐던 이날 의총은 통합 문제에 대해 모종의 결론이 내려질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끝장토론에도 불구하고 결국 '끝장'은 나지 않았다.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렸고, 접점을 찾는데 난항을 겪었다. 5시간이 넘는 토론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하는 수준에서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합의문을 통해 폭발 일보직전의 갈등을 그나마 봉합시켰다는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그러나 이번 봉합은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의총 과정에서 통합에 대한 양측의 입장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난 만큼 국민의당의 내부 갈등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안 대표를 중심으로 한 통합 찬성파와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질 데로 깊어졌기 때문에 분열의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이날 의총에서는 찬성파와 반대파의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안 대표는 의총 서두에 미리 준비한 입장문을 발표하며 통합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안 대표는 정책연대와 선거연대가 먼저라고 밝히면서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당이 제2당이 되기 위해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최선의 선택"이라며 "통합하면 자유한국당을 쪼그라들게 하고 제2당으로 올라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자 반대파들의 반박과 비판이 잇따라 터져나왔다. 얼마 전 안 대표와 뜨거운 설전을 벌였던 유성엽 의원은 "정치공학적으로 통합을 통해 위기 상황을 돌파해 보려 하는 건 구태의연한 접근"이라고 쏘아붙였고, 정동영 의원은 안 대표를 향해 "거짓말로 정치하지 말라"면서 "당을 깨고 싶지 않으니 통합을 밀어붙이지 말라"고 작심 비판했다.

호남 의원들의 맏형 격인 박지원 의원 역시 "안 대표가 어제 중진 오찬에서 통합·연대를 안 한다고 했다가 오후 5시에 다시 한다고 했다"며 "만날 때마다 말이 달라진다"고  질책했고, 김광수 의원은 "시대적 화두는 개혁이고 적폐청산"이라 강조하며 "국민이 관심없는 얘기를 하기 때문에 당 지지율도 폭락한다"고 날을 세웠다.

의총에서는 통합 찬성 의견도 표출됐다. 김관영 의원은 전 당원 투표를 통해 결론을 내자고 주장했고, 이태규 의원은 "호남도 크게는 통합에 찬성한다. 객관적인 여론조사 자료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김중로 의원은 "통합이 창당 정신"이라고 강조하며 지난 16일 안 대표의 덕성여대 특강 발언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두 진영이 물과 기름처럼 충돌하고 있다. 바른정당과의 통합이 국민의당의 정체성은 물론이고 시대정신과도 상충하기 때문에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주장과 통합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와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격렬하게 부딪히고 있는 것이다. 이날의 의총은 이처럼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진영 간의 근본적인 시각차를 뚜렷하게 각인시켜 주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의총의 결론이 지난달 25일 연석회의 결과인 '선 정책연대, 후 선거연대'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데다, 국민의당 내홍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안 대표의 통합 의지가 이번 의총을 통해 재확인 되었기 때문이다. 안 대표는 의총 직후 기자들과의 만남에서도 "지방선거를 치르는 입장에서 통합되는 것이 시너지가 가장 많이 날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라며 통합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물론 안 대표는 통합과 관련해 당내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통합 반대 목소리를 의식한 정치적 수사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20일 열린 전·현직 지도부 오찬에서 분열하지 말고 당 화합을 위해 노력하자고 뜻을 모았던 안 대표가 회동 직후 당원들에게 '합리적 개혁세력의 연대·통합의 빅 텐트를 치자'는 제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에서 드러나듯,  마음은 이미 통합쪽으로 굳혀진 듯 보이기 때문이다.

대권 재도전을 천명한 안 대표에게는 한국당에 돌아선 합리적 보수층을 끌어안아야 하는 과제가 있다. 중도보수로의 노선 변경이 절실한 상황에서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그 마중물이나 다름이 없다.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바른정당은 극우보수인 한국당과 차별되는 개혁보수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렇게 본다면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대권'과 '전국정당화'를 꿈꾸는 안 대표가 반드시 건너가야 할 징검다리인 셈이다. 당내 혼선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통합으로 내달리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생각하면 통합을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세력과의 마찰이 불가피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남 의원들은 정체성과 노선, 정치적 비전 등이 판이하게 다른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명분이 없을 뿐더러 실리도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설익은 통합 논의로 당내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안 대표를 향해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같은 당내 지형의 변화는 안 대표에 대한 당내 불신을 증폭시키는 실질적인 배경으로 작동한다.

리더십이 흔들리면서 안 대표의 당내 위상은 심각하게 타격을 입은 상태다. 안 대표를 향해 '초등학생', '저능아' 등의 극단적 비난이 표출되는가 하면, 일각에서는 안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마저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당내에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반대하는 의원모임인 '평화개혁연대'마저 출범했다. 흔들리는 당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통합을 추진하는 안 대표를 향한 반기()의 성격이 역력하다.


안 대표의 통합 의지가 꺾이지 않으면서 당안팎의 '반안정서'가 점점 거세지는 양상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끝장토론은 안 대표를 위시한 '친안계'와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반안계' 사이의 이질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됐다. 국민의당 내부의 노선 갈등이 더욱 격렬해질 전망이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로 촉발된 '친안계'와 '반안계' 사이의 헤게모니 싸움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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