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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교황이 우리사회에 던진 숙연한 메시지

살다보면 얼굴이 화들짝거리는 부끄러운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부끄러움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자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잘못을 했다거나,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했다거나, 망신을 당했다거나 등등 개인의 행동이나 사고가 사회의 도덕률이나 보편적 가치 등과 충돌할 때 느끼게 되는 자연스런 감정인 것이죠.

그러나 부끄러움이 꼭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자각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부끄러움은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어제 필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으로부터 날아온, 한 사람의 질문에 하루종일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필자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프란치스코 교황이었습니다. 교황은 지난 9일 오전 교황청 클레멘스 8세홀에서 교황청을 정기방문 중인 한국 주교단을 만났습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첫 질문으로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를 물었다고 
주교회의 측은 전했습니다. 기사를 접한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부끄러움이 밀려 들었습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마음 속에서 사라져 버린 '세월호'가 교황의 뜨거운 심장 속에는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됐습니까?"라는 교황의 질문에 어떤 답을 할 수 있을지 머릿 속이 하얘집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여야 정치권은, 우리 사회는 교황의 저 질문에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우리는 저 질문에 내놓을 어떤 답도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프란치스코 교황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답이 교황이 원하는 답이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교황은 지난해 여름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유족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세월호 문제가 정치적이 아닌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되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여러차례 강조했습니다. 교황은 질문의 답을 오래 전에 넌지시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한국 주교단에게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됐는지를 묻고 있는 교황의 마음 속에는 희망과 기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이 품고 있는 희망과 기대와는 달리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 갔습니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은 물론이고 한국사회는 세월호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습니다. 유족들을 제외하면 이제 누구도 세월호를 입에 담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끔찍한 재앙 정도로 기억할 뿐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의 ''자 조차 꺼내지 않은 지는 까마득히 오래 전의 일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반쪽짜리 특별법을 통과시킨 정치권은 굼뜨기가 나무늘보 저리 가라입니다. 특히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보수세력과 일베 등은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을 향해 인륜을 저버린 망언과 망동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릅니다. 저들의 인식과 행위에 교황이 그토록 강조했던 사랑과 인본주의는 찾을래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모습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부끄럽기가 이를 데가 없습니다. 숨기고 싶은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만 같습니다. 사실 교황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월호 관련 내용들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굳이 한국 주교단을 통하지 않더라도 관련 정보들은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황의 질문은 한국사회에 보내는 성찰의 메시지라고 봐야 할 겁니다. '잊지 말라고, 절대로 잊지 말라고, 그리고 희생자들과 유족들의 아픔을 기억하고 함께 나누라'는 것이겠죠.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무슨 까닭으로 세월호 문제를 언급했는지 그 질문의 의도를 직시해야만 합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마치 침몰하는 세월호를 보는 것만 같습니다. 제 몸 살기 급급했던 선장과 승무원들처럼 대통령과 정부, 여야 정치권은 염불보다 젯밥에 더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이념과 지역, 계층과 세대갈등으로 사회는 분열되어 있고, 인심은 흉흉해져 하루가 멀다하고 흉악범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양산한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으로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늘어만 가고 있고, 급기야 미래를 포기한 삼포세대에 이어 오포세대까지 등장했습니다.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미래성장동력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아보기 힘들 지경입니다. 국가와 국민의 위기상황인 것입니다.

"세월호 문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프란치스코 교황의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여야 정치권, 우리사회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또 어떻습니까. 세월호 참사는 한국사회의 총체적 문제가 집약되어 나타난 사고였다는 점에서 교황이 던진 이 질문은 절대로 흘려보내지 말아야 할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우리가 올바른 해법을 찾지 못한다면 다음은 한국사회가 침몰할 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구글 이미지 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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