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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검찰의 국정원 사건 수사,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까?

오마이뉴스


2012년 대선을 불과 일주일 앞둔 12월11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드는 대형 사건 하나가 터졌다. 국가정보원이 대통령 선거에 불법개입한 정황이 밝혀진 것이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대선판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사건에 정국은 발칵 뒤집혔다. 서울 역삼동에 위치한 오피스텔에서 꼬리가 잡힌 이른바 '국정원 댓글 사건'은, 그러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채 현재 파기 환송심이 진행 중에 있다.

당시 경찰은 일주일은 족히 걸릴 것이라던 컴퓨터 분석 작업 결과를 불과 3일 만에, 그것도 대선후보 3차 TV토론이 끝난 직후인 11시 경에 발표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민감한 시기에 발표한 것도 문제였지만 내용은 그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경찰은 포털사이트의 로그기록도 확인하지 않았고, IP추적도 하지 않았다. 기본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은 채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한 셈이다. 이후 경찰이 사건을 축소·은폐한 여러 정황들이 공개되며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검찰이 경찰로부터 관련 사건 수사를 이관받은 건 2013년 6월이었다. 당시 채동욱 검찰총창 체제였던 검찰은 윤석열 수사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의 지휘 하에 수사력을 집중시킨다. 수사의 축소·은폐를 지시한 혐의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기소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도 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시켰다. 그러나 검찰의 의욕적 수사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암초에 부딪히게 된다. 채 총장이 석연치 않게 불거진 사생활 논란으로 사임하게 된 것.

채 총장 사임 이후 검찰 수사는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공소장까지 변경하면서 국정원 댓글 사건을 깊숙히 파고들던 윤 팀장은 이를 사전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고, 그로부터 며칠 뒤 박형철 수사부팀장(현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마저 수사팀에서 빠지게 됐다.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세 사람이 부재하게 되자 검찰의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는 급속하게 동력을 잃게 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실체가 온전하게 밝혀지지 못한 이유로 정부여당의 책임 역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바른정당)의 행태는 두고두고 곱씹을만 하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헌정질서를 유린하는 국가문란의 중대범죄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이 희대의 선거부정사건을 한낱 정쟁의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그 중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 나타난 새누리당의 온갖 기행들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파행시키기 위해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 총 45일 동안 진행된 국정조사에서 김현·진선미 의원의 제척을 문제 삼아 보름 가량을 소비시키는가 하면, 정회와 퇴장을 반복하며 국정조사의 진행을 번번히 가로 막았다. 공개가 원칙인 국정조사에서 국정원 기관보고를 비공개로 해야한다고 막무가내로 버티기도 했고, 너무 더워서 국정조사를 할 수 없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기까지 했다. 결국 국정조사는 파행으로 시작해 파국으로 끝이 나게 된다.


초부터 새누리당은 국정조사를 원치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진 이후 경찰에 때이른 수사결과를 발표하도록 종용한 건 다름 아닌 새누리당이었다.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여론이 심상치 않자 2012년 12월14일 심재철 새누리당 의원 등 4명은 경찰청을 전격 방문한다. 신속하게 수사결과를 발표하라는 항의 차원에서였다. 진선미 의원은 2013년 4월25일 보도자료를 통해 김무성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이 12월16일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국정원 여직원 PC 1차 조사에서 아무런 댓글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정보가 들어오고 있다. 경찰은 눈치보지 말고 오늘 중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해 달라"고 발언한 사실을 폭로하기도 했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한 건 공교롭게도 16일 밤 11시경이었다. 새누리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이 있은지 이틀, 김무성 선대위원장의 언질이 나온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뤄진 경찰의 발표는 당시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3차 TV토론이 끝난 직후, 대선판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을 경찰이 축소·은폐해가면서까지 그 시각에 발표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건 새누리당이 이 석연찮은 흐름에 관여돼 있다는 사실이다. 새누리당은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종용했고 수사결과의 발표 시점까지 언질했다. 그리고 기가 막히게도 경찰은 새누리당의 의도대로 움직인다. 3차 TV토론이 끝난 직후 박선규 당시 박근혜 캠프 대변인이 YTN의 대담프로그램에 출연해 "이제 곧 경찰발표가 있겠지만 명백한 허위 사실이다"라고 발언한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경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기 전 새누리당이 관련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집권당이었던 새누리당에게 대선 직전 터진 국정원 댓글 사건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까딱하면 정권이 날아갈 일촉즉발의 위기를 어떻게든 수습해야만 했을 터. 결국 새누리당은 전대미문의 헌정유린 사건이었던 국정원 댓글 사건을 야당의 정치공세라 규정하는 한편, 경찰에 압력을 행사해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수사결과를 이끌어내도록 만드는데 성공한다. 집권 이후 새누리당이 진상규명에 손을 놓았던 것도 그와 무관치 않다. 국정원 댓글 사건이 그들에게는 '판도라의 상자'나 다름이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 오마이뉴스


최근 검찰은 국정원 댓글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이명박 정부 시절 자행된 여론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기 때문이다. 앞서 TF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직시절인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국정원이 민간인으로 구성된 30개의 외곽팀을 운영하며 여론조작에 나섰다는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TF는 국정원이 심리전단 산하 사이버팀의 주도로 국정원 퇴직자 모임인 양지원을 비롯 늘푸른희망연대, 선진미래연대, 자유한국연합 등 30개의 민간인 외곽팀을 운영하며 조직적으로 여론을 조작해왔다고 밝혔다.

흥미로운 것은 검찰의 행태다. 검찰은 23일 오전 여론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민간인 외곽팀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국정원으로부터 수사 의뢰를 받은지 이틀, 수사팀을 꾸린지 하루 만에 나온 전격적인 조치다. 검찰은 앞서 22일에는 민간인 외곽팀 팀장 등 30명을 출국 금지시키고, 관련자들에 대한 계좌추적에 들어갔다고 밝힌 바 있다. 기존의 검찰의 모습과는 상반되는 대단히 이례적인 행보다.

그러나 이는 역으로, 검찰이 그만큼 사태의 심각성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도 된다. 2013년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에 쏠렸던 국민적 관심은 지난 겨울 광장을 뜨겁게 밝혔던 촛불의 열기에 못지 않았다. 정치권, 학계, 종교계는 물론이고 대학생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줄기차게 요구했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선언이 이어지고, 국정원의 만행을 규탄하는 함성이 전국 방방곳곳에서 울려퍼졌다.

그 후 국정원 댓글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는 모두가 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지만 사건의 진상은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경찰은 물론이고 정부여당과 대통령까지 국정원의 범죄를 비호하고 축소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던 탓이다. 심지어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는 다수 시민들을 대선에 불복하는 좌파세력이라고 매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당시 집권세력에 의해 좌파세력의 선동이라 폄하됐던 내용들은 하나 둘씩 사실로 밝혀지고 있는 중이다.

TF가 밝혀낸 국정원의 민간인 외각팀 의혹 역시 마찬가지다.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이명박 정부와 보수단체들의 '검은 커넥션'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던 내용이다. 다만 관련 사실이 조직적으로 숨겨져왔을 뿐이다. 음지에서 움직이는 국정원, 익명의 공간에서 활동해온 보수단체, 사건을 숨기기에 급급했던 집권세력. 이들은 모두 '은폐'에 익숙하다는 점에서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다. 국정원 댓글 사건의 본질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은폐'는 어떤 사실을 감추거나 숨긴다는 뜻이다. 떳떳하다면 굳이 감추거나 숨길 필요가 없을 터. 그러나 국정원 댓글 사건이 불거진 이후 그와 관련된 것들은 하나 같이 누군가에 의해 감춰지거나 가리워졌다. 오피스텔에서 꼬리가 잡힌 국정원 직원이 그랬고, 경찰 수사가 그랬으며, 국정조사가 그랬다. TF가 밝혀낸 민간인 외곽팀 역시 예외는 아니다.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지금 검찰이 하려는 일은 집권세력과 국가기관, 민간인 단체가 개입된 불법 선거개입 사건에 책임을 묻는 작업이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당시 윗선의 외압을 폭로하며 화제를 불러모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건 그래서다.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관련자들을 발본색원해서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일벌백계해 주기를 바란다. 다시는 이 나라에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부끄러운 정치공작이 일어나서는 안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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