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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6.13 지방선거, 민심은 '보수야당'을 심판했다

ⓒ 오마이뉴스

이변은 없었다. 6·13 지방선거는 예상대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민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모두 14곳에서 승리했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의 텃밭인 대구·경북과 원희룡 무소속 후보가 재선에 성공한 제주를 제외한 전 지역이 파란색으로 뒤덮였다.

민주당은 서울(박원순), 경기(이재명), 인천(박남춘) 등 수도권과 부산(오거돈), 광주(이용섭), 대전(허태정), 울산(송철호), 세종(이춘희), 강원(최문순), 충북(이시종), 충남(양승조), 전북(송하진), 전남(김영록), 경남(김경수) 등에서 승리하며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두게 됐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단 두 곳(대구·경북)을 얻는 데 그쳤다. 이는 당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승리를 장담했던 6곳(부산·인천·대구·울산·경북·경남)을 크게 밑도는 수치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은 한 곳도 승리하지 못하며 높은 벽을 실감해야 했다. 

민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가운데 14곳을 차지함으로써 지난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 16개 광역단체장 중 12곳에서 승리했던 기록을 깨뜨리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전통적으로 보수성향이 강했던 부산·울산·경남 선거를 싹쓸이함으로써 지난 수십 년간 한국당이 독점해 온 지방 권력을 교체시키는 데 성공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뤄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도 압승을 거뒀다. 모두 12곳에서 열린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서울 송파을(최재성), 서울 노원병(김성환), 부산 해운대을(윤준호), 인천 남동갑(맹성규), 경남 김해을(김정호), 울산 북구(이상헌), 충남 천안갑(이규희), 충남 천안병(윤일규), 충북 제천시·단양군(이후삼), 광주 서구(송갑석), 전남 영암·무안·신안(서삼석) 등 후보를 낸 지역 11곳 모두에서 1위를 차지했다.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하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깊은 충격에 빠졌다. 투표가 종료되고 KBS·MBC·SBS 등 방송 3사가 공동으로 조사한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했다.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한 한국당은 물론이고 전패를 당한 바른미래당 역시 선거책임론을 둘러싸고 갈등과 내홍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선거 기간 내내 문재인 정부의 경제실패와 안보불안 등을 집중 부각시키는 한편 정부여당의 독주를 견제할 수 있게 야당에게 힘을 실어달라고 읍소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한국당은 지방선거 슬로건으로 아예 "나라를 통째로 넘기시겠습니까"를 내세웠고, 유승민 바른미래당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경제를 완전히 망가뜨렸다"며 각을 세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선거 전략은 주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은 '정권심판론'을 앞세운 야당을 오히려 심판함으로써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여당보다 야당에게 더 냉정한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그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우회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보수야당이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과 관성을 고집해서는 달라진 시대흐름과 진일보한 민심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정부여당을 견제한다는 이유로 '반대를 위한 반대'에 빠져 있을 때 민심이 점점 더 싸늘해져 갔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수야당의 비판과 반대가 정부권력의 독주와 독선을 막기 위한 야당으로서의 당연한 책무가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으려는 정략적 행태라는 지적이 잇따랐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야당의 역할에 대한 개념 정리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무조건적인 비판과 반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리당략에서 벗어나 협조할 것은 초당적으로 협조하고, 정부여당의 독주와 독선을 날카롭게 지적·비판할 때 건강한 여야 관계가 성립되고 정치문화 역시 발전하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낡은 시대인식과 수구냉전적 사고에 갖혀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모습을 자주 연출해왔다. 그들은 범국가적 행사인 평창동계올림픽이 개막하기 전부터 '평양올림릭' 프레임을 가동시키는가 하면, 오보로 밝혀진 김일성 가면 논란을 앞다퉈 부각시키며 '남남갈등'을 부추기기도 했다. 

전세계가 주목했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기원하는 국민적 염원에 찬물을 끼얹는 언행을 남발하며 민심과 괴리된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보수를 개혁·혁신시키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더니 정작 낡고 닭은 과거의 구태스런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이같은 행태는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거세게 비판받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그들과 한솥밥을 먹었던 정두언·정태근·전여옥 전 의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은 각종 방송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보수야당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다. 특히 보수의 '장자방'이라 불리는 윤 전 장관은 "그간 보수를 자처하는 세력이 보인 행태는 수구"라고 일갈하며 낡은 반공주의에 갖혀 시대정신을 읽지 못하고 있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강하게 성토했다.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어야 했음에도 그 흐름에 올라타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이번 지방선거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평가해 볼 수 있을 터다. 기실 보수야당의 참패는 오래 전부터 예견돼 온 터였다. 특히 지방선거 전망과 관련해 보수진영 내부에서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진단이 잇따르기도 했다.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없을 경우 해보나 마나한 선거가 될 것이라는 준엄한 경고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달라지지 않았다. 뼈를 깍은 혁신 작업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인적 쇄신은커녕 과거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외피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당안팎으로부터 불거져 나오기도 했다. 바뀐 것은 '당명' 하나 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터져나왔던 배경이었다. 

결과적으로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시대흐름과 시대정신을 전혀 쫓아가지 못했다. 관성의 늪에 빠져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지난 9년 동안의 국정 실패에 실망한 유권자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직면해 있는 적나라한 현실이 고스란히 표출된 선거라고 해도 무방할 터다. 

민심은 아직까지도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의 공동정범이었던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향한 실망과 분노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번 지방선거에 나타난 표심을 온전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 선거 책임론을 놓고 극심한 후폭풍에 휩싸일 것으로 예상되는 보수야당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이 위기를 수습할 요량이라면 시쳇말로 '백약이 무효'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공이데올로기와 지역주의로 대변되는 20세기의 낡은 담론으로 21세기 '다이내믹 코리아'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담아낼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들이 변하지 않으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모조리 다 바꿔야 한다. 인적쇄신은 말할 것도 없고, 지금껏 보수야당을 떠받쳐왔던 정체성과 노선, 철학까지도 완전히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 오늘의 굴욕을 2년 뒤 총선에서 다시 경험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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