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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혁신한다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한국당

오마이뉴스


"구체적이고 통렬한 반성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전부 두루뭉술하고 다 추상적이다. 혁신위원장이라는 분이 태극기세력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시대착오적인 사람이 지금 혁신안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그냥 태극기당이라 생각한다. 현재 의석수는 태극기당이 되기 전에 만들어진 의석이었고 그 후엔 계속 태극기당으로 움직여 왔다. 결국 옛날에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자민련처럼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 4일 한국당의 혁신안을 '퇴보안'이라 비판하며 강하게 질타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로 한국당의 혁신안을 맹비난한 것이다. 한마디로 무늬만 혁신이지 내용은 전혀 없는, 전형적인 '눈 가리고 아웅'하는 쇼라는 거다. 그러면서 정두언 전 의원은 '혁신안에 어떤 내용이 담겼어야 했나'는 사회자의 질문에 "친박이라는 유치찬란했던 세력들을 청산해야 한다. 그런 사람들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변화가 되겠나"라고 성토했다. 혁신의 성패가 '인적 청산'에 달려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문제의 원인을 도려내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사달이 난다. 살이 썩어 들어가는데 반창고 하나 붙이는 것으로 건강해지기를 기대할 수는 없는 노릇. 한국당을 오늘에 이르게 만든 주역들이 버젓이 제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전과 달라진 것을 전혀 체감할 수 없는 현실에서 혁신이니 개혁이니 읊어대는 것은 코미디나 다름 없다. 한국당이 회생할 수 있으려면 뼈를 깎는 혁신작업을 통해 당내에 만연해 있는 구태와 완전히 결별해야 한다. 그래야 당이 산다.

24일 오후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는 한국당의 제2차 국회의원·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열렸다. 9월 정기국회에 앞서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당의 진로와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 그러나 이 자리에서 당의 혁신과 관련해 인적 청산에 대한 이야기는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논란을 빚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출당 문제 역시 거론되지 않았다.

애초 이번 연석회의에서는 당 혁신과 관련해 치열한 난상 토론과 그에 따른 당내 갈등이 분출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특히 지난 16일 홍준표 대표가 대구 토크 콘서트에서 언급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 문제가 거론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이날 연석회의 도중 이 문제를 입에 담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었다. 다만 홍준표 대표가 기자간담회를 통해 "3심까지 판결 확정까지 기다리자는 말은 다 망하고 난 뒤에 하자는 것으로, 같이 망하지는 말과 똑같다"며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재차 언급했을 뿐이다.

혁신작업의 알파요 오메가인 인적 청산 역시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관심을 모았던 류석춘 혁신의원장의 혁신위 진행 경과 보고에서도 인적 청산과 관련된 내용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야당으로 전락한 당의 궁색한 처지을 한탄하는가 하면, 문재인 정부 100일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정기국회와 국정감사 전략을 세우는데 주력했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내부적 문제는 놔둔 채 외부로 화살을 돌리겠다는 취지다. 적극적이고 강도높은 대여 공세를 통해 꽉 막힌 출구를 터보겠다는 심산인 것이다. 그동안 숱하게 봐왔던 한국당의 전형적인 위기 탈출 방법이다.


ⓒ 오마이뉴스


(신한국당 시절 포함) 그동안 한국당은 여러차례 '폭' 망할 위기가 있었다. IMF 사태, 차떼기 사건, 총풍 사건, 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국정농단 사태, 박 전 대통령 탄핵 등 굵직굵직한 사건·사고들로 당이 풍비박산날 위기에 직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국민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거듭 '혁신'을 내세웠다. 내부 갈등은 '화합' 프레임으로 봉합시켰다. 그리곤 보란듯이 다시 일어났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언제나 다시 제자리였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간단했다. 반성은 하되 책임은 없고, 혁신을 외치되 행동이 결여돼 있었기 때문이다. 반성은 책임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한국당은 책임에 대단히 인색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 전 대통령 탄핵의 공동정범으로 지목받는 '친박계' 의원 중 그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은 당내의 주요직책을 맡고 있거나 여전히 실세다. 심지어 한국당 내에는 대선 참패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외려 대선 후보로서 패배의 무한 책임을 져야 할 인사를 당 대표로 선출하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했다. 이는 그만큼 한국당 내에 인물이 없다는 뜻이며, 무책임한 정당임을 스스로 자인하는 꼴이나 마찬가지다.

혁신을 한다면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정치보복이라 규정하고, 태극기집회를 '대한민국의 법체계를 수호하는 의병활동'이라 주장하는 극우인사를 혁신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넌센스다. 혁신이란 과거의 묵은 관습이나 관행, 방법 등을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당의 혁신 작업을 책임지고 진두지휘해야 할 혁신위원장부터가 지극히 편향된 인식을 가진 인사가 임명됐다. 그 결과 시대흐름은 물론이고 보수의 가치와도 동떨어진, 정두언 전 의원의 표현을 빌자면 태극기당에나 어울릴 법한 시대착오적인 인사가 당내 혁신을 외치고 있는 촌극이 벌어진다.

당이 풍전등화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당을 근본부터 바꾸려는 치열한 고민도, 내부 투쟁도 엿보이지 않는다. 혁신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인적 청산 움직임도 전무하다. 당의 혁신을 책임져야 할 혁신위원장은 당내부에서조차 비판받는 극우 인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국당의 혁신 작업에 대해 '모양은 혁신, 내용은 적폐'라는 쓴소리가 터져나온다. 반면 정부여당을 거세게 비판하고 그들의 실정에 반사이득을 챙기려는 기회주의적 행태는 점점 더 극심해지고 있다. 신물이 나도록 봐왔던 그 모습 그대로다.


좀처럼 변화하지 않는 한국당에게서 진화를 거부한 원시생물의 모습이 겹친다. 우월한 유전자를 지니고 있었던 원시생물처럼 어쩌면 한국당은 '지역주의'와 '매커시즘'이라는 우월적 환경에 기댄 채 지난 수십년 간을 호령해온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대를 막론하고 동시대인의 치열한 사유와 고민이 담긴 '시대정신'이라는 것도 있다. 정치도 그에 맞게 바뀌고 변화해야 한다. 정치의 본령은 정치인 개인의 '사익 추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삶을 증진시키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철옹성 같던 지역주의도, 전가의 보도였던 매카시즘도 시대정신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지난 겨울 광장에서 표출된 1700만 촛불민심이 그 증거일 터다. 사회를 짓누르던 모순과 부조리, 적폐의 사슬을 끊으라는 것이 작금의 시대정신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국당은 자신들이 처해있는 엄혹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시대정신에 역행해서는 절대로 한국당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 '영남 자민련'이 아니라 그보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당에게 변화와 혁신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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