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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한국당의 혁신에 의문 부호가 붙는 이유

ⓒ 오마이뉴스


자유한국당은 갈림길에 서 있다. 보수의 가치와 비전을 재정립하고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수구보수의 허물을 벗지 못한 지역주의 정당으로 남느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지난 7월3일 취임한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대표수락 연설을 통해 당을 반드시 환골탈태시키겠다고 공언했다. 대대적인 혁신과 개혁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오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홍준표 대표의 취임 일성이 이루어지기 위한 전제조건은 온전히 '혁신'에 있다. 혁신의 성패에 한국당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한국당은 과연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해 그렇게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망이 비관적인 이유는 한국당의 혁신 작업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혁신위원장으로 류석춘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가 임명됐기 때문이다.

류석춘 위원장은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뉴라이트전국연합 공동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부이사장과 연세대 이승만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를 찬성하는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지지하는 교수 모임'에서도 활동한 바 있고, 건국절 법제화에도 찬성하고 있다. 이력에서 드러나듯 그는 전형적인 보수우파의 철학과 인식을 갖췄다는 평가다.

류석춘 위원장의 임명 사실이 알려지자 과거 발언들이 화제가 되고 있는 것도 그의 전력과 무관치 않다. 류석춘 위원장은 과거 "일베를 악의 근원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그건 이해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사랑하는 일베 지향을 칭찬해주지는 못할망정 왜 비난하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며 극우사이트인 '일베'를 옹호한 적이 있고, 지난 1월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수사는 인권유린과 강압에 의한 짜맞추기 수사"이며 "태극기 집회는 대한민국 법체계를 수호하는 의병활동"이라고 주장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류석춘 위원장이 주도하는 혁신위에 당 안팎의 시선이 엇갈리는 것도 이와 같은 극우적인 철학과 인식에 기인한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통 보수학자로서 한국당 재건의 적임자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극단적으로 우편향적인 인식이 외려 혁신의 진정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가 교차하고 있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혁신의 전제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대한 반성과 성찰에 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과정의 오류와 실착은 무엇인지 객관적이고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 그러나 한국당의 혁신을 이끌어가야 할 인사의 인식이 이처럼 극단적인 우편향 시각을 지니고 있다면 혁신 작업이 어디로 향할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해 볼 수 있다. 더욱이 혁신의 궁극적인 목적을 떠올려 본다면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당의 몰락은 박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친박 패권주의의 전횡과 독선, 그리고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수구적 행태가 겹겹이 쌓인 결과다. 간헐적으로 터져 나온 당내 개혁과 변화의 요구는 친박 기득권 세력에 의해 번번히 가로막히기 일쑤였다. 그런가 하면 한국당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이념 공세, 지역주의에 갖힌 폐쇄적인 노선과 철학을 고집하며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다.

국정농단 사태와 박 전 대통령 탄핵은 한국당 안에 쌓여온 적폐들의 총합이었다. 오만과 독선, 불통으로 일관해온 박 전 대통령과 그런 대통령의 일방적 국정운영을 방조한 채 계파와 이념을 앞세워 권력과 기득권 사수에 전념해온 한국당의 치부가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다. 따라서 한국당의 개혁 의지가 진성성을 지니려면 혁신의 정의에 충실해야만 할 터다. 그것이 핵심이다.


11일 열렸던 류석춘 위원장의 첫 기자회견 자리. 한국당의 혁신이 왜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지 그 실마리가 엿보인다. 이날 류석춘 위원장은 "박 전 대통령이 과한 정치적 보복을 당했다고 생각한다", "박 전 대통령을 출당시키면 시체에 칼질하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탄핵된 것으로 실체가 없고 무엇을 위반했는지 구체적인 평가가 없다", "제가 느꼈던 언론의 부당함 중 하나는 촛불집회와 태극기 집회 숫자를 비교하면 촛불집회는 12월 중순부터 태극기 집회 숫자에 압도됐다는 것" 등의 문제적 발언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지난 겨울, 무도한 권력의 오만과 폭주를 무너뜨린 건 누가 뭐래도 촛불과 이를 지지했던 시민의 힘이었다. 그러나 류석춘 위원장의 인식은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낸 촛불 민심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을 정치적 희생양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나아가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를 부정하는 반헌법적 주장까지 거리낌없이 피력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촛불을 들었던 다수 시민들의 바람과 염원을 저버리는 기만 행위이며, 촛불에 담긴 개혁의 열망에 재를 뿌리는 일이다.


혁신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혁신의 성패 여부는 전적으로 기존의 낡은 관성과 관습을 얼마나, 확실하게 탈피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혁신을 하겠다면서 과거의 습성과 행태를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모순이자 자가당착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당은 이번 인사가 보수의 가치를 재정립하고 당의 새 기틀을 마련하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내게는 '눈 가리고 아웅하겠다'는 취지로밖에는 읽히지 않는다. 혁신을 하겠다면서 혁신의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인사를 혁신위원장에 임명한 탓이다. 자가당착의 한계는 명확하고 분명하다. 한국당의 혁신에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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